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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퍼니’ 만들어 경영효율 높인다

‘홈퍼니’ 만들어 경영효율 높인다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에서 일하는 입사 6년차이자 결혼 4년차인 워킹맘 장모(33) 대리. 그는 평일 낮에도 아이 키우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주중이면 아이와 떨어져 있을 법 하지만 장 대리는 평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시로 아이와 만날 수 있다. 사옥 2층에 있는 사내 어린이집을 통해서다. 장 대리는 “출퇴근을 아이와 함께 하면서 안심이 되고 맞벌이 주부로서 심적 안정감을 얻는다”며 “업무 시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워킹맘을 위해 서린동 본사 외에도 서울 을지로의 SK텔레콤, 경기도 분당에 있는 SK C&C 사옥에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이란 광고 카피를 내놨던 삼성은 임직원에게도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지시로 올해 초 삼성생명 사옥에 140명 규모의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수원 사업장에서는 어린이집을 증축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6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LG그룹도 최근 서울 여의도 LG타워에 어린이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LG그룹 관계자는 “최선의 복지가 최선의 성과를 낳는 시대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며 “회사와 가정을 동일시하는 가족친화 경영이야말로 최선의 복지”라고 설명했다.


롯데 “육아휴직 의무로 써라”직원을 가족처럼 챙기는 ‘가족친화 기업’이 늘고 있다. 구성원이 회사를 가정처럼 느끼게 만드는 일명 ‘홈퍼니(Home+Company)경영’이다. 가족친화 경영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게 가장 평범하면서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고 업무시간엔 어린이집에 맡기고, 점심시간에는 틈틈이 아이를 볼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선 임직원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기업에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또 하나 대표적 사례가 육아휴직이다. 롯데그룹은 9월 17일부터출산을 앞둔 모든 여직원이 3개월의 출산휴가 후에 별도 신청 없이자동으로 1년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모든 계열사에서 일반 정규직 외에 비정규직 포함 총 2만5000여명이 적용 대상이다. 대부분의 기업에 육아휴직 제도가 있지만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현재 각 기업 여직원의 출산휴가 후 육아휴직 신청 비율은 60%대에 그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롯데가 파격적인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이 2월 취임 이후 여성 인재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이번 조치를 취했다. 그간 각 기업의 여직원들은 출산 후 육아부담을 이기지 못해 퇴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롯데는 이들의 이탈을 막으면서 애사심을 키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육아휴직제도가 있어도 유명무실했던 기존의 기업문화가 조금씩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여직원 육아휴직을 보장한 결과 이용률이 2006년 4.8%에서 지난해 91.7%로 급증했다.회사를 가정처럼 느끼게 하려는 노력은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든 직원에게 이어지고 있다. 근무시간과 장소를 근로자와 사업주가 합의 하에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로제의 확산은 가족친화경영이 그만큼 활성화됐다는 방증이다. 교보생명은 3세 미만 자녀를 둔 직원의 경우 하루 5~7시간만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물산, 롯데마트 등도 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상황에 따라 부분적으로 혜택을 주는 제도도 활성화되고 있다. 오전 10시 출근 제도를 고수하는 NHN은 한달에 한 번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는 오아시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LG생명과학도 매월 둘째 주 금요일 패밀리 데이에는 오후 5시 퇴근하도록 하고 있다. 구글코리아는 8월 말 태풍 ‘볼라벤’이 북상하자 직원의 80%가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가족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9월 19일 술자리 벌주, 원샷 강요, 사발주 등을 3대 악습으로 규정하고 퇴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근로자들이 가족을 챙기도록 하는 문화는 장려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매년 자녀 대상 하계캠프, 캠핑카로 떠나는 가족여행, 아빠와 떠나는 특별한 여행 등 임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홈퍼니 경영을 시행 중이다.

샘표는 부모님과 떠나는 여행,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 워크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천호식품은 우수사원 가족여행을 지원하고 가족동반 가을콘서트 등을 마련하고 있다.기업의 생산성 높이기가 화두로 떠오른 요즘 정부도 이런 움직임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친화 사회 환경의 조성촉진에 관한 법률 제 15조에 의거해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다.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는 모범적인 가족친화경영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심사에는 탄력적 근무, 자녀 출산 및 양육과 교육 지원, 부양가족 지원, 근로자 지원, 가족친화 문화, 최고 경영층의 관심과 의지 등 항목이 포함된다. 인증 유효기간은 3년이며(2년 연장 가능) 인증된 기업들은 수여 받은 공식 엠블럼을 쓰면서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가족친화 경영 기업의 생산성 높아지난해에는 공공기관과 대기업, 중소기업 총 95곳이 가족친화인증을 받았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57곳이 인증됐다. 포스코,삼성화재, LG생명과학, 유한킴벌리, 남양, 천호식품 등이 포함됐다.유한킴벌리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 회사의 산업재해율은 0.06%로 제조업계 평균치(1.07%)를 크게 밑도는 등 가족친화 경영이 실제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노동시간과 업무량으로 성과를 내려 하던 과거와는 차별화된 가족친화 경영이 기업 생산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각종 통계로도 입증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가족친화인증을 받은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다른 기업보다 0.22~1.95% 높은 것으로 집계했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육아휴직 등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가족친화경영지수가 1단위 증가하면 1인당 매출액은 0.4% 증가한 반면 이직률은 0.23% 감소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 따르면 독일은 가족친화기업의 생산성이 다른 곳보다 30% 높았다.

뉴질랜드에서는 근로자 직무만족도를 평균 11% 높인다는 통계도 있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영옥 연구위원은 “홈퍼니 경영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제고 효과가 크다”며 “최근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 근로자도 장시간 근무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만큼 남녀 모두에게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도록 지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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