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패밀리오피스와 공동기획 /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② - 나의 경영 필살기는 ‘성실’이었다
삼성패밀리오피스와 공동기획 /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② - 나의 경영 필살기는 ‘성실’이었다
10월12일 서초구 서초동 은산그룹 본사 6층 회장실에서 정운택(61) 은산그룹 회장과 아들 정영수(36) 은산그룹 전무를 만났다. 은산그룹은 일반인들에게 낯설다. 정 회장이 1993년 창업한 은산토건이 그룹의 모태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인천북항항만공사·통영대교·인천대교·태안화력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특화된 전문건설업체다. 전문건설업체 매출 순위로는 20위권에 든다. 현재 은산그룹은 은산토건 뿐 아니라 종합건설업체 ES산업·ES개발, 지주회사 격인 ES크리에이터즈 등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272억원이다.
은산의 심볼마크는 동그란 원 안의 다이아몬드다. 정회장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이아몬드에테를 둘러 막은 모습이에요. 다이아몬드가 한번 들어오면 새나가지 말라는 의미죠. 그만큼 내실을 다져 지속가능 한 성장을 하자는 뜻입니다.” 은산이 중견 전문건설업체로 성장하기까지 정 회장의 남다른 노력이 있다. 그는 한국 건설업계의 산 증인이다.
천안농고(현 제일고)즐 졸업하자마자 1969년에 대한전척공사에 취업했다. 당시 국내에서 손꼽는 토목건축회사로 정부종합청사·섬진강댐·팔당댐·경부고속도로 등 국내 대규모 사업을 도맡은 곳이다. 8년 후 쌍용건설로 옮겼다. 그는 국내외 건설 현장을 누비며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그 실력은 87년 일광토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 빛을 발했다. 그가 대표이사를 맡은 지 8년 만에 일광토건은 전문건설업체 8위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성실함이었다.
“새벽 4시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겁니다. 바닥에 못 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줍고요. 불량품이 들어오면 즉시 납품업체에 전화를 걸었지요. 하청을 주는 원청사 소장을 일일이 만나 불만 사항이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새벽 한 두시죠. 부족한 잠은 자동차나 기차로 이동할 때 쪼개서 잤어요.”
정 회장은 93년 은산토건을 설립했다. 25년간의 토목공사 경험과 성실함이 경쟁력이었다. 결정적으로 은산토건이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계기는 97년 외환위기였다. 은산토건에겐 위기가 기회로 작용했다. 당시 여러 경쟁사들이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이자율이 20% 이상 치솟자 대출금을 갚지 못한 건설사들의 도산이 줄을 이었다. 은산토건은 달랐다. 정 회장은 경영 초기부터 ‘은행 빚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펼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빚이 없었기 때문에 재정상태가 어느 곳보다 탄탄했다. 경쟁 업체들이 줄 초상을 당하면서 은산토건을 찾는 원청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내년이면 은산그룹 창립 20주년이다. 정 회장은 요즘 전국 곳곳을 다닐 때마다 흐뭇하다.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리며 만든 건축물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공항·터널·댐·항만 등 국내 기반시설을 다지는 데 일조했지요. 특히 해외 출장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을 갈 때마다 뿌듯합니다. 진입 도로 공사를 처음으로 한 게 저희거든요. 그땐 배로 건축자재를 운반하면서 일했어요. 고생도 많았지만 끝나고 났을 때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은산은 요즘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2006년 장남 정영수 전무가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특히 하청을 받아 사업을 하기보다는 종합건설업체로 변신 중이다.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틈새 사업도 발굴했다. 바로 친환경 건설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탄소제로 업무용 건물을 세웠다. 인천시 경서동 환경과학원의 기후변화연구동이다. 정 전무는 “66가지 기술을 활용해 탄소배출 없이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하는 건물을 짓게 됐다”고 자랑했다. 온실가스 감축량은 연간 100CO2톤으로 2000CC 자동차 기준으로 서울과 부산을 500회 왕복할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고 덧붙였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있습니다. 전문건설업체들은 일감이 크게 줄면서 힘든 상황이지요. 그나마 은산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지요. 아버지와 수 차례 상의해서 3년 전부터 회사의 성격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친환경 건설 분야에 뛰어들었고요. 최근엔 탄소 제로 건축 시공 분야의 기술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아산에 20~30세대의 친환경 주택단지 시공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정 전무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언론인이나 교수를 꿈꿔온 그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기업 경영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투자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는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예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특히 M&A에 관심이 높다. 2009년 인사동 쌈지길을 인수해 지난해 2배 이상의 수익을 내고 매각했다.
정 전무는 “CEO의 결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버지께 많이 배운다”고 얘기했다. “처음 은산에 들어와 시작한게 전시회 사업이었어요. 워낙 문화 쪽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봤어요. 섣부른 판단이었지요. 그 사업으로 꽤 큰 돈을 날렸습니다. 투자 결정에 앞서 철저한 검증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배웠지요.”
아들의 얘기를 들은 정 회장은 “아주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사업에서는 실패를 해보는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정 전무는 잘하고 있어요. 건설 분야는 아직 미흡하지만 자금관리나 M&A등 금융사업은 예리하고 꼼꼼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줄 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더 보여주길 바란다. 그는 “은산은 평생이 담긴 회사”라며 “은산을 잘 키워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 인재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게 경영자의 역할입니다. 직원과 협력사의 신뢰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건설 현장에 있을 때는 항상 직원들과 어울려 생활했어요. 요즘도 지인을 만나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게 편해요. 은산은 현장에 떨어진 못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 기업 내실을 다질 CEO가 필요합니다.”
컨설팅 솔루션 - 종신보험으로 상속세 재원 마련하라정운택 은산그룹 회장 부자를 만나 한 시간 가량 가업승계 자문을 했다. 통상 창업주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는 평생 일군 회사를 자녀에게 물려주길 바란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보면 가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가업승계는 크게 경영권 승계와 소유권 승계로 구분한다. 정 회장의 신조는 ‘아들이라 해도 능력과 실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회사를 바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영권 승계는 자녀의 경영 능력을 검증해가면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정 전무가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갈 때 자연스럽게 승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유권 부분은 생전이나 사후 언젠가는 반드시 자녀 등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게 될 만큼 세부담을 최소화하는 관점에서 이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업 승계 시 가장 큰 어려움은 상속·증여세 부담이다.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신설돼 과거에 비해 가업 승계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고충이 많다. 은산그룹은 여러 개의 계열사로 구성돼 승계 측면에서 보면 다소 복잡하다. 게다가 정회장의 자산구조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이나 비상장법인 주식 등 비유동자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금융자산의 비율은 낮은 편이다. 낮은 금융자산에 비해 50%의 상속세 납부는 부담스럽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비 유동자산을 저가로 물납하거나 헐값에 처분하는 유동성 리스크를 겪을 수 있다. 정 회장의 자산구조는 가업승계 시 유동성 보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자산이 비상장주식으로 구성된 비상장기업 오너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상속세 유동성 리스크를 헷지 할 수 있도록 급여나 배당 등으로 취약한 개인 금융자산 비중을 올려야 한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서 종신보험으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 유동성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고려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가업 승계 차원에서 회사 지분을 정 전무에게 이전할 경우 추후 자녀들간의 분쟁 방지를 위해 유류분 문제를 살펴야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창업주가 사망한 후 재산을 둘러싼 자녀간 다툼을 종종 볼 수 있다. 자녀의 유류분은 민법상 법정 상속지분의 2분의 1이다. 정 회장의 총 자산 중 아들에게 이전되는 주식 가치를 산정해 유류분이 침해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회장이 보유한 개인 자산을 증여해 자녀간의 상속 재산 균형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아울러 경영자의 능력과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네트워크 관리나 경영 관련 학습이 필요하다. CEO를 상담하다 보면 경영 스타일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일일이 챙기는 꼼꼼한 스타일, 중요한 것만 체크하고 나머지 시간은 네트워크를 통해 업계 전반의 흐름을 분석하고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스타일이 있다. 후자가 본인 건강이나 회사 미래 모습을 생각할 때 장점이 많다. 정 전무에게 삼성생명에서 운영하는 주니어 CEO 아카데미를 권했다. 가업을 승계할 2세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삼성의 인사·노무관리, 조직운영 방법 등 실제적인 경영 관련 지식을 익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 사람을 만나 인맥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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