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지출 탓에 나라빚 산더미
사회보장지출 탓에 나라빚 산더미
그리스를 위시한 일부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수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일본에서도 재정위기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3월에 하원인 중의원에 소비세 인상과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관한 7개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이 회기말인 6월 21일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일본 국채시장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확산될 소지가 있다.
일본의 재정위기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재정수지는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매년 GDP의 4∼11%에 이르는 적자가 지속됐다. 그 결과 201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급기야 200%를 돌파했다. OECD는 2012년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219.1%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보다 높은 수준이다. 미국이나 독일, 프랑스와 비교해서도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OECD가 2012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36.3%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정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일본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논란의 핵심에는 사회보장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사회보장지출액은 1970년 3조5000억 엔에서 1991년 50조 엔, 2010년부터는 100조 엔으로 거의 수직상승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사회보장지출액이 전부 국가채무로 직결되는 건 아니다. 2011년 일본 정부가 부담한 사회보장 관련 지출액은 일반회계예산의 31%에 해당한 28조7000억 엔에 달했다.
이 때 일반회계 세출재원의 48%를 국채발행에 의존했다. 사회보장지출액의 증가가 정부의 국채발행을 통한 재원조달로 연결돼 국가채무를 누적시키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민주당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공 들여일본 민주당 정부는 연금제도와 육아지원관련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연금 분야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직자를 중심으로 국민연금 수혜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육아지원 분야에서는 유치원과 보육원을 통합해 3살 미만의 대기아동수를 대폭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국가재정이 악화된 일본의 여당이 ‘과잉복지’의 여지가 있는 각종 사회보장 관련 지출을 삭감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보장기능을 강화하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사회보장지출액 중 70% 정도가 고령자 관련 지출이다. 연금수급자의 퇴직 전 연간소득 대비연금수입 비율을 나타내는 소득대체율도 OECD 34개국 중 31위다. 사회전체로 보았을 때는 사회보장지출 규모가 매우 크지만 실제 국민 개인들의 사회보장 수혜율은 매우 낮다는 의미다. 일본의 사회보장제도가 저출산이나 양극화와 같은 사회·경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소비세 인상인가? 일본 정부가 사회보장기능 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재정건전화 목표도 달성하고자 한다면 세출삭감, 각종 사회보험료 인상, 개인소득세율·법인세율 인상과 같은 다른 정책대안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세출삭감은 현민주당 정부가 2009년 정권교체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시도했지만 겨우 1조∼2조 엔의 재원밖에 조달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했다. 각종 사회보험료나 개인소득세율 인상은 그 부담이 현재 근로세대에게만 집중되고 만다는 점에서 여의치 않다.
그리고 일본의 실효법인세율은 2011년부터 40.69%에서 35.6%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국가들보다 높아 국가경쟁력 관점에서 전혀 고려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러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일본의 소비세율은 현재 5%로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고, 세율인상의 부담이 현재 근로세대에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한 국가의 국민소득 중 조세부담액과 사회보험료부담액 합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국민부담율을 보더라도 일본(2009년, 38.4%)은 한국, 미국과 함께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점이 일본 국내여론이 소비세율 인상을 다소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민주당 정부는 2014년 4월부터 현행 5%의 소비세율을 8%로 인상하고 2015년 10월부터는 10%로 인상하겠다는 법안 중의원에 제출했다.
세계 각국의 재정위기 경험을 되돌아보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만으로는 재정위기의 가능성을 가늠하긴 어렵다.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이 100%를 넘어선 시점은 1997년이고 2010년에는 200%를 넘어섰다.그럼에도 일본이 극단적인 재정파탄을 모면할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저금리 기조에 있다. 1985년만 하더라도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7.2%였으나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덕에 2005년 1.4%로 떨어졌다.
2012년 6월현재는 1%도 채 안 된다. 일본 정부로서는 고금리의 국채를 저금리 국채로 얼마든지 차환할 수 있었고, 2000년까지 연간 10조엔정도였던 국채이자부담액도 2005년 이후에는 7조∼8조 엔대로 낮아지는 ‘저금리 보너스’ 혜택을 누렸다.지금 일본 국내에서는 이번 중의원 회기내 소비세 인상과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지 못하면,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돼 국채시장이 요동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일본이 남부 유럽 국가들처럼 극단적인 재정파탄 상태로 빠져들지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참여자의 기대에 달려 있다. 다만 유럽 재
정위기 여파가 확산되고 있고 미국 경제 전망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이 변수다. 그러나 안전자산 1호로 간주되는
일본 국채의 75%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금융회사들이 자국 정부의 국채상환 능력을 의심해 국채 대신 다른 자산운용수단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재정적자 메우는 데 기업 돈 쓰여그렇다고 일본 재정이 중장기적으로도 지속가능 하다거나 현재와 같은 막대한 국가채무가 일본경제에 하등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국가채무와 경제성장 관점에서 일본경제를 되돌아보면,1990년대 후반까지 비교적 높은 가계 저축률이 금융권을 경유해 국채매입에 활용됨으로써 정부의 자금부족을 해갈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가계 저축률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가계대신 기업이 국채를 매입하는 자금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탓에 일본 기업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막대한 여유자금으로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국가의경제성장에는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가 필수불가결한데, 이에 필요한 자금이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일본의 경제성장에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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