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조용한 외톨이’의 광기

‘조용한 외톨이’의 광기



지난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한 영화관에서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개봉된 0시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용의자는 제임스 이건 홈즈(24)였다.

콜로라도대 의과대학원(덴버)의 신경과학 석사 과정에 다니던 홈즈는 사건 두 달 전 극소량의 유전물질이 정신이상을 예고할지 모른다는 내용의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돼 있었다. 홈즈가 세미나를 실제로 했는 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학교를 그만뒀다. 마이크로 RNA 생체지표(bio-marker)가 정신이상을 실제로 예고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참사로 인해 우리가 가진 사회적 지표(societal markers)중 어느 것도 정신이상자의 무기구입과 학살 음모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홈즈는 고등학교 때부터 우등생이었으며 자동차 속도위반 한 건 외에는 전과도 없다.정신병으로 입원한 적도, 폭력 이력도 없다.10대 시절엔 총보다 컴퓨터 게임 ‘기타 히어로’를 더 좋아했다. 지난 6월 대학원 중퇴 전 홈즈는 콜로라도대 의과대학원 신경과학센터에서 뇌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뛰어난 교수들과 연구자들에게 유순한(benign) 인상을 주었다. 정신병과 신경학적장애의 생물학적 기초를 연구하는 그를 지도한 교수는 저명한 학자였다.

또 홈즈의 세미나 직후로 예정된 박사과정 두 명의 세미나는 정신병과 편집망상증이 주제였다.그러나 그 누구도 홈즈가 ‘실제 행동을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정신병에 관한 과외세미나’에 해당하는 이번 범행을 계획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정신을 연구하는 아주 명민한 학자들도 동료가 방탄복을 입고 1999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겨우 24㎞ 떨어진 곳에서 미국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를 저지르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홈즈는 현지 총기 가게 두 곳에서 AR15 소총 한 정과 글록 자동권총 두 정, 레밍턴산탄총 한 정, 그리고 탄약 약 6000발과 레깅, 목·사타구니 보호구를 포함한 전신 방탄복까지 구입했지만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미 총기협회(NRA)의 기준에 따르면 정상적인 구매행위였다.

오로라의 센추리 16 영화관 제9관에 나타난 총잡이는 갑자기 분노가 폭발한 광인이 아니었다. 그는 전신 검은색 복장까지 모든 세부 사항을 철저히 준비하고 의도적으로 총기 난사를 연출한 정신이상자였다. 방탄복을 입었다는 사실은 필요시 경찰과 전투를 벌이고 가능하다면 현장에서 탈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홈즈는 영화관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자동차 곁에서 경찰에게 저항 없이 투항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던 듯하다. 스스로 “조용하고 태평스럽다(quiet and easygoing)”고 말했던 홈즈는 지난 목요일 19일 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집을 나섰다. 음악이 너무 커 옆집 사람이 찾아가 그의 문을 두드리며 볼륨을 낮추라고 소리쳤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지만 이웃은 불길한 직감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음악은 불평하는 이웃이나 확인차 방문한 경관을 부비트랩이 설치된 집안으로 유인하려는 미끼인 듯했다.그 이웃이 아파트 안에 들어갔다면 ‘배트맨’에 나오는 허구 인물인 조커가 스스로 조용하고 느긋한 사람이라고 선언한 뒤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었던 반전이 벌어졌을 듯하다.

영화관의 총과 아파트의 부비트랩은 조커가 “곧 나의 진면목을 알게 될거야(Wait’ll they get a load of me)!”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조커도 무고한 사람을 해치진 않는다.

반면 홈즈는 영화 관람객을 무차별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그와 함께 학교에 다녔던 의과대학원 학생 두 명도 다쳤다.지금까지 그를 만난 사람 대다수는 그를 “조용하다(quiet)”고 묘사했다. 총기난사를 저지르는 건맨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는 형용사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 대다수(친구가 거의 없는 듯하다)는 확실한 이상 증상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홈즈가 살았던 샌디에이고의 중상층 동네에서성장한 한 젊은 여성은 그가 영화나 만화에서 영웅보다 악당을 좋아했다고 돌이켰다.이번 사건에서 진정한 영웅이 적어도 한명은 있었다.

ABC 뉴스에 따르면 재럴 브룩스(19)는 어린 딸 두 명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온 한 여성이 “내 아이들!”이라고 외치자총에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그 영화관에는 악마가 분명히 있었다. 그악마가 총을 구입하도록 NRA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집 사려면 ‘고정금리 vs 변동금리’ 뭐가 유리할까

2신세계百 신백멤버스, 가입자 130만명 돌파

3족쇄 풀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기대 효과는

4 오스템임플란트, 조지아 법인 설립 추진…‘해외 매출 1조’ 박차

5‘초심자의 행운’ 처음 구매한 복권이 1등…“동생도 로또 당첨자”

6北 김여정, 대남 오물풍선에 “성의의 선물…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

7우리은행, 알뜰폴 사업 진출…LG유플러스 망 활용

8소득 끊긴 전공의…의협 ‘100만원 지원’에 2900명 신청

9‘회계기준 위반’ 오스템임플란트, 과징금 15억원 부과 받아

실시간 뉴스

1집 사려면 ‘고정금리 vs 변동금리’ 뭐가 유리할까

2신세계百 신백멤버스, 가입자 130만명 돌파

3족쇄 풀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기대 효과는

4 오스템임플란트, 조지아 법인 설립 추진…‘해외 매출 1조’ 박차

5‘초심자의 행운’ 처음 구매한 복권이 1등…“동생도 로또 당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