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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맛에 글로벌 마케팅 가미하다

한국적 맛에 글로벌 마케팅 가미하다



세계 무대에서 가수 싸이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국내에선 웃기고 춤 잘 추는 가수였지만 세계 무대에선 혜성처럼 나타난 아티스트다. 외국 사람들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전하며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싸이만 외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게 아니다.

한국의 맛도 글로벌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에선 그냥 잘 팔리는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였던 제품들이 해외에선 세상에 없던 진귀한 맛을 경험하는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놀라운 맛이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면에는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기업의 노력이 숨어있다.



초콜릿 맛 일색인 시장 바꿔대표적인 제품이 빙그레에서 만든 아이스크림 ‘메로나’다. 1998년 출시된 메로나는 우유와 과일(메론)을 혼합해 만든 아이스크림이다. 보통 우유를 베이스로 한 아이스크림의 경우엔 달콤한 맛은 있지만 입안에 텁텁한 느낌을 남겨 시원함을 반감시킨다. 반면 메로나는 우유 베이스 아이스크림임에도 메론의 상큼함이 더해져 텁텁하다는 느낌이 덜하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아이스크림계의 히트 상품으로 큰 매출을 올렸다. 특히 메론이라는 과일 자체가 귀했던 시절, 아이스크림을 통해서라도 메론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출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꾸준히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빙그레의 효자 상품이 됐다.

메로나의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은 해외 시장에서도 통하고 있다. 특히 북·남미 시장에서 인기가 좋다. 초콜릿을 주재료로 한 아이스크림을 주로 맛보던 외국인들 사이에서 메로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메로나가 지금의 인기를 얻기까지는 극복해야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항상 냉동으로 보관해야 하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점이다. 냉동 상태로 운송을 하다 보니 비용이 다른 제품의 배로 들었다. 개당 판매가격이 2500~3000원에 육박해 현지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메로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약점을 극복했다.

고급 음식점에 디저트로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소비자라면 3000원이 넘는 가격이라도 선뜻 지갑을 열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점점 많은 사람이 메로나를 찾으면서 월마트나 까르푸 같은 글로벌 식품매장에도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빙그레 조용국 홍보팀장은 “내년 초쯤에는 해외에서의 메로나 매출이 국내 매출을 뛰어넘을 것 같다”며 “남미 지역의 경우 아이스크림 매출이 저조한 겨울에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오리온의 대표 감자스낵 포카칩은 베트남에서 ‘오스타’라는 이름을 달고 국민 과자에 등극했다. 2010년 베트남 현지 최대 제과업체 낀도사의 매출을 뛰어넘었고, 올해에는 베트남에서 스낵업계 1위를 달리던 글로벌 기업 펩시마저 따돌렸다. 전세계 스낵류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하는 기업을 꺾은 것이다. 제품은 베트남 스타일로 만들고, 영업과 마케팅은 한국 스타일로 승부를 건 오리온의 독특한 전략이 성공을 거뒀다. 오리온은 현지에서 원료를 직접 재배해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베트남 현지 대학과 연대해 베트남의 입맛과 환경에 맞는 종자를 개발하는 등 제품의 현지화에 힘썼다. 포카칩이란 이름 대신 현지인들에게 쉽게 불릴 수 있도록 개명도 했다. 반면 현지에 투입된 영업사원들은 정(情)을 강조한 한국 스타일로 현지 점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90%가 동네 구멍가게 형태인 베트남의 영업장을 찾아 다녔고 심지어는 청소도 했다. 덕분에 오스타는 가게에서 가장 깨끗하고 잘 보이는 곳에 진열 돼 고객을 맞을 수 있었다. 오리온 신현미 대리는 “일단 맛에서는 자신이 있었다”며 “대중에게 제품이 최대한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덕분에 오리온은 지난해 베트남에서 29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42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과감한 변신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한 사례도 있다. 국민 라면이라 불리는 농심 신라면이 그 주인공이다.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된 이후 지난해까지 210억 봉지가 팔려나간 농심의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세계 80여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고, 해외에서 올린 매출만 2000억원이 넘는다. 주로 한국적인 맛을 그리워하는 교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지만, 이제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제품이 됐다.

그런 신라면에게도 넘기 어려운 산이 있었다. 바로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 국가에는 이슬람법이 허용하는 식재료만 취급할 수 있다. 기존 제품으로는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시장이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시장 규모가 너무 컸다. 세계 전체인구의 25%가 무슬림이라서다. 그때부터 농심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할랄 신라면’이다. 현재 할랄 신라면은 파키스탄과 카타르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할랄(Halal)이란 아랍어로 ‘허용된’이란 뜻이다.

현재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시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바나나맛 우유는 유제품인 까닭에 유통기한이 보름 정도로 짧다. 중국 내륙지역까지 운송하는 도중에 제품이 상할 우려가 있었다. 또 식품 관리가 허술한 중국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했다가 소비자가 탈이 나면 기업의 이미지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빙그레 박중원 해외사업관리팀장은 “바나나맛 우유는 중국인 여행 가이드 사이에서 수년 전부터 유명세를 탄 제품”이라며 “유통기한 때문에 중국 진출을 망설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빙그레는 2010년 일단 인천에서 출발하는 급행 패리호로 제품의 소량을 중국에 보내 시장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조금씩 물량을 수출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또 한번의 악재를 맞았다.

한국에 구제역 파동이 일면서 중국이 한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유제품의 수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사실상 중국 진출이 좌초될 위기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뜻밖에 움직임이 일었다. SNS를 통해 바나나맛 우유를 맛보고 싶어하는 네티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박 팀장은 “한 네티즌이 한국 배우가 드라마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는 장면을 캡처 해 올렸고, 그 밑에는 다른 네티즌이 수년 전 소녀시대가 모델로 등장하는 CF를 찾아 올렸다”며 “한 달 만에 100만건의 SNS메시지가 퍼져나가며 제품이 홍보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중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대신 이번에는 바나나맛 우유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단지 모양의 용기를 버렸다. 유통기한이 4개월 정도 되는 팩 형태로 중국에 진출했다. 맛으로 충분히 승부가 될 것이란 생각이 있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바나나맛 우유는 중국 시장에서 올해만 8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류 열풍 타고 제품 인기 급상승넓은 세계 시장에서 때로는 기업도 영문을 모른 채 제품이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다. 농심 홍보팀 관계자는 “미국 쪽에서 갑작스레 신라면 주문이 몰린 적이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해외 유명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신라면 블랙에 관한 글을 올린 게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이자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 꼭대기 전망대에서 농심의 컵라면이 10년 넘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도 한국 관광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빙그레 꽃게랑은 부산항에 머무른 러시아 선원들을 통해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해산물이 귀한 러시아 내륙지방 사람들이 꽃게 맛이 나는 과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했던 것이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최고의 맥주 안주로 판매되고 있다. 빙그레는 술 안주용을 강조하기 위해 조금 더 짭짤한 맛이 나는 제품을 러시아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K푸드 업계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한국의 맛이 세계의 맛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어서다. 오리온 신현미 대리는 “한국의 문화콘텐트가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며 “음식도 하나의 문화로 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과 시너지를 내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빙그레 박중원 팀장은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해외에서 수입한 과자가 대접을 받던 나라”라며 “지금은 도리어 수출을 할 정도니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 맛과 품질을 인정받은 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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