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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경제에 봄바람 분다

미얀마경제에 봄바람 분다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이 마치 거리에 탱크가 굴러다니는 전쟁터인 양 말한다(they talk about it as a war zone).” 최근 미얀마 최대도시이자 상업 중심지 양곤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사업 컨설턴트 알레시오 폴라스트리의 말이다.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안다.”그들, 즉 외국 투자자들이 앞다퉈 미얀마로 몰려든다. 양곤의 얼마 되지 않는 비즈니스 호텔 로비. 정장 차림의 서방 투자자들이 전통 의상 사롱(허리에 두르는 옷)을 입은 현지 사업가들과 만나 합작투자, 토지임대 조건, 수익의 본국송환 규정에 관해 의논한다(to discuss joint ventures, land-lease terms, and profit repatriation rules). 미얀마는 수십 년 동안 집권 군사정부의 정적 투옥과 고문, 시위자 처형, 소수민족 무력탄압,그리고 그 나라를 유혈 독재의 대명사로 만든(made the country a byword for bloody dictatorship) 학정으로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미얀마를 가리키는 주된 수식어가 버림받은 파탄국가에서 유망한 프런티어 경제(투자성은 있지만 위험성이 큰 경제)로 바뀌었다(has changed from basket-case pariah to promising frontier economy). 민주개혁이 시작된 지 불과 1년만이다. 이 동남아 국가는 세계의 마지막 미개발 시장으로 손꼽힌다. 티크나무, 석유,황금 같은 천연자원이 다른 나라들의 구미를 당길 만큼 풍부하다(tantalizingly rich in natural resources). 거대시장인 인도와 중국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도 매력적이다.“어떤 식으로 보든 미얀마는 황금시장”이라고 아시아개발은행(ADB)의 크레이그 스티븐슨 미얀마·태국 지역 책임자가 올 초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얀마에서 관광·금융·통신·건설업에 대한 투자기회를 모색하는 사업가들로 비행편과 호텔 예약이 모두 완료됐다(There’s no flight to, or hotel in, Myanmar that isn’t booked by business people looking at opportunities there to get involved in tourism, banking, telecommunications, andconstruction).”셰브론, 코카콜라, 프록터&갬블,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미국기업 관계자들이 최근 몇 달 사이 양곤을 방문했다. 정부 당국은 다수의 심포지엄을 열고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하지만 양곤 일류 호텔의 카펫이 깔린 대회의장 건물 밖 길거리 풍경은 슬라이드쇼가 보여주는 미래상과는 딴판이다.

40대의 택시 기사 투지는 자신의 자동차가 미얀마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현주소를 알려준다고 말한다(should give people unfamiliar with Burma a good sense of where the country stands). 30년된 그의 고물 세단은 대다수 양곤 택시기사들의 전형적인 표본이다. 전기배선의 상당부분이 노출되고 금속 차체가 완전히 녹슬었다. 마치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자동차처럼 보인다. 양곤의 도로는 곳곳이 패여 운전할 때 잠시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양손으로 핸들을 꽉 움켜쥔다(When he drives, his hands remain clenched in vigilant anticipation of Rangoon’s abundant potholes). 투지의 택시 승차장 인근 건설현장에선 십대 소녀들을 포함한 인부들이 공사 중이다.

이들은 허기를 억제하는 빈랑나무 열매를 씹으며 고된 노동을 견뎌낸다(sustain themselves by incessantly chewing betel nut). 밥값을 아껴 하루 일당 2달러의 대부분을 가족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다. 행상들이 일꾼들에게 점심식사로 평범한 쌀과 수프를 판다. 그들은 버릇처럼 깨진 보도 타일을 옮겨 가판대 밑의 배수로를 가린다. 그날그날 외부로 노출된 부분 중 가장 보기 흉한 곳을 가리기 위해서다(in order to block whatever exposed section is most unsightly on that given day).

따라서 미얀마의 경제 도약에 편승하려안간힘을 쓰는 외국 투자자들은 일단 현지 실정을 파악하고 나면 크게 실망할지 모른다(may be in for a hard landing once certain realities on the ground sink in). 미얀마는 아시아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다음으로 가난한 나라다. 따라서 인프라와 물류가 형편 없다. 휴대전화와 신차 소유자가 조금씩 늘어나지만 더 근본적인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게만 전력이 공급된다. 농촌의 도로가 많이 파손돼 긴 장마철에는 통행이 불가능하다.미얀마는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경제로 손꼽혔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군정 치하에서 심각한 기능마비와 정체에 빠졌다. 1962년 일단의 강경파 장성들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미얀마식 사회주의(The Burmese Way to Socialism)”를 실시했다. 특이한 형태의 소련식 중앙계획 경제였다. 기업을 국유화하고 경제를 고립시켰다. 모든 경제정책 수립·통제권을 군부가 장악했다.

그들이 어떻게 경제정책을 결정하는지 1987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The wisdom driving their decisions was nakedly displayed in 1987). 당시 군사정권은 한 점성술사의 조언에 따라 아무예고도 없이 특정 은행권들을 폐지시켰다(demonetized certain bank notes). 미얀마인들은 대체로 집에 현금을 쌓아두는 편이다. 국민들이 그동안 저축해둔 돈 중 상당액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변했다(were wiped out). 부패, 방만한 군사비 지출, 빈약한 국내총생산(anemic GDP) 때문에 국가재정이 바닥났다. 군사정권은 수시로 국민 수백만 명을 인프라 개발사업에 강제 동원시켜 노력봉사하도록 했다(regularly press-ganged millions of people to work on infrastructure projects without pay). 1980년대 말 군사정권이 미얀마경제를 재개방했지만 인권침해 문제 때문에 곧 서방국가들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이 같은 어두운 역사의 바탕 위에서 미얀마는 과감한 개혁에 착수했다. 2011년 초 집권 군부는 반(半) 문민정부에 권력을 넘겨줬다(handed over power to a semi-civilian government). 신 정부는 수백 명의 양심수를 석방하고 노벨상을 받은 야권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국경지대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군대들과 휴전을 모색했다. 정치단체,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완화했다. 과거 기피하던 미국과 유엔에도 외교적인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has also made diplomatic overtures to the U.S. and the United Nations).올해엔 수치와 한때 활동이 금지됐던 그녀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총선 출마를 허용했다(그녀는 현재 국회의원이다). 이 같은 발전(그리고 추가적인 개혁 약속)에 고무돼 서방국가들은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대다수 제재를 중단시켰다.

미얀마가 과연 새로이 높아진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우려도 제기된다(There are concerns about Burma’s ability to live up to its new, lofty billing). “너무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모든 급속한 변화를 감당할만한 능력이 미얀마에겐 없다”고 마웅 마웅라이 미얀마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말했다.미얀마 상공회의소는 올해 미국·영국·호주·프랑스 등 기타 서방 국가 대표단을 초청했다. “미얀마가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온다(Myanmar will be overwhelmed).” 그는 미얀마 인적자원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고 걱정한다. 1980년대 이후 암울한 취업전망과 군사정권의 횡포를 피해 외국으로 떠나는 대졸자가 갈수록 늘어났다. “우리는 50년이나 뒤처졌다”고 미얀마 최대 은행 칸바우자의 탄 르윈 부행장이 말했다. “우리에겐 기술, 노하우, 인프라가 필요하다. 사실상 모든 게 부족하다.”

그는 자신의 은행이 최대한 빨리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국제 IT 기업에 의뢰해 지원 시스템을 개선하는 식이다. 하지만육중하고 비대한 정부 기관들은 다루기가 더 어렵다고 시인한다. 대표적인 예가 중앙은행이다. 주로 경제나 재무학을 거의 또는 전혀 배우지 않은 육군 장교 출신들이 주축이 돼 경영과 실무를 맡는다.50년의 경제적 무력감을 떨쳐버리는 데는 불가피하게 시간이 걸리겠지만(Though it will necessarily be slow to shake off 50years of economic inertia) 미얀마 정부는 자신들의 강경 이미지를 완화하는 데는 예상보다 빨리 성공했다. 테인 세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전임자들보다 더 겸손하고 민감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과거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미래 계획에 대한 외부 기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전술이 성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석유회사 파라미 에너지 그룹의 CEO 켄 툰은 얼마 전만 해도 국제 기업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냉대를 받았다고(his attempts to network internationally were met coldly) 말했다. “‘미얀마 기업인인데 당신들과 합작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요즘엔 미얀마의 새로운 지도부를 신뢰하게 된 유럽과 미국의 수십 개 기업이 업무제휴를 논의하자고 전화를 걸어온다고 한다.군사정권 치하에서 20여개 가문이 미얀마 경제를 독점하게 됐다. 뇌물과 충성을 바치는 대가로 수익성 높은 프로젝트(대개 자원개발)의 독점권을 얻었다(receiving exclusive rights to lucrative projects in exchange for kickbacks and loyalty).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부패인식 지수 순위가 미얀마보다 낮은 나라는 북한과 소말리아뿐이다. 군사정권과의 유착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기업인들은 요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애쓴다. 미얀마 재계 거물 마이클 모에 민트의 한 비서는 인터뷰 전 민트의 약력 소개에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서 유출된 모에 민트 관련 전문을 포함시켰다(including a leaked U.S.-government cable about Moe Myint as a part of a pre-interview briefer). 미얀마 석유업계 최대의 실력자 중 하나로 부상한 모에민트가 그 나라 실업가 중에서 “아마 가장 합법적”이라고 그 전문은 평했다. 또 모에민트가 군사정권과 부패한 거래에 참여하기를 거듭 거부했다고 밝혔다.



모에 민트에 따르면 세인 대통령은 개혁에 저항하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남겨두고 간다(If you’re not going to change, we are going to leave you behind)’는 내용이다.모에 민트는 얼마 동안 미국에서 유학하고 직장을 다녔으며 미국식의 느린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한다. 그의 사무실 한편에 세워진 평면 TV에서는 CNN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지금이 시험기간이라고 생각하지않는다. 정부 내의 상당수 인사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듯하다.

내 생각에는 이젠 되돌아가지 못한다(there’s no turning back).”은밀한 뒷거래에 의존해 사업을 했던 사람들이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그는 말한다.실제로 미국은 지난 5월 제재를 중단하면서 군부 소유 기업, 그리고 그들과 연고가 있는 다수의 거물들에 대한 제재는 해제하지 않았다. 미얀마 이코노믹 코퍼레이션과 유니온 오브 미얀마 이코노믹 홀딩스 리미티드다. 미국은 경제협력의 혜택이 “극소수계층뿐 아니라 폭넓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흘러들기(flow to a broad-based group of people and not just a very few)”를 원한다고 힐러리 클린턴이 말했다.

지난해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50여년 만에 처음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였다.클린턴이 미얀마 경제 민주화를 강조한 의도는 단순히 빈곤 해소뿐이 아니었다. 경제가 공평하게 발전하지 않는 한 정치개혁은 요원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얀마에 외국인 투자의 영향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미얀마를 연구하는 호주 경제학자 션 터널의 우려가 설득력을 얻는다. 오늘날의 “낙관론이 초반 반짝했다가(initial bout of optimism)” 시들기 쉽다는 지적이다. 군사정권이 권력을 넘겨준 주된 동기 중 하나가 거덜난 경제를 복원하고 현대화하려는 욕구였다(A desire to mend and modernize the country’s moribund economy). 그밖에 중국의 수중에서 벗어나거나 인화성 강한 혁명의 ‘봄’을 피하려는 의도가 종종 거론된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가장 수입 좋은 사업 중 상당수가 군부와 그들 패거리 몫으로 남아 있다(the Army and their cronies remain gatekeepers to many of the country’s most lucrative sectors).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인 특전이 실질적으로 약화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린다고 터널은 말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는 독재에서 벗어나도 민주주의가 아니라 과두독재로 이어진다는 걱정이다. 의회 의석 중 4분의 1이 군부에 배정돼 있다. 그리고 그 일당들이 경제적으로 계속 국가를 지배하며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영역이 침범당하지 않게 방어한다( pushing back against encroachments on their profit-making turfs).

수치는 또한 예상되는 투자물결이 엉뚱한 사람들의 손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을까 우려했다. 지난 6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경제포럼 연설에서 그녀는 현재의 개혁 초기단계에서 “무분별한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투자자들에게 환기시켰다. “미얀마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아무리 좋은 투자법이라도 그 법들을 공정하게 집행할 만큼 깨끗하고 독립적인 법원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수치는 특히 국유 에너지 대기업 미얀마 오일&가스 엔터프라이스가 확실하게 투명성을 확보할 때까지는 제휴하지 말라고 외국기업들에게 당부했다. 군부와 그 일당들에게로 자금이 빠져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이들 국유기업이 편리한 투자대상이다(is fair game for international investment despite its track record of funneling money into the hands of the Army and its cronies).

양곤에 있는 한 외국인 사업 컨설턴트에 따르면 미얀마의 인권실태에 관한 외국계 기업들의 우려가 “눈 녹듯이 사라져간다. 지금은 절차상의 문제에 불과하다(The issues now are procedural).” 그러나 무슬림로힝야족에 대한 국가의 탄압 사례는 압제적 조치가 아직도 횡행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suggest oppressive measures are still in force).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에 따르면 지난 6월 치안군이 이들 소수민족 민간인들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을 저질렀다. 세인대통령은 로힝야족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해 왔다. 그는 그 그룹이 미얀마를 떠나 다른 나라에 재정착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물론 역풍과 풍랑을 만나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겨낸다(there will be headwinds and turbulence but we will overcome them)”고 상공회의소의 마웅 마웅 라이가 말했다. 의례적인 다짐이라고? 아니, 어쩌면 재건은 이미 오래 전에 물 건너갔다고 간주됐던(was long considered beyond the brink) 미얀마의 경우는 다를지 모른다. 그랬던 나라가 군정 치하50주년을 맞기 직전에 대신 비교적 평화롭고 공정한 민주선거를 치렀다. 미얀마는 1년이란 세월 동안 얼마나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를 이미 보여줬다(has already shown the difference a year can make). 그리고 이젠 변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난장이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은 자신의 고층빌딩에서 양곤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탄 르윈이 말했다. “6개월 뒤에 돌아오면 정말 딴 세상이 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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