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의 FOOD TALK] 사람들은 음식으로 머리와 배, 마음을 채우죠
[이참의 FOOD TALK] 사람들은 음식으로 머리와 배, 마음을 채우죠
미슐랭 3스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62)는 전통을 뒤엎는 새로운 프렌치 요리로 명성을 얻었다. 2008년 소공동 롯데호텔에 문을 연 피에르 가니에르를 비롯, 전세계에 11개의 레스토랑을 두고 있다. 내년에는 베를린에 한 곳을 더 오픈할 예정이다. 일년에 두세 번 한국을 찾는 가니에르는 8월22일 롯데호텔 무궁화에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과 만나 요리 철학과 한식 세계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음양오행 담긴 한국음식오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다 온 가니에르는 셰프 복장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는 수더분하면서도 기인과 같은 카리스마를 풍겼다. 덥수룩한 흰 머리카락과 수염은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는 지난 여름, 영국 부근 섬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말했다. 프랑스어가 유창한 이참 사장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가니에르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전채들을 보고 신기해하며 감탄했다.
그는 “한국에 여러 차례 왔지만 일하는데 바빠 한식 체험을 많이 못했다”며 기억에 남는 한국음식으로 비빔밥, 한국식 바비큐, 장어, 전, 김치를 꼽았다. 그 중 비빔밥은 처음에는 어렵고 생소했지만 알아갈수록 흥미롭다고 했다.가니에르는 한국인들의 요리 열정에 찬사를 표시했다.“프랑스에 한국인 요리학도들이 늘고 있어요. 그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영리해요. 한국인들은 평상시 조용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좋은 실력을 발휘하죠. 저도 한국인을 고용했어요. 지금 프랑스에 1명, 홍콩에 1명 있습니다.”
식사로 한우구이에 김치국수가 나왔다. 가니에르는 김치국수가 너무 맛있다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후식으로 떠먹는 홍시가 나오자 그는 “떫은 맛은 아시아 음식에서 주로 맛볼 수 있다”며 “유럽의 법 때문에 아직 들여오지 못하는 아시아 식재료가 많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요리 및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이참 사장과 가니에르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가니에르 이참 사장님 같은 분들의 홍보 덕분에 한식 세계화가 잘 진행되고 있어요. 해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있는 젊은 한국인이 많은 걸 보면 앞으로 10년 안에 세계화가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해요. 지금부터가 시작이죠. 현재 프랑스에 있는 한국 레스토랑은 주로 한인 이민자 가족이 생계 수단으로 운영하는 곳이에요. 요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젊고 세련된 한국 요리사가 파리에 레스토랑을 열었으면 해요. 프랑스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겠죠.
이참 같은 생각입니다. 예컨대 베를린에는 ‘김치공주’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한식당이 있어요. 모던하고 트렌디한 컨셉트죠.
가니에르 30년 전까지만 해도 독일을 자주 방문했어요.독일은 유럽 국가 중에서도 철학이 많이 발전했고 동양사상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요.
이참 한국도 철학에 뿌리가 깊은 나라지요. 불교, 도교,유교 등은 아직도 한국문화 속에 존재하죠. 한국의 음식 속에도 철학이 강하게 베어있어요. 음양오행에 따르면 나무는 신맛, 불은 쓴맛, 땅은 단맛, 철은 매운맛, 물은짠맛에 해당해요. 모두 한국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뚜렷한 다섯 가지 맛입니다. 노랑색, 파란색, 흰색, 빨강색, 검정색으로 이뤄진 오방색도 한국음식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에너지, 즉 기(氣)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은 ‘몸과 영혼은 일체’라고 생각해요. 본능적으로 몸이 필요로 하는 기운을 음식에서 찾는 풍습이 있지요. 더운 여름에 차가운 성질의 장어를 먹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어요(웃음).
가니에르 저는 평소에 샐러드, 즉 채소류를 많이 먹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오렌지를 아주 많이 먹어요. 껍질까지 통째로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죠.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좋은 재료로 간단하게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삶에서 먹는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잘 쉬고 잘 먹어야 세상과 잘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빵 한조각을 먹어도 편안하게 먹어야죠.
이참 한국인들의 삶은 매우 바쁩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은 맛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을 갖고 즐기기 시작했어요. 옛날 선조들의 문화를 보면 한국인들은 원래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에요. 다만 현대 시대에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느라 옛 정취를 잊고 살았지요. 6.25 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음식은 그냥 음식일 뿐이었어요. ‘프랑스인은 먹으려고 일을 하지만 독일인은 일하려고 먹는다’라는 독일 속담이 떠오르네요(웃음).
요리의 위대함에 열정 불태우다가니에르는 열네살 때부터 주방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따라 하기만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그는 음식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음식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감성적인 영향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그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 무엇이라는걸 알게 됐다. 따로 전문적인 요리 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감각에 따라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니에르는 “다행히 나에게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한 숨은 재능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 프랑스 요리계는 전통만을 고집했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저는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소주만 마시는 사람에게 샴페인을 준다고 상상해보세요. 제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은 제 음식을 먹으며 서서히 제 요리의 맛을 배웠어요. 맛보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지요.”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현재 프랑스 요리계는 전통과 실험정신을 모두 가지고 있는 미식계의 선두주자다.어느 나라보다 진보적이고 항상 새로움을 창조하려 노력한다. 가니에르는 “요리는 사랑의 표현이자 균형의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각 식사는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순간이라며 비싼 요리를 먹는다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한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 하고, 식사중에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을 걸어 다니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하는 것도 저는 반대에요. 제대로 앉아서 음식이 씹히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집중해야 합니다.”맛있는 식사에는 사람과의 거리, 조명, 소리, 온도 등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음식의 힘은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는 거다. 초라한 테이블일지라도 사람과 함께 먹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자신의 요리 스타일을 물었다.“깨끗하고 순수한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음식으로 머리와 배, 마음을 채우죠. 손님이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요리사의 역할입니다.요새는 요리의 국적보다 요리사가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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