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부품·소재 국산화로 100조 시장 잡는다

부품·소재 국산화로 100조 시장 잡는다

일본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IIT는 6월에 세계 1위인 한국의 2차 전지 시장점유율이 올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2위인 일본과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뜻이다. 반도체와 LCD에 이어 지난해 2차 전지 분야까지 한국에 1위 자리를 빼앗긴 일본 업계로선 맥 빠지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10년 기술 격차를 10년 만에 뛰어넘은 한국 업계가 넘어야 할 산도 있다. 2차 전지의 부품·소재 국산화율이 1%인 분야도 있다. 2020년 100조원 규모로 커질 이 시장을 장악하려면 중대형 배터리 관련 기술과 더불어 부품·소재 국산화율을 높여야 한다.



“소형 2차 전지 시장에서 삼성SDI는 지난해 대비 시장점유율 2.9%를 늘려 1위 수성에 문제가 없을 전망이며, LG화학은 시장점유율을

18.5%까지 올려 파나소닉을 제치고 2위에 오를 것이다.”일본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IIT가 올 6월에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이다. 지난해 한국에 1위 자리를 빼앗긴 일본 업계의 노력에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SDI는 2010년 일본의 산요를 제치고 소형 전지 시장 1위에 올랐다. 2011년엔 한국 기업 전체의 시장점유율이 일본 기업 전체를 앞질렀다. 삼성SDI는 올 2분기 소형 2차 전지로 87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분기 최고 매출액이다. 업계 최초로 소형 전지 월 1억셀을 판매하는 기록도 세웠다. IIT는 LG화학도 2분기의 선전으로 최초로 소형 2차 전지 시장2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에 2차 전지 시장점유율 95%였던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기업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010년 9월 산요를 인수하며 1위 탈환에 나선 파나소닉은 LG화학에도 밀릴 처지에 놓였다.


한국 기업의 독주 예상

2차 전지란 충전을 해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말한다. 1895년 탄생한 납축전지가 최초의 2차 전지다. 1980년대 휴대용 카세트의 보급과 함께 니켈카드뮴 전지가 한동안 주류를 이뤘다. 일본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시장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기업이 뛰어든 리튬이온 전지 시장은 다르다. 1970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개발에 성공했고, 1991년 소니가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일본 업계가 독주했다.

한국은 소니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2000년 리튬이온 전지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일본을 제쳤다.2차 전지 시장은 전지의 크기에 따라서 두 가지로 나뉜다. 휴대폰,태블릿PC, 소형 음향기기에 주로 사용되는 소형 전지 시장과 전기차와 대용량 에너지저장시스템에 사용되는 중대형 배터리 시장이다.한국의 기업이 1위를 달리고 있는 시장은 소형 전지시장이다. 자동차용 배터리를 비롯한 중대형 시장에선 아직 절대 강자가 없다.

한창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있는 단계다. 일부 기업이 리튬이온을 활용한 배터리를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로는 한번 충전해 3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전기차를 만들기 어려워서다. 새로운 소재를 활용한 배터리가 등장해야 하는데 아직은 가능성만 있을 뿐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일본과의 10년 기술 격차를 따라잡고 소형 전지 시장 1위에 올랐을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었다. 삼성SDI가 처음 시장에 뛰어들었던 2000년은 2차 전지의 주류가 니켈계에서 리튬계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당시 니켈계 2차 전지 관련 기술과 시장은 일본이 모두 장악한 상태였다. 삼성SDI는 과감하게 니켈계 시장을 포기했고,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몰두했다. 이후 소형 IT기기의 성장과 더불어 시장의 주류가 리튬이온 배터리로 완전히 넘어왔다.

삼성SDI의 예측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2005년 시장에 진입한 LG화학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 집중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오너의 과감한 결정과 뒷받침도 한몫 했다. 삼성SDI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기술 개발과 생산라인 확보에 투자한 돈만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2차 전지 기술 개발과 생산을 위해선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데, 일본은 투자 결정이 신속하지 못하다”며 “오너 리더십이 강한 한국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화재 사건에 대처하는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차이를 예로 들었다. 2008년 3월 LG화학 오창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3개월 이상 제품 생산에 차질이 예상될 정도의 큰 사고였다. 설비를 복구하고 생산재개 결정을 하는데 수천억원이 오갔다. LG화학은 단 하루 만에 모든 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상황을 복구했다. 오창공장 화재 6개월 전에는 파나소닉의 공장에서도 비슷한 화재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파나소닉이 공장을 복구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장 상황도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2000년대 중반부터 IT기기 생산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휴대폰을 포함한 MP3플

레이어, PDP,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 충전용 전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자연스럽게 시장에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생겼다. 후발 주자인 한국에게도 배터리를 납품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그룹 계열사도 사업 초창기 안정적인 수익원 역할을 해줬다. 시장의 선도적 지위를 이용해 한국 배터리 생산업체를 고사시키려던 일본 기업의 전략은 물거품이 됐다.

이후 한국의 기업들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신속하게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췄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2000년대 초반 폭발위험성을 이유로 한국 기업을 기피하던 IT제조업체들이 한국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기술력과 안전성, 경제성에서 일본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 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2차 전지 제조·판매에선 1위를 질주하고 있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분야에선 아직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튬전지 4대 핵심 소재의 국산화율은 상당히 낮다. 양극소재(70%)와 전해액(86%) 부문에서는 국산화가 상당히 진전됐지만 음극재의 국산화율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배터리 생산 비용의 75%는 4대 핵심 소재에서 발생한다. 배터리는 한국이 열심히 팔고,수익은 원천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가 가져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부품·소재 부문 역량 강화해야2차 전지 시장은 2020년 100조원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서 시장을 노리는 경쟁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형 전지에서 한국에 시장을 내준 일본은 중대형 배터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는 NaS 전지를 개발해 일부 상용화에 성공했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이 장악한 리튬이온 전지 시장을 포기하고, 마그네슘과 공기금속전지 등 차세대 전지 개발에 나섰다.

IBM이 리튬금속을 활용한 공기금속전지를, 독일의 BASF는 아연금속을 활용한 차세대 전지를 개발 중이다.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 역시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며 리튬이온계 소형 2차 전지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한국이 물량공세를 펼치는 중국과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에 끼인데다, 서양의 기술개발 의지가 높아 불안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윤성훈 연구원은 “일본과 미국이 차세대 전지 소재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걸

음마 단계”라며 “향후 10년은 리튬이온 전지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신장환선임연구원은 “소형 2차 전지 시장은 중국이 넘볼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소형 IT기기는 사람들이 밀착해 들고 다니는 제품이다. 혹시라도 폭발사고가 나면 IT기기 제조회사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

중국이 만든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아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게 신 선임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 기업인 레노바가 IBM의 컴퓨터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중국의 배터리는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며 “자국의 기업이 외면하는 배터리를 어느 나라에서 쓰겠냐”고 반문했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소형 2차 전지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장조사 기관이 ‘2020년 즈음에는 자동차용 배터리와 ESS용 배터리가 소형 2차 전지 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최종 승자는 중대형 배터리 시장에서 가려질 확률이 높다. 국내 기업이 현재의 수익과 미래를 대비한 기술 개발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2차전지의 종류와 특징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전지다. 충전할 수 있는 축전지라고 생각하면 쉽다. 한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일반 건전지)와 달리 외부 전원을 이용해 충전한다. 노트북·휴대전화·태블릿PC 등 들고 다니는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납축전지·알칼리축전지·기체전지·리튬이온전지·니켈수소전지·리튬폴리머전지 등이 여기에 속한다.충전물질이 무엇이냐에 따라 니켈전지·이온전지·리튬이온전지·리튬폴리머전지 등이 있다. 2차전지는 크게 양극활물질(양극재)·음극활물질(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그림 참조).

■ 납축전지: 2차전지로 가장 많이 이용된다. 양극에 이산화납, 음극에 납을 넣고 황산을 섞은 전해액을 사용한다.

■ 알칼리축전지: 양극에 수산화니켈, 음극에 카드뮴, 전해액으로는 알칼리 용액을 사용한다.

■ 기체전지: 전지의 양·음극에 기체를 사용한 것이다. 용량이 작아 실용성이 낮다.

■ 리튬이온전지: 방전 과정에서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는 전지다. 충전 시엔 리튬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다시 이동한다. 리튬이온전지는 충전 및 재사용이 불가능한 리튬전지와 다르다. 리튬전지는 1차전지다.

■ 리튬폴리머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액체가 아닌 고체(폴리머)가 들어 있는 전지다.

■ 니켈수소전지: 양극은 니켈 산화물, 음극은 수소 합금을 사용하고, 전해액은 수산화칼륨액을 쓰는 전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