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40대 남자도 스크린에 빠지다
30, 40대 남자도 스크린에 빠지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사는 김종현(38)씨는 주말마다 아내와 극장을 찾는다. 별다른 경조사가 없다면 빠뜨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김씨
가 대단한 영화광인 것은 아니다. 특별히 따지는 장르나 배우도 없고 영화를 본 후 그럴듯한 영화평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김씨는 “지난 해부터 자주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됐다”며 “영화 많이 보게 되자 이야깃거리도 늘고 정서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극장을 찾는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12년 상반기 극장 관객수는 8279만명으로 2011년 상반기 6842만명에 비해 21% 성장했다.현재 추세라면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1억5972만명)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매출도 2009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뒤 꾸준히 증가했는데 올해는 1조5000억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불황기에 반짝 호황을 누리는 산업이다. 비용대비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영화 한 편을 보는데 쓰는 돈은 3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기와 영화산업이 반비례 한다는 논리만으로 최근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성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내외적인 불황에 시달리던 2008~2009년사이에는 영화산업도 함께 침체했다. 호황과 불황에 따른 성장세의 변동폭 또한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경기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그만큼 강해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보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장은 “다양한 기획과 참신한 소재를 발굴하고 제작과정에서의 누수를 줄이려는 자구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며 “한국 영화의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게 인기의 가장 큰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2007~2008년 최악의 침체기를 겪으면서 제작자들이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며 “장르를 다양화하고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요소를 늘리려는 노력이 축적되자 지난해 말부터 만족스러운 콘텐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장기간에걸친 체질 개선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는 얘기다. 한두 명의 스타급 배우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 내에 여러 캐릭터가 공존하는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관객층의 다양화도 한 몫 했다. 사실 영화계에는 20대 여성 관객을 잡아야 흥행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변했다.여전히 20대 여성이 주류지만 30~40대 관객이 크게 늘었고, 이제는 남성 관객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건축학개론’, ‘댄싱퀸’,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30~40대가 공감할 만한 내용의 영화들이 선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용산의 C극장 관계자는 “물론 주말 관객이 가장 많지만 주중 낮에 찾아오는 주부나 학생 관객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며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 관객도 보편화됐다”고 말했다.
김진국 배재대 아펜젤러국제학부 교수는 “주 소비계층인 30~40대의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며 “과거의 소비계층이 불황에는 저축과 긴축으로 대응했다면 지금의 30~40대는 삶을 즐기는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영화 등 문화 생활에 대한 지출을 쉽게 줄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30~40대는 이제 국내 영화산업의 주소비층으로 자리잡았다. 메가톤급 흥행을 계속하는 ‘도둑들’의 연령대별 예매율을 살펴보면 30대가 40%로 1위다. 32%의 40대 이상과 25%의 20대가 뒤를 잇는다.
8월 16일 현재 예매율 2위를 기록 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30대와 40대이상의 비중이 각각 37%로 가장 높다. 물론 현장 판매분이 반영되지 않고 영진위의 공식 집계가 아닌 영화예매사이트의 통계라는 점에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계자는 “20대 젊은 층일수록 인터넷 예매 사용빈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믿을만한 통계”라고 말했다.올 여름 전국을 강타한 폭염 때문에 영화산업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봤을 뿐 장기적인 추세가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매출이 오른 것은 티켓요금이 올라서라는 반론도 나온다. 하지만 관객 급증은 폭염이 찾아오기 전인 상반기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티켓요금의 인상만으로 관객 수의 증가를 설명하긴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헐리우드 대작을 넘어서는 우수한 한국 영화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뮤지컬도 승승장구
상반기엔 ‘엘리자벳’ 하반기엔 ‘위키드’가 효자“제가 무대에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어요. 영화나 음악에 비해 감정전달이 훨씬 잘 되거든요.노래로 전해지는 배우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점도 좋아요.”공서연(30)씨는 뮤지컬 매니어다.
티켓 가격이 비싸 자주 다닐순 없지만 1년에 4~5번 정도는 꼭 관람한다. ‘맘마미아’나 ‘캣츠’ 같은 유명 뮤지컬은 여러 번 봐서 삽입곡을 외웠을 정도다. 올해도 ‘엘리자벳’, ‘잭더리퍼’ 등 세편의 뮤지컬을 관람했다. 공씨와 같은 팬들이 늘면서 영화만큼 뮤지컬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트 시장동향에 따르면 대형 라이선스뮤지컬의 흥행을 바탕으로 2012년 1분기 뮤지컬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상반기를 기준으로 보면 인터파크 뮤지컬 판매액은 약 778억원에 달해 지난해 627억원보다 무려 24%나 늘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 동안 인터파크 매출로 전체 시장규모를 추산해왔는데 인터파크의 공연시장 점유율이 75~80%인 것을 감안하면 상반기에만 이미 1000억원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것도 상대적으로 비수기인 상반기에 거둔 실적이다.돌풍은 진행형이다. 5월 31일 초연해 두 달 만에 15만 관객을 돌파한 ‘위키드’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 내한 공연이 2005년 세운 19만명 기록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시장 역시 30대와 남성 관람객이 성장에 힘을 보탰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11년 공연예술 경기동향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뮤지컬 티켓 구매자의 40.4%가 30대였다.
전체 공연 티켓구 매자에서는 20대가 41.7%로 가장 많았지만 뮤지컬만은 30대가 가장 많았다.위키드 역시 남성 관객 비율이 35%에 육박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가족 단위 관람객도 부쩍 늘었다.전망도 좋다. 지난해 말 블루스퀘어, 디큐브아트센터와 같은 전용극장들이 문을 열면서 관람 환경이 개선됐고 총 제작편수도 지난해 상반기 1150편에서 올해 1370편으로 늘어나는 등 양적인 성장도 동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수입 뮤지컬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1분기 기준으로 톱10에‘광화문연가’ 등 국내 창작 뮤지컬도 3편이나 자리했다. 창작 뮤지컬의 제작 여건만 나아진다면 뮤지컬 돌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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