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suit] 부자들의 전쟁
[lawsuit] 부자들의 전쟁
2007년 런던 하이드파크 남쪽 나이츠브리지. 일명 ‘크렘린의 대부(the Godfather of the Kremlin)’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돌체&가바나에서 쇼핑을 한다. 그 땅딸막한 러시아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앙숙 관계다(a sworn enemy). 매장을 나서던 그는 일명 ‘은밀한 올리가르히(the Stealth Oligarch,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목격한다. 푸틴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바로옆의 더 고급스럽고 비싼 에르메스 매장에서 쇼핑 중이다.
베레조프스키는 7년 동안 이 기회를 기다려 왔다. 아브라모비치의 경호원들 사이를 헤집고 그 고급 부티크 매장 안으로 뛰어든다. “자네에게 줄 선물이 있네.” 그는 과거의 제자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한다(tells his onetime protégé triumphantly). “내가 자네에게 주는 거야!”연상의 올리가르히는 자신이 한때 아들로 생각했던 아브라모비치에게 종이 한 장을 던진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가 뒷걸음 질치면서(the younger Russian recoils) 그 문서는 바닥에 떨어진다. 56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고소장이다.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의 소송이다. 스토리의 공개적인 부분은 이렇게 시작됐다. 억만장자들이 등장하는 화려한 배역, 무장한 요트, 태연한 암살, 돈이 가득 든 가방, 크렘린에서의 음모…. 때때로 할리우드 영화의 각본 같다(seems scripted in Hollywood). 이 드라마는 런던의 법정을 배경으로 완전히 스토리에 몰입한 청중들 앞에서 펼쳐진다(Played out in front of a rapt audience in a London courtroom). 러시아의 권력다툼, 푸틴의 부상, 그의 권력기반 강화에 관해 많은 사실을 말해준다.
베레조프스키 자신이 훗날 공판에서(in court proceedings) 묘사한 대로 “이 사건은 전형적인 러시아 스토리다. 많은 암살자가
등장하며 대통령 자신이 킬러에 가깝다.”공판 이야기는 1994년 카리브해의 개인요트에서 시작된다. 러시아 최대 부호 몇몇이 참가한 휴일 크루즈 여행이다. 베레조프스키는 전화로 쉴 새 없이 떠들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영화 ‘배트맨 리턴즈(Batman Returns)’의 펭귄맨을 약간 닮은(bears a passing resemblance) 그는 그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부호다.
두뇌가 명석한 수학 교수인 그는 탈공산주의 경제에서 성공하는 법을 재빨리 간파했다(has been quick to understand how to successfully navigate the postcommunist economy). 러시아 최초로 자동차 판매 대리점을 열었다. 인플레이션 개념이 없는 어수룩한 제조업자들에게 대금을 늦게 지급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패밀리’로 알려진 보리스 옐친 대통령 측근 실세그룹(inner circle)에 속한 소수 사업가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에는 희생이 따른다(such success comes at a price). 크루즈에 참가한 베레조프스키의 양 손은 상처 투성이다. 한 달 전 암살 기도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의 차 바로 옆에서 1kg의 폭탄이 터져 그의 운전기사 머리가 날아갔다(decapitating his driver). 갱단이 우글거리는 모스크바에서 그해 53번째 폭탄테러였다. 하지만 죽다 살아난 뒤 베레조프스키는 달라졌다(the near-death experience has transformed Berezovsky). 러시아를 사업하기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면 직접적인 정치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했다.TV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재빨리 간파한 그는 러시아 최대 채널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영자금이 필요했다.크루즈 여행 도중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요트에 탄 사람은 대부분 베레조프스키가 아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얼굴이 한 명 있다. 소심한 듯하고 약간 흐트러진 외모에 순하게 미소 짓는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28세의 나이로 베레조프스키보다 20세 연하다. 아브라모비치는 갓난아기때 부모를 잃고 인정 많은 삼촌 손에 길러졌다. 타고난 사업가인 그는 그 뒤 승승장구하며 성공적인 석유 거래인으로 성장했다(a business natural, has worked his way up to become a successful oil trader).
이제 다른 사람들이 요트 위에서 휴식을 취할 동안 아브라모비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베레조프스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is using the opportunity to ingratiate himself with Berezovsky).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재주가 뛰어나다(is very good at getting people to like him)”고 베레조프스키가 훗날 다소 씁쓸한 말투로 증언한다. “겸손한 척하는 데 능하다.”
요트에서 아브라모비치는 베레조프스키의 TV 채널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베레조프스키가 크렘린 연줄을 동원해 두 국영 석유업체를 민영화하도록 (uses his Kremlin connections to force the privatization of two state oil assets) 하면 아
브라모비치가 자신의 무역회사와 합병해 석유 메이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두 사람은 시브네프트 설립 계약에 합의한다. 시브네프트는 훗날 시가총액이 130억달러를 웃도는 회사가 된다.
하지만 어떤 계약내용도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Nothing at all is put on paper). 문제의 본질은 카리브해의 크루즈 여행 도중 합의된 사항이 정확히 무엇이냐다. 이는 18년이 지난 오늘날아 브라모비치가 협박했다는 주장과 함께분쟁의 골자를 이룬다(is the main bone of contention). 베레조프스키는 석유회사 지분을 반반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이 전적으로 소유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한다.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은 1994년의 그 크루즈 여행 후 베레조프스키가 옐친 대통령을 상대로 국영 석유회사들을 매각하도록 로비를 벌이기 시작됐다는 점이다(started lobbying President Yeltsin to putthe oil assets up for auction). 석유 수입으로 TV 채널의 운영자금이 넉넉히 조달되면 그 대가로 어려움을 겪는 대통령의 재선을 돕겠다고 주장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입찰 당일 자신이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how he was in top form) 돌이켰다.
복도에서 미친듯이 협상을 벌여 한 경쟁자에게 혜택을 주는 대가로 입찰가를 낮게 써내도록 하고, 또 다른 경쟁자는 그의 빚을 모두 갚아주는 조건으로 기권시켰다. 그것은 담합이 아니었다고(It wasn’t fixing) 훗날 법정에서 그가 말했다. “나는 그냥 돌파구를 찾을 뿐이다(I just find the way through)! 내 사전에서 그건 담합이 아니다.”카리브해 선상에서 마련된 계획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worked to perfection).
1996년 베레조프스키가 소유한 TV 채널을 등에 업은 옐친은 승산이 없어 보였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베레조프스키도 보상을 받았다. 옐친 정부에 참여해 진정한 막후 실력자가 됐다(became a true powerbroker). 한 때는 체첸 테러범들과 인질석방을 협상하고, 그 다음에는 신당을 창설하기도 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극소수 인사 중의 한 명이었다. 경제지 포브스는 베레조프스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기업가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베레조프스키에게는 과대망상적인 측면이 있었다(There was something of the megalomaniac about Berezovsky). 그는 뜬구름 잡는 구상을 내놓곤 했다”고 아브라모비치가 재판 중 증언했다. “러시아에 군주제를 다시 도입하자는 구상도 있었다. 더 거창한 계획을 품을수록 그는 더 많은 수익을 바라보게 된다(The grander the plan he entertained, the more cash he would be after).”
아브라모비치는 시브네프트를 경영하는 더 평범한 과업을 떠맡았다(got on with the more mundane task). 해외에 별도의 자회사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무역회사를 설립해 장애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장애자를 위한 세금감면 혜택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TV 채널을 이용해 갈수록 더 명성·영향력·악명을 높여갔다.
또한 쇼핑할 시간도 약간 있었던 듯하다. 재판 증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96~2000년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의 ‘제자(protégé)’ 아브라모비치와 정기적으로 접촉했다. 프랑스에서 전화를 걸어 대저택(chateau) 구입비로 2700만 달러를 요구했다. 런던에서는 여자친구에게 보석 사줄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베레조프스키가 현금 500만 달러가 필요했을 때는 5개의 두둑한돈가방이 배달됐다.
해마다 아브라모비치는 수 천만 달러, 때로는 수 억 달러를 베레조프스키에게 송금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송금이야말로 자신이 시브네프트의 공동 소유주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아브라모비치는 그 송금은 정치적 대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베레조프스키를 자신의 ‘크리샤(krisha)’로 묘사했다.러시아 마피아들 사이에서 보호를 뜻하는 ‘지붕’이라는 의미다. 1996년 선거를 전후해 베레조프스키는 아브라모비치를 ‘패밀리’에게 소개했다. 옐친의 가든 파티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케밥(꼬치구이)을 굽고 와인을 따랐다고 한 참석자가 돌이켰다.
그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데 대단한 열성을 보였다(going so far in his desire to be helpful). 한 손님이 그를 웨이터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one guest allegedly mistook him for a waiter). 하지만 그의 예의 바른 태도는 패밀리 구성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다(the chivalrous attitude was well received among members of the Family). 거만한 베레조프스키와는 대조적이었다. 곧 아브라모비치는 신뢰하는 측근이자 후원자로 입지를 굳혔다. 거기에 조용하기까지 했다. 1998년 한 TV 프로그램이 그를 “옐친 패밀리의 돈지갑(the wallet of the Yeltsin family)”으로 묘사할 때 보조자료로 아무런 사진도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행보가 대체로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as his progress had been mostly off-radar).
1990년대 베레조프스키가 실력자로 밀어주던(was maneuvering into a position of influence) 노숙한 젊은이는 아브라모비치뿐이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KGB 중령 출신인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로 별명이 ‘나방’이었다. 항상 똑같이 더러운 연두색 정장을 입었다고 사람들은 기억했다.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자동차 판매대리점 설립을 도왔다고 베레조프스키는 회고했다. “우리 관계는 상호 이해와 공동의 목표에 기초했다”고 베레조프스키가 재판에서 돌이켰다. 베레조프스키는 푸틴도 패밀리에게 소개했다. 자신의 스위스 별장으로 스키 휴가를 떠나면서 그를 초대했다. 그 뒤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회의 사무직에서 KGB의 후신인 FSB 국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한편 옐친 정권은 침몰하는 듯했다. 베레조프스키가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began to close in). 다급해진 패밀리는 믿을 만한 옐친후계자 물색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푸틴이 적임자라고 생각한 듯했다. 베레조프스키는 프랑스 휴양도시 비아리츠로 날아가 푸틴과 비밀회동을 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주저하는 푸틴에게 러시아의 차기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베레조프스키는 주장했다.
무명에 가까운 푸틴이 권력을 잡자마자 체첸 테러범들이 잇따라 폭탄을 터뜨렸다. 러시아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293명이 사망했다. 푸틴이 2차 체첸전쟁을 시작했을 때 베레조프스키의 TV 채널은 그를 지지했다. ‘나방’을 영웅적인 실력자 이미지로 부각시켰다. 다음 해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을 때 베레조프스키의 채널은 푸틴을 총력 지원했다(went all-out for Putin). 그의 라이벌들을 겨냥해 비방공세를 쏟아 부었다(burying his rivals under verbal mud). 그들은 TV와 싸우느라고 푸틴을 상대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푸틴이 승리했다.
“나라를 내 호주머니에 넣고 나니 정말 따분하다”고 베레조프스키가 진보파 정치인보리스 넴초프에게 말했다. 하지만 “푸틴은 베레조프스키가 자신을 만들어낸 방식을 결코 고마워 하지도, 잊으려 하지도 않았다” 고 넴초프가 돌이켰다.푸틴은 크렘린을 장악하자마자 자신의진정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started to show his true colors).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올리가르히들의 정치개입을 금지했다. 여전히 자신의 힘이 무한하다고 확신한(convinced of his own omnipotence) 베레조프스키는 “새로운 권위주의에 맞서 건설적인 견제세력”을 구축하겠다고 거창한 공표를 했다.
러시아 핵잠수함이 바렌츠해에서 침몰했을 때 베레조프스키의 채널은 반복적으로 푸틴을 공격했다.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함내의 수병들을 구해내지못했다고 비난했다(accusing him of being heavy-footed and failing to save the sailors on board). 그 뒤 베레조프스키는 크렘린으로 소환됐다. 평소와 다르게 푸틴은 그를 기다리게 했다. 이윽고 등장한 푸틴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전과 달라졌다. 평소처럼 친밀하게 ‘너(ty)’라고 하지 않고 격식을 차려 ‘당신(vy)’으로 불렀다고 베레조프스키가 법정에서 회고했다.
베레조프스키에 따르면 푸틴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TV 방송국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베레조프스키는 거부했다. 곧 발라클라바 복면모자를 착용한 무장경찰이 그의 사무실을 급습해 그의 사업에 대한 부패수사에 착수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이 푸틴을 완전히 잘못 봤다는(he’d completely misread the Moth)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그는 프랑스로 피신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여전히 자신의 제자 아브라모비치가 푸틴과의 전쟁에서 자기 편을 들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브라모비치도 변심한 듯했다.
푸틴이 5000만 달러짜리 요트를 갖고 싶으니 두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했다고 베레조프스키가 증언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응하지 않았고 아브라모비치도 거부하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훗날 아브라모비치가 자신을 배신하고 혼자서 푸틴에게 그 요트를 사줬다고(went behind his back and bought Putin the yacht himself) 믿게 됐다. 그러면서 베레조프스키가 갹출을 거부했다고 새 지도자에게 일러바쳤다고 말이다. “그것이 푸틴과의 관계에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베레조프스키가 증언대에서 건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베레조프스키에 따르면 아브라모비치의 가장 큰 배신은 2001년에 있었다.
자신의 옛 스승이 어려울 때 도와주기는커녕 그의 등을 찔렀다. 시브네프트 지분을 헐값에 넘기라고 베레조프스키에게 요구했다 (demanding Berezovsky hand over his share of Sibneft at a knock-down price). 그렇게 하지 않으면 푸틴과의 새 연줄을 동원해 베레조프스키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을 러시아감방에 가둬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베레조프스키가 재판에서 한 증언이다. “그는 점점 더 갱단처럼 행동했다”고 베레조프스키가 탄식했다. “아브라모비치가 얼마나 냉혹한 인물인지 마침내 명확하게 이해됐다.”한때 아들이나 다름없이 여겼던 사람에게 협박을 받은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의 시브네프트 지분을 25억 달러에 팔아넘겼다.
추정가보다 50억 달러가량 낮은 가격이었다.아브라모비치에 따르면 베레조프스키는 친구이자 소중한 스승이었지만 끊임없이 뇌물을 먹여야 하는 정치꾼이기도 했다(a political player whose palms needed constant greasing). 그 25억 달러는 베레조프스키에게 주는 마지막 뇌물이었다고 아브라모비치는 증언했다. 그가 제공한 정치적 봉사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는 뜻이다. “그가 나를 도와준 일을 대단히 고맙게 여겼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 같은 결과를 얻지못했다”고 그가 법정에서 말했다.베레조프스키는 지난 10여년간 영국에서 정치적 망명자로 살아왔다. 그의 재산은 계속 쪼그라든다.
그는 자신이 푸틴을 권좌에 올려놓았다고 시인했다. 푸틴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일생을 바쳤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다. 러시아에선 과거 그가 소유했던 TV 채널뿐 아니라 그를 지지했던 상당수 언론인까지 지금은 그를 악당 캐리커처,배트맨 푸틴에 맞선 펭귄맨, 어느 음모에나 끌어다 넣기에 유용한 희생양으로(a useful scapegoat for all conspiracies) 인식한다. 재판 중 증언에 모순이 발견될 때마다 그는 벗겨져가는 머리를 움켜쥐고 증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자신의 모순에서 벗어날 기발한 공식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 수학자 겸 권모술수에 능한 책략가(the mathematician-Machiavellian)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는지도 모른다(may have been trapped in his own schemes). 2차체첸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테러공격의 배후에 푸틴과 FSB가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같은 주장을 하는 더 객관적인 목소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할 때마다 물론 푸틴의 부상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사실 또한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된다.
한편 아브라모비치는 푸틴의 측근 실세로 부를 쌓았다. 포브스는 그의 재산을 120억 달러로 추산한다. 베레조프스키에게 남은 수억 달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다(look paltry by comparison).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듯(To rub salt into the older man’s wounds) 아브라모비치도 영국으로 이주했다. 세계 3위 부자인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유심히 관찰한다(his exploits are closely followed by the press). 그가 소유한 축구 클럽 첼시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차지했다.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의 고급 요트를 팔았지만 아브라모비치는 세계 최대 요트를 구입했다. 미사일 감지장치와 구명잠수정까지 갖췄다.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지방에 있는 아브라모비치의 대저택은 과거에드워드 8세와 그의 아내 심슨 부인 소유였다.
베레조프스키의 부동산과는 격이 다르다. 루퍼트 머독, 러셀 시몬즈 러시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가 그의 신년 전야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전해졌다. 그리고 찰스 왕세자가 폴로 경기에 늦었을 때는 아브라모비치가 자신의 헬리콥터를 보냈다. 그는 어마어마한 고가품과 실력자 친구들이 있지만(Despite his high-powered toys and friends) 여전히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준다(still manages to come across as the boy next door). 진보파 언론인, KGB 요원 출신 할 것 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준다. 옐친의 딸이 한 때 감탄했듯 “로만은 친구 사귀는 법을 안다.”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으며 원래 1억 달러 남짓한 가격에 국가로부터 인수한 시브네프트는 어떻게 됐을까? 아브라모비치는 국가, 아니 국영기업 가즈프롬에 130억 달러를 받고 되팔았다.
베레조프스키는 재판에서도 패했다. 영국 역사상 최고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판사는 마침내 지난 8월 31일 아브라모비치 손을 들어주며 베레조프스키의 소송을 기각했다.엘리자베스 글로스터 판사는 베레조프스키를 가리켜 “본질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평했다. “그가 자기 나름의 사건 해석을 믿도록 스스로를 세뇌했다는 인상을 받았다(gained the impression he had deluded himself into believing his own version of events)”고 그녀가 말했다. 판결이 내려진 지 몇 분도 안돼 베레조프스키는 법정을 나와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마치 푸틴 대통령이 판결문을 작성한 듯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일시적으로 다운됐지만 완전히 KO된 건 아님을(wasn’t out for the count) 시사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seemingly at pains to suggest).
하지만 그 몰락한 재벌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the definitive image of the fallen titan) 여전히 앞서 런던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촬영한 베레조프스키의 사진이다. 외면당하고 갈수록 괴짜처럼 보이는 반체제 인사가 푸틴을 겨냥한 단어들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내가 너를 키웠다, 너를 파멸시키겠다(I made you, and I will destro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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