45살 신랑과 42세 신부는 소통 중
45살 신랑과 42세 신부는 소통 중
윤용로(58) 외환은행장 집무실에는 외환은행 380개(국내 353개, 해외 27개) 지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가 붙어있다. 그 속에는 군데군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윤 행장은 “영업점을 방문해 직원을 만날 때마다 해당 지점명에 동그라미를 그린다”며“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전에는 영업점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가 업무 보고 때도 실무 직원을 만난다. 대개 행장에게 업무를보고할 때는 부행장과 본부장급이 직접하지만 윤 행장은 업무를 기획한 실무자를 함께 배석시킨다. 이렇게 한 사람씩 접촉해 나가면 8000여명 직원을 임기 2년안에 모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윤 행장은 기업은행장 시절에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화는 물론 문자와 트위터를 이용해 대화를 했다. 1977년 행정고시(21회)를 수석으로 합격한 윤 행장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를 거친관료 출신이다. 2007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돼 경영인으로 새출발한 그는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면서 직원의 사기를 높이고 조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소통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 “조직이 클수록 소통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행장 시절 행내에서 번개미팅, 행내방송 토론회 등을 만들기도 했다.
취임 후 120일 동안 쉬지 않아
소통경영의 결과는 실적으로도 연결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행장 취임 당시 업계 5위였던 기업은행은 2009년 하나은행을 자산과 순이익 면에서 앞지르며 4위로 올라섰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0년당기순이익은 1조2901억원으로 신한은행(1조6484억원)에 이어 업계 2위를 차지했다.
6월 19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만난 윤 행장은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은 1년 넘게 벽에 가로막혀 소통이 되지 않았던 만큼 직원을 보듬어 주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위축된 외환은행의 경쟁력을 빨리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흰 와이셔츠를 입은 윤 행장은 소매를 반쯤 걷어 올린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취임한지 오늘이 정확히 120일 되는 날인데 지금까지 쉬는 날 없이 돌아 다녔더니 피로가 누적됐다”며 “앞으로 조금씩 괜찮아지겠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왼쪽 눈까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그는 “전날 업무를 끝내고 상갓집 2군데 들렸다 집에 가니 자정이 넘었더라”며 “근데 그날이 글로벌 본드 발행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어서 발행 소식이 나오는 새벽 3시까지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외환은행 이날 7억 달러의 글로벌 본드를 애초 예상보다 0.2%포인트 낮게 발행했다).
하나금융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외환은행은 뭐가 달라졌을까. 윤 행장은 “다들 ‘당장 뭔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지만 옛날처럼 술 마시고 체육대회를 한다고 단합되지 않는다”며 “45살 신랑(외환은행)과 42살 신부 (하나금융)가 만났는데 서로를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래서 애초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6월 15일부터 1박 2일로 함께 하기로 한 임원 워크숍도 따로 진행했다. 그는 “지금은 각 은행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조직의 문제점 등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공통 주제를 놓고 각자 상황 인식을 해보면 한식구로 갈 때 서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의 5년 독립경영을 두고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시각 차가 큰 것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2월에 하나금융이 신입직원채용에 관여하고 하나금융 자회사인 하나다올신탁을 통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평가, 점포증설을 막는 등 경영간섭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윤 행장은 “합의문 해석을 놓고 이견이 있긴 하지만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은 하나금융에서의 독립이 아니라 금융지주 안에서의 독립인데 서로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조직간의 융합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너지 효과는 내고 있다고평가했다. 3월부터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은 자동화기기(ATM)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금융수수료 금액도 동일하다. 또 하나SK카드·하나대투증권는 외환은행과 제휴 범위를 발 빠르게 넓혀가면서 수수료를 줄이고 판매 채널 확보에 나섰다.
영업력 강화에도 나섰다. 외환은행은 2003년에 론스타에 인수된 후 제자리 걸음을 했다. 지점 수와 자산이 늘지 않았다. 론스타가 이익의 상당 부분을 배당으로 빼가기 일쑤였다. 2조1000여억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지금까지 받은 배당과 지분 매각 대금은 6조8000여억원에 이른다. 매각 차익만 4조6000억원이 넘는다. 덕분에 외환은행의 강점이었던 외화대출 부문 시장점유율은 2003년 말 21.2%에서 지난해 말 17.6%로 줄었다.
영업력 강화를 위해 가장 먼저 취임 후 조직개편에 들어갔다. 본점의 10%인 100여명을 영업점에 배치했다. 영업본부를 2개 신설하고 외국환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 또 프로모션과 신상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3~4월, 5~6월 두 차례에 걸쳐 판매한 특판 예금에 는 2조원이 몰렸다. 4월부터 판매한 기업스마트론은 3개월 만에 3조원을 대출했고 4월 15일부터 한달간 판매한 연 4.7~4.8% 금리의 ‘안심전환형모기지론’도 1조원이 팔렸다.
취약 부문인 중소기업 영업에도 적극 나섰다.외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010년 말 19조2748억원에서 지난해 말 17조6572억원으로 줄었다. 윤 행장은 “잃어버린 중소기업 고객을 찾아오겠다”고 공언할 만큼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반기에는 1조5000억원의 자금지원과 함께 은행권 최초로 정책금융공사와 협약해 외화운전 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매각이익으로 당기순이익 1조7000억원을 냈지만 올해에는 특별 요인이 없어 지난해보다 이익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자산을 10%씩 키울 계획이지만 올해에는 국내외 조직을 재정비하고 시작하는 단계이기때문에 내년 이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약 부문인 중소기업 영업 강화
외환은행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한국과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중국 등 동아시아 중심으로 넓혀간다는 계획이다(외환은행은 22개국에 진출해 있는 외환은행은 10개 현지법인,12개 지점, 5개의 사무소를 갖고 있다). 세계 200위권에 불과했던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이 같은 문화권인 남미에 진출해 세계 10위권 은행으로 급성장한 사례를 감안했다는 게 윤 행장의 설명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은행을 인수해 강력한 거점을 마련한 하나은행과의 시너지 효과 창출도 모색하고 있다.
그는 6월 24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출장에 나섰다. 외환은행 미국 지점의 재개설 추진을 위해서다. 외환은행은 론스타가 대주주이던 시절 이전 뉴욕과 LA, 시카도, 시애틀, 브로드웨이 등에 5개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론스타가 미국에서 금융지주사법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모두 폐쇄했다. 외환은행은 현재 미 금융당국에 지점 재개설을 신청한 상태다.
윤 행장은 “이르면 하반기 미국 금융당국의 승인이 나면 내년 초에는 지점을 열고 영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뱅크로 평가 받으려면 외환은행 전체 순이익 중 해외 부문이 15% 정도는 돼야 하는데 현재 이 비중이 10% 수준”이라며 “글로벌 사업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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