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경제 출사표] 성장과 복지는 자전거의 두 바퀴
[안철수의 경제 출사표] 성장과 복지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줄곧 “고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안철수(50) 무소속 후보가 9월 19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정의를 “성장동력을 통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일어나는 선순환 구조”라고 설명했다. 회견문 서두에 서민들과 만나 고충을 들은 경험을 전한 그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그는 “경제민주화·복지와 성장동력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다”며 “한쪽에서는 성장, 일자리 창출을 하고 그 재원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가고 다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사람들의 혁신적 창의성을 자유롭게 불어넣으면서 혁신경제로 이전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정답”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안 후보의 시각은 7월에 내놓은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도 “일자리와 복지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선순환 하는 넓은 의미의 복지”라는 표현을 통해 드러났다.
안 후보는 책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 불공정거래 척결을 강조했다.재벌과 대기업을 비판하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많은 지면 할애해 피력했다. 반면 회견장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원론적인 수준의 경제관을 밝히는데 그쳤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재벌의 근본적인 지배구조를 바꿔야 그 효과가 영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다”고 지적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접근으로 는 바꿀 수 없다”며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민주통합당의 입장과 거리를 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예전 패러다임은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한계에 부딪쳤고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안 원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전 부총리 참석해 눈길출마 선언 당일 기자회견장에 안 후보가 들어서기 15분 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나타났다. 지난해 말부터 안 후보와 함께 경제정책스터디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헌재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정부 때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 때 재정경제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경제 관료 출신이다.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알려진 이 전 부총리의 등장 자체가 안 후보가 가진 급진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냈다. 이 전 부총리의 측근인 한 재계인사는 “회견 내용에서 안 후보가 이 전 총리로부터 경제 과외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경제관이 일치했다”며 “이는 중도 보수까지 끌어안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벌인 ‘청춘콘서트’를 계기로 일약 유력 정치인 반열에 오른 지 1년 만에 안 후보는 정식으로 정계 입문과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공약이나 집권 구상이 공개된 적은 없다. 대신 수 차례의 강연과 인터뷰, 책을 통해 안 후보가 가진 생각을 드러냈다. 대선 레이스에 막 뛰어든 그가 어떤 경제 청사진을 내놓을까. 그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시대적 과제로 복지·정의·평화를 꼽았을 정도로 사회복지와 안전망 구축에 대한 입장을 뚜렷하게 밝혔다. 보육·교육·주거 등 민생 핵심 영역에서 안전망이 부실함을 지적하며 “재원이 한정적이므로 가장 시급한 분야부터 사회적 합의에 따라 진일보한 복지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는 식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를 강화하고, 이를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한편 취약 계층에는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질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선별적·보편적 복지 전략적 조합또 선별적·보편적 복지를 전략적으로 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존 여야의 정책과 차별화 된다. 취약 계층부터 복지를 강화하되 민생 핵심 영역은 중산층도 혜택을 보는 시스템으로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원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북유럽 국가를 보면 복지의 안전망이 위기에서 경제를 구하더라”고 설명했다.다만 그는 “소득수준에 따라 능력대로 세금을 더 내고, 필요한 복지혜택을 받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며 증세 가능성도 열어뒀다.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것은 각종 감면제도 때문”이라며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세율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주주를 대상으로 하는 주식양도차익과세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파생상품거래세나 단기외환유출입에 대한 토빈세(국경을 넘는 자금에 대해 물리는 세금) 도입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복지와 사회안전망 구축에 무게를 두는 만큼 기업과 금융거래에 대한 세금 부과를 통해 재정 확보를 꾀하고 있다.안 후보가 대선 정국에서 일으킨 돌풍의 시발점은 청년층이었다.실업난에 허덕이는 이들 앞에 멘토로 나선 그가 현 사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었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기업의 리스크 회피, 노동절약적으로 발전한 산업, 중국을 비롯한 새로운 노동시장의 부상으로‘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대기업에 집중돼왔던 각종 세제, 인프라 제공 등의 혜택을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파격적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는 4월 4일 경북대 강연에서 “정부는 정책목표를 GDP(국내총생산)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 몇 개를 만드느냐로 세우는 게 맞다”며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에 혜택을 주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최저임금에 대해서는 근로자 평균임금의 30%인 현행 수준에서 50%로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동일가치노동은 동일임금을 주는 것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에 대한 대안으로 워크셰어링(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줄여 보다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제도),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을 제시했다.
벤처·중소기업에서 성장동력 찾아벤처기업인 출신답게 안 후보는 창업가 정신과 벤처·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다. 반대로 재벌그룹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대기업에 집중돼 있는 지금의 경제 구조를 “취약하다”고 지적하며 대기업, 중소·벤처기업이 국가 경제의 두 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전제 조건으로 안 후보는 재벌과 대기업의 개혁을 주문한다. 그의 책에는 수십 번에 걸쳐 ‘불공정경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모두 재벌그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다.그는 평소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재벌의 폐해를 신랄하게 지적해왔다. “부당거래, 편법상속 등 모든 위법행위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며 외부 규제 강화를 강조하는 한편 주주의 이익보다 소비자, 노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기업집단법 제정,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과 금융산업분리강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야권의 입장과 같다.벤처·중소·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정부, 국책연구소, 금융자본의 지원이 집중되고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 인프라 혜택도 이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 안 후보의 견해다. 벤처 육성에 대해 그는 지난해 6월 한 컨퍼런스에서 “현재 우리 사회와 대기업이 실패를 용납하지않는 문화를 고수하는 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창업가 정신이 실종된 원인을 찾겠다는 것이다.
안 후보 경제관의 특징은 모든 사안을 연결선상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안 후보를 측근에서 돕는 한 경제 전문가는 “융합적 접근”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취약한 사회안전망은 중산층의 불안감을 고조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도전을 가로막아 새로운 성장동력인 벤처 창업도 저해한다는 식이다.
열린 토론 통해 정책 수립그러나 경제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대안들이 지극히 원론적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여야의 대선후보가 내놓은 해법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안 후보가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과 달리 경제정책 노선이 전반적으로 온건한 수준에 그쳐 ‘큰 한 방’이없다는 것이다.안 후보의 경제 싱크탱크를 담당할 인물이 누구인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진 게 없다. 안 후보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저명인사들은 모두 그간 도움을 주신 분들이고 차후에 다른 분들도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견장에 참석한 이들 중 경제 분야 관계자는 이헌재 전 부총리, 정지훈 명지병원 IT 융합과학소장, 미래에셋 계열 자회사대표를 지낸 김연아씨, 이원재 전 한겨레 경제연구소장,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특히 이 전 부총리는 최근 낸 저서 『경제는 정치다』의 도입부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인물로 안 후보를 지목했고, 이 책이 안교수와 함께 한 스터디 모임 내용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안 후보의 집권 계획에 영향을 준 ‘경제 참고서’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 후보 대선캠프에서 정책 조정 역할을 맡은 이원재 전 한겨레 경제연구소장은 “경제위기 때 큰 역할을 한 그 분의 경험에 대해 들었을 뿐, 경제 정책 수립을 총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언했다. 또 이 전 소장은 “기존의 대선캠프처럼 관계자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각자 정책과 공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토론의 장을 열어놓고 어느 전문가의 의견이든 수렴하는 오픈 플랫폼의 형태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부인사도 “안 후보에게 필요한 조언을 줄 뿐 캠프에서 역할은 맡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기존 대선캠프와는 조직 측면에서도 크게 다른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쟁점별 안철수 후보의 입장
조세정책: 복지에 필요한 재정 부담 위한 증세 필요, 법인세 실효세율 단계적 인상, 주식양도차익과세 점진적 확대, 파생상품거래세, 단기외환유출입에 대한 토빈세 도입
재벌개혁: 특혜 폐지, 위법 행위 감시 위한 법 강화, 투명한 이사회 운영.기업집단법 제정,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금융·산업분리강화,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적용, 경제범죄 처벌 수준 강화
가계부채: 프리워크아웃(연체자 채무 조정)제도 시행, 서민 대출상품 확대,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조정
복지: 초·중교 의무급식, 교복·교재도 무료 지급하는 등 의무교육, 공공보육 강화. 무상급식 단계적 확대
일자리: 워크셰어링,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최저임금 점진적 인상, 정리해고 때 취업알선, 재교육 의무화
부동산: 대출 규제 푸는 등 인위적 부양책 반대.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 고정금리로 전환 등 부동산 부채 구조조정
FTA: 식량안보 개념 접근, 수정에 대한 적극적 재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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