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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밤 호프 솔로는 한두 시간 밖에 못 잤다.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아니면 배가 고파서일까? 시애틀 발 야간 비행편에 탑승한 뒤(since boarding a red-eye) 그녀가 먹은 음식이라곤 샐러드 한 입이 전부다.

멤피스에서 3시간 동안 중간 기착(layover)하는 비행편이다. 그러고 보니 와인으로 만든 미모사 칵테일 탓일 가능성도 있다. 두 잔이나 마셨다. 한 번은 오늘 아침 플로리다 주 탬파에 도착한 뒤 PR 매니저의 호텔에서, 또 한 번은 불과 몇 시간 전 이곳 크라운 플라자에서다.

어쩌면 그 모두가 원인일 수도, 또는 전부 아무런 관계도 없을지 모른다(Maybe it’s all of that. Maybe it’s none of that). 호프는 키 175cm에 몸무게 68kg이다. 밝고 푸른 눈에 영화배우 제니퍼 카펜터 같은 외모를 가졌다. 다만 그녀를 확대 복사한 듯 당당한 골격 구조를 지녔다. 어쨌든 그런 호프가 갈수록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is getting pretty intense).

오늘은 원래 쉬는 날이었다(was supposed to be her day off).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마지막 휴가를 받았다. 72시간 뒤 호프는 애비 웜바크, 알렉스 모건을 비롯해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잉글랜드를 향해 떠난다. 올림픽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그들을 기다린다(the vast swirling vortex of the Games awaits them). 경기, 미디어, 카메라 플래시, 팬들…. 여자 프로 축구 리그가 지난 5월 중단되는 등 최근 미국리그는 지리멸렬한 상태다(With the latest American league in shambles).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2008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번에는 챔피언 방어전 격이다. 또한 지난 여름 월드컵 결승에서의 석패를 설욕해야 한다(avenge last summer’s narrow World Cup loss).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체력·근성·경험으로 일본의 테크닉, 브라질과 프랑스의 우아하고 창의적인 플레이에 맞선다.

호프는 미국 여자축구의 얼굴이자 일명세계 최고의 여자 수문장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올림픽 직전의 마지막 토요일을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고 휴식을 취하거나, 스파에서 찜질을 하거나, 태국식 팟타이(볶음 쌀국수) 요리를 즐기며(scarfing a final plate of pad thai) 보내지 않는다. 대신 4060여km를 날아 플로리다를 찾았다. 건강체조 DVD 광고를 촬영하고 시사잡지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이 달로 31세가 되는 호프에게 이는 모두 현대 여자 축구선수에게 주어진 역할의 일부일 뿐이다. “프로미식축구 선수는 광고 출연을 하지 않아도(never has to do any endorsements) 문제 없다”고 호프가 말했다. 그녀는 게토레이 음료,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심플 스킨케어 상품 등의 광고 모델이다. 오는 8월에는 자서전도 펴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여유가 없다(it doesn’t workthat way for us). 내가 축구선수로 받는 연봉으로는 남들처럼 먹고 사는 정도에 그친다(My soccer salary would only make me an average living). 따라서 항상 어린 소녀들만 상대로 마케팅을 할 수는 없다. 일반대중에도 티켓을 팔기 시작해야 한다.

중년 남성,그리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To all walks of life) 말이다. 따지고 보면(At the end ofthe day) 이 한심한 사진촬영도 여자축구를 더 많이 알리고, 더 큰 계약을 따내고, 우리를 남자 선수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올려놓으려는(putting ourselves on the same level as the men) 목적이다.”

그래서 호프는 크라운 플라자의 트레저아일랜드 볼룸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녀가 뛰어오르면서 공을 차는 모습을 촬영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녀가 시선을 카메라 렌즈에 고정시키고 얼굴도 그렇게 앵글이 잡혀야 한다. 그리고 양 팔과 다리는 일종의 우아한 공간기하학적 형태를 이뤄야 한다(her various limbs arrayed into some sort of elegant airborne geometry).

하지만 막상 해보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 시간 정도 뒤 그녀는 물병을 집어 던지고는 양 다리 사이에 공을 내려놓고 드리블하기 시작한다. “누가 코치를 좀 해줘요.” 그녀가 소리쳤다. 아무 대꾸도 없다. “좋아.” 이번에는 자신에게 말한다. “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겠어.”이어 공을 던져주자 뒤로 물러났다가 앞으로 튀어 오르면서 걷어찬다. 공은 사진가 한명의 조명을 향해 날아간다. 전구가 깨지고 조명장치가 넘어진다.

모두가 어색하게 웃는다. 조수들이 황급하게 뒷수습을 한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I’m totally speechless right now).” 호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값비싼 장비 같은 건 아니죠?”어쩌면 잠이나 배고픔 또는 칵테일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호프가 대책 없는 사고뭉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Maybe it’s just that Hope Solo can’t help it). 대책 없이 곤란한 상황을 자초하고(Can’t help getting into tricky situations), 대책 없이 그런 상황에 뛰어들며, 그 과정에서 대책 없이 약간의 난장판을 만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로 응원하는 운동선수들(The athletes we really root for), 우리가 꿈꾸고 애착을 가지며 모든 경기를 녹화하는 선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수퍼맨이다. 다른 어떤 호모 사피엔스도 흉내낼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줘 사람들의 찬사를 자아내는 무결점의 돌연변이들이다(the flawless freak who earns our admiration by doing things no other Homo sapiens can do).

현재의 미국 올림픽 대표팀에선 아마 수영의 귀재(the aquatic demigod) 마이클 펠프스가 대표적인 예일 듯하다. 펠프스는 지구상에서 둘째가 돼서 서러워 해본 경험이 없다(has never known the feeling of being the secondfastest swimmer on earth). 그의 천재성은 10세 때 드러났다. 15세 때 자신의 첫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그런 흠잡을 데 없는 외계인,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경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전율을 느낀다(It’s thrilling to watch such an immaculate alien at work).

둘째 유형은 다르다. 생존자라고 불러야 할까? 불굴의 노력으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선수들이다(the all-too-human athletes whose every achievement is an uphill battle).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항상 뭔가 잘못 된다. 그들의 노력은 우리 삶의 몸부림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성공은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어떤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상상력을 불어넣는다(their successes inspire us to imagine what we could be at our best).

호프 솔로는 미국 대표팀에서 가장 감동적인 생존자일지도 모른다(might be the most compelling survivor). 그녀의 경력은 눈물을 자아내는(tear-jerking) 인간 드라마다. 올림픽의 중요한 순간에 TV에서 항상 방영하는 휴먼 스토리 동영상을 그대로 복제한 듯하다(was reverse-engineered). 전과자 아버지는 일찍이 가족 곁을 떠났다가 호프와 오빠를 납치한 죄로 감방살이를 했다.

그 뒤 노숙자로 전락해 살인 용의자가 됐다.호프는 스트라이커에서 수문장으로의 원치 않는 변신에 적응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2007년 월드컵의 중요한 경기 전 감독이 무슨 영문에선지 그녀를 벤치에 앉혔다.

미국은 그 경기에서 4대0으로 패했다. 그녀가 기자들에게 자신이라면 “그 골들을 막아냈을 것(would have made those saves)”이라고 말한 뒤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팀에서 따돌림당했고 그로 인해 우울증까지 걸렸다. 2011년에는 선수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어깨 부상을 당해 복잡한 수술을 받았다.

몇 개월 동안 뼈를 깎는 재활을 거쳤다(months of grueling rehab). 리얼리티 쇼 ‘스타와 춤을(Dancing With the Stars)’에서 남자 파트너가 카메라 앞에서 그녀를 거칠게 대해 여성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끝으로 이달 초 약물검사 결과 그녀에게서 금지 이뇨약품(a banned diuretic)이 검출됐다. 그녀가 의사에게서 처방 받은 생리통약(prescription menstrualcramp medicine) 성분이라는 사실이 당국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다면 런던 올림픽 출전이 금지될 뻔했다.



“뜻하지 않은 실수를 했다(made an honest mistake). 나는 운동선수로서 부끄러울 게 없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호프가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I’ve been through so much on and off the field).

하지만 난관에 직면할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고 정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상당한 내공이 쌓였다(that’s what gives me strength as a playerand as a person). 요즘엔 어지간해선 나를흔들지 못한다(takes a lot to rattle me these days).”

신비주의에 기대려는 건 아니다(Not to get mystical or anything). 하지만 미국 전체가 갈수록 흔들리는 느낌이다. 이런 때 호프같은 생존자가 올림픽에서 미국의 분신으로 활약한다면(to have a survivor like Solo as our avatar at the Olympics) 분명 특이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어쩌면 펠프스의 시대도 갔을지 모른다. 미국은 사실상 어느 한나라가 지배할 수 없는 글로벌화된 게임에서 경쟁하고 있다. 원하는 만큼 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여성들이 동등한 대접을 받게 하려고 애쓴다.

개인에게 최선의 결과와 팀에 최선인 것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호프도 마찬가지다.문제는 아무튼 그녀, 그리고 미국이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는 크라운 플라자의 객실에서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실은 둘 사이에 메이컵 아티스트가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 화장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호프의 미모사 칵테일 잔이 이제 거의 비었다. 그녀에게는 그 술잔이 제법 어울리는 듯하다. 시애틀의 파티 프로모터 아드리안 갈라비즈와 데이트를 하고, 2008년 올림픽 때 유명인사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bedded a celebrity),

다음날 출연한 TV 프로그램 투데이쇼에서 “술 취한(그녀의 표현)” 듯 보이고, 시애틀 자택에서 밤샘 피클볼(pickleball, 배드민턴·테니스·탁구의 요소를 결합한 라켓 스포츠) 대회를 벌인 그녀에게는 말이다.

호프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kept his secrets and went to the grave with them)”고 그녀가 말했다. “살아가는 동안 자식들에게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순간이 분명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 제프리 존 솔로는 뉴욕 브롱크스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구들은 그를 제리 또는 조니라고불렀다. 어떤 이유에선지 호프를 비롯한 자식들에게는 토니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그는 어린 시절 “위탁양육 가정에서 위탁가정으로” 전전했다. 베트남전 참전 후 솔로는 보스턴을 거쳐 시애틀의 작은 교외로 이주했다.

그 과정에서 제2의 사회보장 번호를 취득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호프는 지금도 확실히 모른다. “증인보호 프로그램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Possibly the witness-protection program)”고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와 같은 대도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될 만한 동네가 결코 아니었다(It was the kind of town a big-city guy like him would never be caught dead in).”

아버지는 워싱턴주 리치랜드에 있는 핸포드 핵시설에서 일하는 환경학자와 결혼했다. 몇 년 뒤 호프가 태어났다. 호프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가족의 곁을 지켰다(stuck around for Hope’s childhood). 그녀의 축구 팀 코치로 일하고 아내 주디가 가족을 부양할 동안 여기저기 일자리를 전전했다.하지만 “아버지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무서워했다(the daily monotony of life scared him)”고 호프가 말했다. 그녀가 일곱 살이 됐을 때 부모가 이혼했다.

그 다음 해가 호프의 소녀 시절 마지막 남은 아버지의 기억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리치랜드에 다시 나타났다. 호프와 오빠 마커스를 인근에서 열리는 야구경기에 데려가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 뒤 아버지는 계속 차를 달려서 산들을 넘어 시애틀에 도착했다”고 그녀가 돌이켰다. “수영장이 딸린 호텔방을 얻었다. 인생이란 이렇게 사는 거구나 싶었다(We felt like we were living the life).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버지가내게 말했다. ‘아가야, 엄마가 방금 전화했다. 3일만 더 여유를 주겠다는구나.’ 나는‘전화 벨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knew that something wasn’t right).”하루 이틀 뒤 시애틀 시내의 한 은행에서 경찰 특별기동대가 아버지를 포위하더니“그를 경찰차 뒷좌석에 밀어 넣은 뒤 끌고가 버렸다(put him in the back of a police car,and hauled him off).”

“우리 남매는 대도시의 거리에 둘만 남아 무서움에 떨었다”고 그녀는 돌이켰다. 얼마 안돼 아동보호국 직원들이 나타났으며 조금 뒤에는 엄마도 도착했다. 하지만 호프는 엄마가 당국에 신고한 일을 용서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I remember not talking to her the whole ride home)”고 그녀가 말했다. “아빠가 감옥에 들어갔다. 어린 나는 혼란에 빠졌다.”



호프가 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까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애틀 공원에서 우연히 다리를 절며 지나가는 사람을 목격했다.반바지, 문신, 이탈리아계의 얼굴 윤곽이 유난히 낯익었다. “그가 내게서 멀어져 갔기 때문에 뒤를 쫓아갔다”고 호프가 말했다. 두사람은 재회했다. 호프가 워싱턴대 축구팀에 들어가 시애틀로 이주한 뒤 아버지는 그녀의 모든 경기를 관전했다. 딸의 경기를 보려고 몇 km를 걸어 다녔다.

그녀는 숲 속에 있는 아버지의 녹색 텐트로 햄버거와 치즈를 가져갔다. 아버지가 호주머니에 음식을 우겨 넣거나 그의 코트에서 냄새가 날 때도 창피해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learned not to be embarrassed when he wore a smelly coat or filled his pockets with food).

하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일찍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가장 해괴한 사건이었다(the most bizarre thing our family had ever been through)”고 호프가 말했다. 2001년 1월 4일, 마이크 에머트라는 부동산 중개인이 커클랜드 파크플레이스 쇼핑 센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택 원매자를 자동차에 태워(picked up a prospective home buyer) 매물로 나온 인근의 고급 부동산으로 데려갔다.

그 뒤 두 시간도 안돼 욕조 속에 얼굴을 처박고 숨진 채 발견됐다(was discovered face down in the bathtub). 그의 몸에는 칼에 찔린 자국이 19 군데나 됐다. 며칠 안돼 경찰은 제프리 존 솔로를 이 사건의 ‘용의자(person of interest)’로 지목했다.솔로는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했다(denied any wrongdoing). 2001년 1월 9일 시애틀의 온라인 매체 포스트-인텔리전서에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한 “착한 사람”도 아니라고 자인했다.

“5년 동안 거리에서 생활했으며” “많은 여성을 이용했고” “교도소를 다녀왔다.” 그에게는 사기, 강도, 범죄음모, 위조, 절도, 폭파위협 등의 전과가 있었다. 리치랜드에서 거주하는 “가족의 한 지인(associate of the family)”은 솔로의 말을 뒷받침했다. “요주의 인물(He’s bad news)”이라고 그는 말했다. “12년동안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몇 달 뒤 경찰은 솔로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cleared Solo’s name). 그의 알리바이가 성립됐다(his alibi checked out).

하지만 오랫동안 그의 범죄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2011년에야 수사관들은 마침내 에머트의 살인 혐의로 한 전과자를 체포했다(그가 솔로에게 혐의를 덮어씌웠을지도 모른다). 호프는 아버지가 겪은 불행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를 “가슴 속에 사랑이 넘쳤던 길 잃은 영혼(a lost soul with so much love in his heart)”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항상 토니 또는 조니 또는 제리 솔로에 관해 더 깊이 알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호프의 잡초 같은 생명력과 추진력은 아버지가 살았던 인생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녀는 인생의 역경에 정복당하기보다 그것을 극복하겠다고 오래 전에 다짐한 듯했다.

호프는 2007년 봄 아버지의 뉴욕 방문을 주선했다. 마침내 딸이 국가대표로 뛰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시간이 허용된다면 어쩌면 그녀를 브롱크스로 데려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을지도 모른다. 호프가 첫 월드컵에 출전하기 몇 달 전이었다. 그녀는 미국 프로농구 챔피언십 경기 관람차 클리블랜드에 있었다. 그들은 전화통화를 했다.

“NBA 결승전 때 아버지 선물로 모자를 샀다고 말했다(I told him I’d gotten him a hat from the finals)”고 호프가 돌이켰다. “이번에는 모자를 써야 한다고 다짐을 받아냈다. 아버지는 때가 타지 않도록 모자를 비닐에 싸서 옷장 선반에 고이 모셔두곤 했기 때문이다(because he used to put his hats onhis shelf, in plastic, so they wouldn’tget dirty). 호텔에 가서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뒤 뉴욕으로 돌아가선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얼마 뒤 그녀 방의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였다.호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축구로 자신의 감정을 발산했다(For as long as she can remember, soccer has been Solo’s outlet). 멀리 떨어진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아버지에게 없는 힘을 보여주는 한 방편이었다.

“12살 때 선생님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주제로(about what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줬다”고 마침내 메이크업이 끝나갈 무렵 그녀가 말했다. “나는 행간을 넓게 띄워 대문자로 ‘어른이 되면 프로축구선수가 되겠다’고 썼다. 당시에는 여자프로축구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프는 초반엔 잘 나갔다(Solo’s early career was golden). 쉬는 시간에 “상급반 남학생들과 함께 노는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프로미식축구팀 LA 레이더스의 추리닝 상의를 벗거나 뒤로 가지런히 묶은 꽁지머리를 푸는 법이 거의 없었다. “나는 여자아이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었다(I wasn’t too popular with the girls). 걔들은 한쪽에서 …뭔가 다른 놀이를 했다”고 말하며 그녀가 웃었다. “어떤 놀이를 했는지도 나는 모른다.”

호프의 선머슴 같은 훈련방식은 곧 진가를 나타냈다(Solo’s tomboy training soon paid off). 리치랜드 고등학교 팀 소속으로 109골을 기록하며 두 차례나 미국 최우수 공격수로 선정됐다. 그녀는 “여자아이처럼 노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다.또한 수문장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따라서 워싱턴대 레슬리 골리모어 감독이 그녀를 골키퍼로 기용하려 했을 때 호프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를 부모가 골 문에 세우려 할까(Who do parents put in goal)?” 호프가 말했다. “뚱뚱한 아이다. 잘 뛰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골리모어는 그녀를 고집했다.

호프의 시야가 넓고 공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흔히 골 네트 앞을 지키는 다른 2류 선수들보다 잘 해내리라는 걸(would elevate her above the second-rate players who were usually parked in net) 그녀는 알았다. “같은 나이의 대다수 아이들이 막지 못하는 슛도 호프는 처낼 수 있었다”고 골리모어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킥 능력, 움직임도 중요했다. 그녀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중 한 명이었다.”



호프는 워싱턴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지역에 있었다”고 갤리모어가 돌이켰다. 하지만 스트라이커였던 그녀가 수문장 역할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팀원들과 함께 비행기에 탔을 때 누군가 ‘골키퍼는 누구지?’ 하고 물었다”고 호프가 말했다. “나는 말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말 싫었다.

비참했다. 필드에서 뛰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그녀답게 호프는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해(true to form,Solo pushed herself)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고 어떤 일에서나 최고가 됐다(to be the first in fitness, the first in everything).” 그리고 졸업할 무렵에는 미국의 정상급 대학생 골키퍼가 됐다.

무엇이 호프를 그렇게 탁월한 수문장으로 만들었을까? 일면 그것은 포워드로서 그녀를 돋보이게 만든 것과 같은 강점이었다(was the same strengths that had distinguished her as a forward). 그녀는 강하고 정확한 발을 가졌다. 이는 공을 55~75m까지 멀리 차보내 빠른 역습을 펼칠 수 있다는(could trigger a sudden counterattack) 의미다. 그녀는 드리블과 볼 배분에도 뛰어났다.

덕분에 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찔러 넣어주는 일종의 미식축구 쿼터백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자기 진영에서 불필요하게 적의 압박을 받지 않고 곧바로 공격을 전개하도록 한다(avoiding pressure in the backfield and setting up runs). 공중 볼을 잡는(pull balls out of the air) 데도 공격수 경험이 도움이 됐다(호프의 장기다).

크로스를 예측하는 일은 수문장이나 스트라이커 모두에게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입장만 바뀔 뿐이다.동시에 호프는 “슛을 막아낼 뿐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여 아예 슛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법도 배웠다(learning not just to be the shot stopper, but to prevent shots altogether by organizing her defense)”고 골리모어가 말했다.

호프는 대학 졸업 후 2년 만에 올림픽 대표로 처음 선발됐다.2007년 중국 월드컵까지는 만사형통이었다(Everything was going right). 대회 초반은 순조로웠다. 처음 네 경기 중 세 번을 무실점으로 막았다(recorded shutouts).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숙적 브라질과 중요한 준결승 경기를 앞둔 전 날이었다. 팀의 저녁 식사자리에서 그레그 라이언 감독이 그녀를 자기 방으로 호출했다. “나는 금세 속이 뒤집히는 듯한 느낌이었다(instantly got a pit in my stomach)”고 호프가 말했다.

“음식이 먹히지 않아 접시를 밀어냈다.” 라이언은 호프에게 나쁜 소식을 전했다. 그녀를 벤치에 앉히고 노장인 브라이애나 스커리를 대신 기용한다는 내용이었다(he was benching her in favor of veteran keeper Briana Scurry).

라이언은 공식적으로는 브라질의 공격적인 스트라이커들을 차단하는 데 필요한 빠른 반사동작은(making the rapid-fire reflex saves required to stymie Brazil’s aggressive strikers) 스커리가 더 낫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프로선 납득이 가지 않는 해명이었다(wasn’t convinced). “자신의 방에서 감독님은 변명에 변명을 거듭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조차 몰랐다.

이유가 계속 바뀌었다.”스커리가 네 골을 내줄 동안 호프는 그라운드 밖에서 울분을 삭여야 했다(As Scurrysurrendered four goals, Solo sulked on thesidelines). “나는 아버지를 위해 뛰었다. 마치 다른 에너지가 샘솟는 듯 감정과 열정이 흘러 넘쳤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 인생 최대의 경기에서 벤치를 지키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never imagined that I’d sit on the bench for the biggest game of my career).” 경기 후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호프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축구를 아는 사람이라면누구나 뻔히 알 만한 사실(anybody [who]knows anything about the game knows that)”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라면 그 골들을 막아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번 사진작업의 야외촬영을 위해 탬파의 알론조 고등학교로 이동할 때 지금도 그렇게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잘라 말했다. 많은 축구 팬도 그녀와 생각이 같다. 하지만 2007년 당시 호프의 낙담한 팀 동료들은 그런 가정에는 관심이 없었다(Solo’s crestfallen teammates didn’t care about the hypotheticals). 스타수문장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라이언 감독은 호프에게 출장정지 처분을 내리고 혼자 시애틀로 돌려보냈다.

라이언은 결국 해임됐다(was eventuallysacked). 스웨덴 프로 선수 출신의 후임 감독 피아 순드하게는 호프의 대표팀 복귀를 요청했다. 하지만 호프는 그 스캔들로 상처를 받았다. “나는 엿 같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축구를 하는 의미가 없는 듯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 안에서 열정이 빠져나갔다(My passion was stripped).

집에 혼자 틀어박혀 지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번은 팀 동료들이 엘리베이터에 그녀와 같이 타기를 거부했다. 또 다음 번에는 미국 국가를 부르는 동안 운동장에 나오지 말고 통로에서 혼자 서있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마치 내가 미국인으로선 부족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이다.



호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알론조 고등학교의 텅 빈 야구장을 응시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한심한 팀 내 인기 경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이윽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 선수로 경쟁하고 싶었다(just wanted to be an athlete and compete). ‘나를 싫어한다 해도 상관 없다. 축구가 내 일이니까.’

나는 내 방에 처박혀 지내곤 했다. 팀원들과 쇼핑도, 볼링 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항상 수군거렸다. ‘호프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팀 플레이어가 아니다.’ 나는 단지 개인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었다.”

순드하게 밑에서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호프는 말한다. 2007년 이후 그녀의 성적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66경기 중 단 3패만 기록했으며 허용한 골(29)보다 무실점경기가 더 많았다. 2008년 올림픽 결승전때 그녀의 팔뚝 방어야말로 미국이 금메달을 차지한 최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11년 월드컵 브라질과의 대전에서 그녀의 다이빙 블로킹이 없었다면 미국은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 9개월 전 호프는오른쪽 어깨의 치명적인 관절와순(어깨뼈를 둘러싼 섬유질 연골) 파열(labral tear)을 치료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운동을 계속하는 게 기적이었다. 게다가 호프는 마침내 동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함께 어울리는 요령을 배웠다고 한다(she’s finally figured out how to motivate and mesh with her teammates). “여자 선수들은 다소 민감하고 감정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내어조는 항상 그들과 어긋났다”고 그녀가 털어놓았다. “지금은 90% 정도는 수비수들의 비위를 맞춰준다(kiss my defenders’asses 90 percent of the time). 그래야 그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때 제대로 반응한다(so they’ll respond when I’m kicking their asses). 사람들의 성격을 파악해야 했다.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프는 지금도 때때로 자신의 스포츠 그리고 자신과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방인처럼 느끼기도 한다(can still sometimes feel like an outsider). 남자 선수들이라면 2007년 월드컵 이후 그녀의 동료들처럼 반응했겠느냐고 묻자 호프는 몇 초동안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응시한다. “물론 달랐을 것”이라며 다시 입을 연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남자 선수들이라면 로커룸에서 두어 번 몸싸움을 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엿먹어, 자식아’라고 욕하면서. 하지만 개인적인 인신공격은 하지 않았을 성싶다. 그리고 분명 모두가 유명선수의 행동을 따라 하는 이런 골목대장 놀이는 하지 않는다(there definitely wouldn’t have been this follow-the-leader thing). 우리는 프로 선수들이다.

경기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다시 탬파의 알론조 고등학교. 오후의 폭풍우 구름이 수명을 다한 전등처럼 번 쩍인다(the afternoon storm clouds are flickering like faulty lightbulbs). 사진촬영 작업이 끝나려는 참이다. 호프와 마지막 몇분의 대화를 기다릴 동안 그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wonder what to make of her).

그녀는 다른 여자선수들과 얼마든지 다르게 행동할 생각이 있는 반항적인 디바일까? 아니면 그녀로선 한번도 자연스럽게 찾아온 적이 없는 인정과 리더십 역할을 갈구하는 걸까(does she crave the kind of acceptance—and the kind of leadership role—that has never come naturally to her)?

사실은 호프 자신도 아직 그 답을 모르는 듯하다(is still figuring it out). 리얼리티쇼 ‘스타와 춤을’에 출연했을 때를 돌아보자. 녹화된 리허설 도중 솔로의 전문댄서 파트너 막심 크메르코프스키가 크게 짜증을 내며 그녀를 난폭하게 다루기 시작했다(got so frustrated that he started pushing her around). 언제나 선머슴 같은 호프는 처음에는 그의 행동을 용인하는 듯했다.

“그가 나를 거칠게 대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You wouldn’t want to see me if he wasn’t tough on me)”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대신 시청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호프도 가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realized that she had to speak out). “시청자는 ‘어떻게 여성,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가’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호프가 회고했다.

“나는 그들을 달래며 항상 그런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뒤 그녀는 그 프로의 진행자 라이언 시크레스트에게 자신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며 [크메르코프스키의 행동을] 그냥 좌시하지않겠다(would never just let [Chmerkovskiy’s actions] go unnoticed)”고 말했다.

호프가 마침내 내 피크닉 테이블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흰색 민소매 상의는 땀과 먼지로 얼룩졌다. 사진작가는 경기 후와 성관계 후를 연관지으려고 의도한 룩(외양)이라고 말했다(a look that’s meant to blur the line between postgame and postcoital).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생각하는지 호프에게 물었다.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팻말을 들고 다니자’는 식의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나는 여권운동가가 아니며 나를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다. 하지만 많은 여자 선수가다른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아 그래요, 연봉을 삭감할게요’ ‘건강보험 없이 프로축구 경기를 할게요’라는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항상 말한다. 무엇보다 먼저 운동선수로서 자신을 돌봐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축구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건 여자들에게는 때로는 힘든 일이다. 그런 점에선 내가 페미니스트인 듯하다.”올림픽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호프가 테이블에서 일어날 때 물었다. 거기서 런던 올림픽은 어떤 역할을 하나? “간단하다.”호프가 대답했다. “우리가 우승하면 평생의 팬을 얻게 된다.” 못하면? “우리 모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게 된다.”

그 말을 끝으로 호프는 떠나갔다(Hope Solo is off). 플로리다의 밤 속으로, 그리고 대서양을 건너. 승리를 위해 뛰어야 하는 또 다른 경기, 증명해야 할 다른 명제가 항상 기다리기 때문이다(There’s always another game to win, and something else to p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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