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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cer Diplomacy! 축구 외교

Soccer Diplomacy! 축구 외교



금요일(22일) 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12) 8강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과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간의 격차가 그들의 판이한 경제수준과 거의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이 경기 전 며칠 동안 양국 언론은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경기라는 명백한 사실을 강조했다.

숙명의 대결(grudge match)이었다. 그리스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스는 6월 중순 총선 때 유로존 탈퇴(Grexit)를 간신히 모면한 참이었다. 이 양국간의 대결은 유럽 전역에서 ‘구제금융 컵(Bailout Cup)’‘부채 더비(Debt Derby)’로 불렸다. 아테네의 스포츠 신문 ‘스포르트 데이’는 금요일 아침 ‘그들을 파산시켜라(Bankrupt Them)’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렸다. 베를린의 빌트 신문은 ‘이번에는 구해줄 수 없다(This Time We Can’t Save You)’는 더 위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썼다.엄밀히 말해 이 경기는 처음부터 그리스에 불리했다.

독일이 뛰어난 기량으로 그리스를 4대2로 눌렀다. 독일은 그라운드에서 잇따라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유로 2012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역사상 지금 같은 특정한 순간에 기적(가령 약체 그리스의 승리)이 일어난다면 훨씬 더 감동적일 듯했다. 그리스가 오로지 독일의 인내심 덕분에 유럽연합 회원국 자격을 유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의 여론조사에서 독일인의 절반 가까이가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탈퇴를 원했다. 그리스에서 실시된 비슷한 여론조사에선 그리스인의 78%가 독일에 반감을 가졌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VIP석에서 경기를 관전했다. 몇 시간 전 로마에서 열린 독일·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4개국 경제 정상회담 때 착용했던 올리브 그린 색 리넨상의 차림 그대로였다.

메르켈은 8강전을 관전하기 위해 로마 정상회담장을 일찍 나섰다. 독일이 득점할 때마다 불끈 쥔 두 주먹을 높이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러나 그리스가 올린 첫 득점의 역설은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첫골을 넣은 선수는 스트라이커 게오르기오스 사마라스였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신임 그리스 총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성이 같다. 운동선수 같은 체격의 사마라스 총리는 축구 외교를 기대하며 경기 직전 기자들에게 그리스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기를 기대하는 1100만 명의 국민을 위해,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기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하지만 그리스인들이 기뻐할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이 영광스러운 4강전에 진출할 동안 그들은 빈손으로 귀국한다.로마 정상회담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유럽 4개 경제대국 정상이 공동 성장·번영 구상의 세부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로마에 서 만났다.

이번 주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위원회 회의에 제출하려는 의도다. 금요일의 미니 정상회담이 끝난 뒤 그들은 결과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실은 거의 말하지 않고 회의가 “유익했다”는 미사여구만 남발했다.로마 정상회담 전날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정상들의 계획이 “성장에 기반을 뒀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그리스와 비슷한 운명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몬티는 이번 주의 정상회담이 유로의 미래에 ‘결정적(pivotal)’이라고 평했다. “유로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다소 변명조의 마지막 성명에선 약간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였다. “재정규율이 있어야만 탄탄한 성장의 토대가 마련된다.

하지만 성장과 고용창출이 이뤄져야만 재정규율이 유지될 수 있다.”금요일의 로마 정상회담 이후 일단의 과격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독일 소유의 도이체 방크 건물 앞면에 불을 지르고 도이체 방크의 현금자동출납기 앞에 상징적인 콘크리트 장벽을 세웠다. 독일 사업체들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로마 중심부의 한 광장 곳곳에 불을 질렀다. 금요일 저녁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로마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들을 위해 주최한 칵테일 파티는 경찰의 삼엄한 경계 아래 열렸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 금요일의 독일전을 관람하지 못했다. 망막 교정수술을 받은 후 회복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주 브뤼셀 회의에 참석해 그리스의 심각한 경제위기 타개책 마련을 위한 최후의 노력을 브리핑할 예정이다. 사마라스는 독일이 다른 유럽국가들과 합의해 양대 구제금융 협상의 세부항목에서 그리스에 더 많은 여유를 주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메르켈은유로존의 취약한 연결고리(weakest links)를 살리기 위해 유로화를 약화시키는 모험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싶다”고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를 회원국으로 포함하는 유로화를 의미하는지는 더 이상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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