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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인내에 회사는 파격적 보상

근로자 인내에 회사는 파격적 보상



공장을 둘러보다 불량을 파악하는 직원이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않자 칼 슈이에러 생산 담당 매니저가 농담을 건넨다. 그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잘 돌아가니까 또 어디 놀러 나갔나 봐요”라며 웃는다.대충 둘러봐도 사람이 별로 없다. 9000㎡의 넓은 공장 내부에 일하는 직원은 100명이 채 안 된다. 전체 공정의 75% 이상이 자동화된 이 공장에서 사람이 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암베르크. 공장이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시골 마을이지만 이곳에는 지멘스의 대표적 생산기지인 암베르크 공장이 있다. 겉으로 보면 여느 공장과 다를 것 없지만 암베르크 공장은 수년 간 각종 매체에서 유‘ 럽 최고의 공장’, 올‘ 해의 공장’에 선정된 곳이다.


직원들 아이디어로 생산성 극대화지멘스는 암베르크 공장에서 공장 자동화 기기인 시매틱(SIMATIC)시리즈를 생산한다. 생산 단계에서 기계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제어하는 자동화 설비다. 여기서 생산한 컨트롤러인 ‘SIMATIC S7’,‘SIMATIC ET200’, 관측 장비인 ‘SIMATIC HMI’ 등은 전 세계 어느 공장에서든 만나볼 수 있는 베스트 모델이다. 한국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이 생산 공장에서 지멘스의 자동화 설비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10~20년 이상 장기적으로 SIMATIC 시리즈를 써왔기 때문에 수요도 안정적이다.가장 효율적인 자동화를 구현한다고 자랑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비효율적일 수는 없는 법. ‘시매틱으로 시매틱을 생산’하는 암베르크 공장은 세계적인 전기전자 기업으로 성장한 지멘스의 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암베르크 공장이 유럽 최고의 공장으로 꼽힌 것은 낮은 불량률과 높은 생산성 때문이다.

칼 슈이에러 매니저는 “타사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쓰일 자동화 설비의 불량률이 높아지면 당연히 고객의 생산 공정에도 문제가 생긴다”며 “이것이 불량률을 제로에 가깝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실 암베르크 공장은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공장이었다.1990년 당시 불량률은 550dpm(10만개 당 불량품이 550개)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불량률은 15dpm으로 크게 떨어졌다. 확률로 따지면 0.0015%다. R&D와 설비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공장은 디지털 공장으로 변신했지만 직원은 줄이지 않았다. 직원들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줄어든 대신 다른 방식으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바로 아이디어다. 암베르크 공장의 직원들은 매년 8000~1만2000건의 아이디어를 낸다. 자동화사업본부에서 일하는 직원이 1000여 명이니 직원 1인당 약 10건의아이디어를 내는 셈이다.

이는 제출한 아이디어의 숫자가 아니라 채택된 아이디어의 숫자다. 직원들이 내는 아이디어는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는 곧바로 현장에 적용된다. 납땜 후 반드시 거쳐야 했던 에어 클리닝 과정을 생략할 수 있도록 개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300만 유로를 들여 새 기계을 도입한다는 소식을 들은 한직원이 기존에 있던 기계을 개조하면 100만 유로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놔 200만 유로를 아낀 사례도 있다.경영진도 직원의 아이디어가 채택된 경우 개선 비용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단순히 생산직 근로자가 아닌 혁신의 주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칼-헤인즈 뷔트너 자동화 사업본부 부회장은 “직원들의 참여율이 100%에 가까워 지난해 아이디어에 따른 인센티브로만 100만 유로(약 15억원)를 지급했다”며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곧바로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한 소통 구조가 회사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베르크 공장은 직원과 회사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어떻게 협력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부분의 독일 기업이 경영진과 생산직근로자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하는 일이 다를 뿐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데 독일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는 이들 사이의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영자는 노동자에게 회사의 사정을 솔직히 알린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노동의 과실을 공정하게 나눌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일한다.

근로자 2000명 이상의 독일 기업들은 노사공동결정법의 규제를 받는다. 경영상 주요한 사항을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도 언제든지 회사 측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공장 내부의 공정 변경, 작업장의 축소나 이전등 근로자입장에서 일자리를 위협받을 수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경영자는 노조 측에 사전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분명 노조가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나서기 좋은 환경이지만 노조는 절대 이기심을 앞세우지 않는다. 유로존 통합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바로 독일이다. 미하엘 바스 코메르츠뱅크 재무 담당 매니저는 이에 대해 “동독 출신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하향 안정된 것도 한 원인이지만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한 덕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했고, 회사 측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고용 안정 카드를 꺼냈다.

실제로 2003년 지멘스 노조는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하자 임금인상 없이 근로시간을 주당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자는 회사의제안을 받아들였다. 반대로 회사 측은 2010년 임금동결을 받아들여준 노동자들에게 종신고용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폭스바겐등 다른 회사들도 대응은 같았다. 근로자들이 임금을 10~15% 적게 받는 대신 회사 측은 동유럽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려는 계획을철회했다. BMW 역시 인근 체코로 공장을 옮기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노조의 제안에 마음을 돌린 일이 있다.경제 주체 간의 협력 체계를 살펴볼 또 하나의 축은 클러스터다.이름만 번듯한 우리나라와 다르다. 독일의 모델을 수입해 여러 지역에 클러스터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사실상 공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와는 딴판이다. “해외에 투자 유치를 하러 나오면서 관내의 기업이 무슨 제품을 생산하고, 연구소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현황 파악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외교부 관계자의 지적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독일은 주 정부 산하에 구성된 클러스터 내에서 기업과 연구소, 대학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자리는 다르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다. 최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는 것. 주 정부는 클러스터에 속한 연구소가 현재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를 살펴 관련 기업을 소개한다.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있으면 별도로 묶어 연구를 지원한다. 칼-헤인즈 뷔트너부회장 역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는 항상 학교, 연구소와 함께 한다”며 클러스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클러스터 활용해 신성장산업으로 전환가장 활성화된 바이에른주에는 총 19개의 클러스터가 운영되고 있다. 바이에른주가 공업 지역에서 바이오, 헬스케어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클러스터를 통해 연구소와 대학의 연구 역량과 기업의 생산 능력을 적절히 연결했기 때문이다. 클러스터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 덕분에 후발주자로 불리던 독일은 2000년대 들어 영국을 제치고 유럽 1위의 바이오 국가로 떠올랐다.“독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은 어디입니까? 프랑크푸르트 법인에 발령받아 독일로 온 모 대기업 부장은 현지 직원을 뽑는 과정에서 담당 독일 직원에게 질문을 했다. 한국이었다면 당연한 질문이었겠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침묵이었다. 그는 “아마 첫째는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였고 이해했더라도 우리처럼‘SKY’라고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는 1등 기업도,1등 대학도 없다. 아무도 이를 묻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며 사회 전체의 힘을 키웠다. 쉽게 말해 허리가 강한 나라다. 이 사이에 싹튼 ‘신뢰’은 독일경제를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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