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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무게 두고 돈도 더 푼다

성장에 무게 두고 돈도 더 푼다



유럽중앙은행(ECB)이 7월 5일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이날 500억 파운드(88조원)를 추가로 풀기로 했다. ECB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례 금융통화정책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1.0%에서 0.75%로 0.25%포인트 내렸다. 시장의 애초 예상대로다.

ECB가 금리를 낮춘 것은 지난해 11월과 12월 0.25%포인트 씩 내린 뒤 7개월 만이다. 기준 금리가 1.0% 아래로 떨어진 건 유로화 도입이후 처음이다. 또 유로존 시중은행이 ECB에 맡길 때 받는 예치금리를 현재 0.25%에서 0%로 내렸다.

예치 금리가 0%면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넣어두는 대신 대출에 더 적극 나설 수 있게 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경제성장은 여전히 취약하고 불확실성이 심화해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비관론 딛고 막판 극적 합의이보다 앞선 6월 28~29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도 성장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스페인은 은행 구제금융에 이어 전면적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위험수위인 7%까지 상승하는 등 현재와 같은 국채금리가 지속될 경우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탈리아도 사정이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재정 긴축에 대한 국민 저항이 강해 사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유로존을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럽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조지 소로스도 유로존의 존립 여부가 3개월 이내에 결정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이래 19번째 열리는 이번 EU정상회의는 유로존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회의로 평가됐다.

회의 개최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프랑스 관계 악화, 메르켈 독일 총리의 단기 시장 안정화 조치 반대 등으로 비관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성장협약, 은행동맹, 단기 시장안정화 조치 등을 막판에 합의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의는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성과를 거둔 회의로 평가된다.

특히 유럽안정화기구(ESM)의 은행에 대한 직접 지원이가능해짐으로써 은행과 국가 간에 형성되어 있는 악순환 고리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로본드 도입 등 재정통합까지 바란 시장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이번에 합의된 은행동맹을 토대로 앞으로 재정통합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동맹은 ‘채무 공동화’를 수반하므로 재정통합의 전 단계로 해석될 수 있다.이번 회의에서는 우선 경기진작을 위한 성장협약에 합의했다. 이는 유로존의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독일 주도의 긴축에 대한 반대가 커짐에 따라 ‘긴축+성장’으로 정책기조가 바뀐 결과다. 특히 프랑스의 정권 교체가 정책기조 변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앞으로 3년간 1200억 유로(유로존 GDP의 1%)를 조성해 인프라 투자, 중소기업지원, 청년실업 해소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핵심은 EU 자금을 투입해 민간의 투자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투자은행(EIB)의 자본금을 100억 유로 증액함으로써 대출가능 자금을 600억 유로로 확대하기로 했다.

EU집행위는 민간자본 참여 때 앞으로 3년간총 1800억 유로가 중소기업 지원과 청년실업 해소에 투입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또 550억 유로의 미집행 EU 구조기금을 경기 진작에 사용하기로 했다.

45억 유로의 프로젝트채권을 발행해 교통, 광대역통신망,신재생에너지 등의 인프라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유럽 2020 프로젝트채권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시범사업이다. 전문가들은 성장을 위한 유로존의 정치적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규모와 실효성 측면에서 경기부양 효과를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3년간 투자될 1200억 유로는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를 해소하는 데 역부족으로 보인다.

또한 인프라 투자의 실효성도 낮아 경제성장 효과가 의문이다. 민간자본은 재정악화 우려와 인프라 투자의 낮은 수익성 등을 이유로 재정위기국 투자를 기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유로존의 은행 감독체제를 ECB를 중심으로 일원화하기로 합의한 대목도 관심거리다.

이는 은행동맹의 일환이다. 2012년 말까지 유로존 국가들의 은행 감독권한을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이양하여 단일 은행감독체제를 구축하고, ESM이 은행 자본 확충을 직접 지원하도록 결정했다.



은행동맹을 완성하기 위한 후속조치도 예상된다. 공동예금보장제도 도입과 은행 구조조정기금 설립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빠졌으나, 단일 은행감독체제 구축 때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은행 구조조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융거래세(FTT)도 도입될 전망이다.

금융거래세 도입에 찬성하는 유로존 국가에 한해 주식·채권 거래에 대해서는 금액의 0.1%를, 파생상품 계약에 대해서는 금액의 0.01%를 세금으로 부과할 계획이다.금융허브 국가인 영국은 금융거래세 도입에 반대해 은행동맹에 불참할 예정이다.

단일은행감독체제 구축은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나, 영국 소재 은행감독청(EBA)과의 관계 설정, ECB의 감독대상 은행 범위, 금융거래세 부과 국가 등 세부사항 합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독일은 재정통합 강력 요구단기 시장안정화 조치에 합의한 점도 주목된다. 6월 27일 기준으로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6.93%, 이탈리아는 6.2%였다. 최악의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 안정이 시급한 과제였다. 독일은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재정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을 우려해 그동안 EFSF·ESM의 국채 매입을 반대해왔다.

하지만 독일이 양보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성장협약 거부 경고와 프랑스의 설득으로 독일이 결국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신재정협약을 준수하는 국가가 요청할 경우 유럽재정안정기금(EFSF)·ESM 가 국채를 발행시장은 물론 유통시장에서 매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국채금리 안정을 위해 스페인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때 ESM에 부여했던 우선변제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민간 채권자들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디폴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MS에 비해 변제순위에서 밀려 있는 민간 채권자들이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함으로써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ESM의 우선변제권 포기로 민간 채권자들의 우려가 해소되어 시장 안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EFSF·ESM의 재원 확충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EFSF·ESM의 재원은 지속적인 시장 안정에 턱없이 부족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경우 그 규모는 1조260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원확충 방안으로 ESM에 은행 면허를 부여하거나 레버리징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어 왔다. 하지만 ‘채무 공동화’에 독일과 ECB가 반대하고 있어 타결은 미지수다.

마지막으로 재정통합이다. 시장이 기대했던 재정통합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못했다. 시장은 유로존 위기의 근본해법으로 유로존의 채무 공동화를 요구하고 있다.

채무 공동화 방식으로 그동안 유로본드 혹은 유로빌 도입, 유럽부채상환기금(ERF) 설립 등이 검토됐다. 유로본드는 유로존 국가들의 연대보증으로 발행되는 유로존 공동채권으로, 낮은 국채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가장 강력한 재정위기 해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반대, 리스본조약 개정 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유로빌은 유로존 국가들의 연대보증으로 발행되는 1년 미만의 단기 채권이다. 유로본드에 비해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어 유로본드의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유럽부채상환기금(ERF)은 GDP의 60%를 넘는 국가채무를 ERF가 먼저 상환하고, 해당국 정부가 ERF에 20~25년 안에 되갚는 방식이다. 유로본드,유로빌, ERF 모두 유로존 17개국의 연대보증(채무 공동화)이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독일이 채무 공동화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은 채무 공동화의 전제조건으로 유로존 재무부 설립 등 ‘돌이킬 수 없는’ 재정정책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재정통합은 중장기 과제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롬푸이,바호주, 융커, 드라기 등 4인이 재정통합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연말까지 제시할 예정이다. 따라서 독일은 중장기 로드맵을 바탕으로 재정·정치통합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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