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억에 영입해 광고 효과만 수백억

스포츠 스타가 움직인 자리에는 돈의 흔적이 남는다. 매번 해외의 유명한 선수가 이적을 할 때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이적료가 뒤따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09년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길 때 이적료가 8000만 파운드(약 1420억원)였다. 더 놀라운 것은 구단이 한 선수에게 이런 거액을 투자하고도 흑자를 기록한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업이다. 구단의 경제적 가치만 수조원에 달한다. 매년 프로 스포츠구단의 경제적 가치를 책정하는 미국의 포브스는 올해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가치를 22억30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로 평가했다. 국내 웬만한 기업의 시가총액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구단이 보유한 선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매출을 만들어내는 자산이다.
한국의 간판 축구 선수 박지성(31) 역시 해외의 거대 스포츠 구단이 투자할 만한 수익성 좋은 상품 중 하나다. 박지성은 7월 소속팀이던 맨유를 떠나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맨유와 QPR측의 합의에 따라 이적료는 공개하지않기로 했지만 영국의 다수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적료는 88억원 수준이다.
맨유는 박지성을 7년간 데리고 있으면서‘남는 장사’를 했다. 당장 이적료 만으로도 충분한 이익을 거뒀다. 맨유는 2005년 네덜란드 PSV아인트호벤에 74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박 선수를 영입했다. 7년간 충분히 활용한 다음 88억원에 팔았으니 14억원을 남긴 셈이다. 여기에 나이를 고려하면 맨유가 얼마나 경제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맨유가 박지성을 영입할 당시 박 선수의 나이는 24살이다.
축구 선수로서 기량이 정점을 향해가는 시점이다. 미래가 유망한 선수의 몸값이 오르기 전에 적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얻은 것이다. QPR로 이적한 박 선수의 현재 나이는 31살이다. 많은 선수가 30대후반까지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수 차례 무릎 부상과 수술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박 선수에겐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였다.
실제로 박 선수의 아버지 박종성씨는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2015년 정도를 은퇴 시기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맨유 입장에선 1~2년만 지나면 단 한 푼의 금전적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선수를 잃을 수도있었다는 뜻이다.
프리시즌 해외 투어 때 마케팅 첨병맨유는 직·간접적인 마케팅 효과로도 큰 이득을 얻었다. 한국타이어는 2007년부터 해마다 50억원을 내고 맨유의 스폰서가 됐다.맨유는 돈을 얻었고 한국타이어는 광고 효과를 누리는 윈윈 계약이었다. 맨유의 홈 구장에는 한국타이어 광고판이 등장했다. 덕분에 영국 내에서 지난해 한국타이어 제품의 판매량은 2007년 대비 80%가 증가했다.유럽 전체적으로는 30% 증가했다. 서울시도 맨유의 스폰서였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맨유와 27억원의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역시 맨유와 서울시 모두에게 긍정적이었다. 서울시가 작성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맨유를 후원하면서 서울시가 누린 광고효과는 307억원이다.
아시아 투어를 통해서 맨유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데도 박지성의 역할이 컸다. 유럽의 축구팀들은 시즌이 끝나고 5월에서 6월 사이 프리시즌 경기를 치른다. 팀의 경기력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일종의 전지훈련인 셈이다. 하지만 단순한 훈련이 아니다. 프리시즌 경기는 구단의 훌륭한 수입원이기도하다. 아시아·남미·미국 등을 돌며 막대한 대전료를 통한 수입을 올린다. 맨유가 동남아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을 한 바퀴 돌면서 얻는 수익만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유가 아시아 투어를 하는 동안 박 선수는 마케팅의 첨병 역할을 착실하게 해냈다.박지성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다.지난 몇 년 동안 해외무대에서 박지성 선수만큼 큰 성공을 거둔 아시아 선수는 없다.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나 일본 등에서 박선수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맨유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 매번 아시아 투어를 할 때마다 박 선수를 전면에 앞세웠다. 맨유는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팀이 됐다. 그 홍보 효과만으로도 박지성 선수를 영입하는데 든 74억원을 충분히 건졌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이 팀을 떠나기 전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를 기점으로 한국타이어와 서울시는 맨유의 스폰을 중단했다.물론 박지성이 맨유에서 쌓은 업적을 마케팅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축구 선수로서 기본적인 역량을 보여줬기에 이러한 마케팅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중국의 대표 공격수 동팡저우다. 맨유는 박지성을 영입하기 1년 전 동팡저우를 영입했다. 거대한 인구의 중국 시장에서의 마케팅을 노린 영입이었다.
하지만 동팡저우는 그에 걸맞은 축구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EPL에서 단 1경기만을 소화하고 팀을 떠났다. 박지성 역시 영입 초반 티셔츠 판매용’ 선수라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냈다.박지성이 맨유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까지는 알렉슨 퍼거슨(71) 맨유 감독의 역할이 컸다. 퍼거슨은 박지성의 출전이 뜸해져 팬들의 불만이 커지는 시점이면 어김없이 언론을 통해 박지성 선수를 극찬하는 멘트로 팬들을 안심시켰다.
가끔씩 큰 경기를 앞두고 박지성 선수와 기자회견을 가지거나,팀의 상징인 주장 완장을 박지성 선수에게 채우는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매번 이벤트를 벌일 때마다 언론은 그 내용을 팬들에게 전달했고, 맨유의 브랜드 이미지는 높아졌다.
그는 26년째 맨유를 이끌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 한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단순히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만으로 그의 능력을 평가할수 없다. 그는 훌륭한 감독이기 이전에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덕분에 그는 맨유라는 기업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수많은 경영진이 교체되는 가운데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퍼거슨은 가장 효율적으로 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스포츠 산업의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구단의 경제적인 이득과 팀의 성적 향상을 동시에 이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구단 이사회·선수·팬·스폰서들과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퍼거슨의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돈으로 얽힌 이사회와 스폰서, 성적이 중요한 선수와 팬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박지성 마케팅 준비하는 QPR이제는 QPR이 박지성 효과를 누릴 차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QPR은 박지성의 마지막팀이 될 확률이 높다. 더 이상 이적료로는 수익을 남길 수 없다는 뜻이다. 경기 내적·외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뽑아야 한다. QPR의 구단주이자 말레이시아의 저가항공사의 CEO인 토니 페르난데즈가 그 키를 쥐고 있다. 페르난데즈는 2001년 적자 상태에 있던 국영 기업을 인수해 에어아시아를 설립했고, 9년 만에 아시아 최대규모의 저가항공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만큼 사업 안목이 뛰어나다. 그런 그가 150억원(연봉 포함)이 넘는 돈을 들여 박지성을 영입했을 때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박지성 영입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있다. 박지성의 영입과 동시에 QPR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해외 스포츠 구단 중 하나가 됐다. 광고를 통해서였다면 수십 배의 돈이 들었을 일이었다. 거기다 에어아시아가 덩달아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 회사가 일본에 설립한 자회사가 올해 말 국내 노선취항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7월 30일 에어아시아는 부산 해운대에서 ‘에어아시아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가졌다. 토니 페르난데즈 회장이 직접 참석했고,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 성공적인 행사를 치렀다. 만약 QPR에 박지성이 없었다면 이 행사에 참석한 기자의 숫자나 미디어에 노출된 횟수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7월 17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QPR의 아시아투어는 박지성에 대한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행사였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돌며 3경기를 가졌는데 가는 곳마다 취재진이 몰렸다. QPR투어가 아닌 ‘박지성 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박 선수가 지난해부터 태국에서 자선축구시합을 열었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몫을 했다. 박지성은 이 행사에 세계적인 축구스타,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는 아이돌 가수 등을 초청해 태국과 주변 국가에서 큰 인기를 쌓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까지 태국 기자들이 찾아 박지성 관련기사를 쏟아냈다. QPR이 운영하는 페이스북과 페르난데즈 회장의 개인 페이스북에도 연일 박지성 관련 이야기를 쏟아내며 박지성 마케팅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박지성 입단을 기념하는 특가 항공권 상품도 내놨다.에어아시아는 서울과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푸켓 등을 잇는 특가 항공권 예약을 7월30일부터 8월 12일까지 받았다.
한국 인지도 높이는데 기여반면 박지성의 이적이 반갑지 않은 기업도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아시아나항공이다.이 회사는 2007년 박지성 선수를 명예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박지성에게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무료로 1등석을 이용할 수 있는 항공권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이 QPR의 유니폼을 입으면서 곤란한 입장에 놓였다. 자신이 후원하는 선수가 경쟁사인 에어아시아의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도의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혜택을 계속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속은 쓰릴 수밖에 없다. 박지성도 아시아나항공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투어에서 박지성은 QPR 선수 중 유일하게 ‘에어아시아’ 로고가 박힌 빨간색모자를 쓰지 않았다. 수년간 자신을 후원해준 기업과의 의리를 지키는 차원에서였다.
해외의 유명 물류회사인 DHL도 갑작스런 박지성의 이적으로 눈물을 흘린 기업 중하나다. DHL은 맨유의 스폰서다. DHL 광고에는 박지성 선수를 포함한 맨유 선수들이 등장한다. 더 이상 맨유 소속이 아닌 선수를 광고 모델로 계속 쓰기에 애매한 상황에 놓인 것. 거기다 DHL은 맨유의 아시아투어를 통해 대대적인 아시아 마케팅을 펼치며 마케팅을 위해 박지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맨유가 투어 이동 시에 탑승할 버스에도 웨인 루니와 박지성 선수의 사진이 가장 크게 프린팅 되어 있었다.
정작 박지성이 타지 않은 ‘박지성 버스’가 투어 내내 아시아 지역을 누볐다.반면 영국축구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SBS ESPN은 박지성의 이적이 반갑다. 광고료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시청률 때문이다.SBS ESPN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축구의 게임당 평균 시청률은 0.84% 정도다. 하지만 박지성이 출전한 경기는 시청률이 두배로 뛴다. 지금 상황에서 QPR에서 박지성이 출전할 확률은 맨유에서 뛸 때보다 훨씬높다. 박지성도 쟁쟁한 선수가 많은 맨유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를 지키는 일이 적지 않았다. 현재 QPR에서는 팀의 주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핵심전력으로 분류되는 박지성이다.
SBS ESPN은 이런 분위기를 틈타 아직 한달 가까이 남은 QPR의 개막전 경기 중계 광고를 벌써 시작했다.맨유와 같은 구단이 국내 스포츠 스타를 영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례를 들어국부가 유출된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프로 리그에서 국내 스포츠 스타의 인기를 빌미로 높은 중계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국내 스포츠 스타가 오히려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김도균 경희대 스포츠학과 교수는 “100억원전후의 중계료는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로 보면 많지 않은 금액”이라며 “스포츠 스타가해외에서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포츠 산업은 아주 고도화되고 복잡한 고부가 산업”이라며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벤치마킹 해서 국내 스포츠 구단은 물론 기업들도 경영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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