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150만원 돌려달라” 소송에 안절부절
Issue - “150만원 돌려달라” 소송에 안절부절
경기도 안양 한 수출 중소기업에 지로용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한국무역정보통신(이하 KTNET)에서 보낸 전자무역 기본서비스 요금 통지서다. 요금내역을 보면 ‘전자무역문서이용료’(이하 이용료)가 13만 4000원, ‘전자무역인프라(서비스)기본료’(이하 기본료)가 82만4600원이다. 이 회사는 아무런 의심 없이 95만8600원을 KTNET에 납부했다.
한국무역협회가 대주주인 KTNET은 지식경제부가 지정한 전자무역기반사업자다. 상법에 따라 1991년 무역업계 경쟁력강화와 국가무역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식회사다. 정부지원예산 294억원 등 올해 665억원의 예산으로 167명의 직원이 전자무역관련 기반시설을 운영한다.
지로용지를 받은 회사 대표는 “KTNET의 일이 사실상 정부가 지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수출을 하려면 응당 이렇게 요금을 내야하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체요금의 86%를 차지하는 ‘기본료’가 실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모호한 약관이 소송의 핵심민주통합당 노영민 의원은 10월 24일 지경부 국정감사에서 “KTNET은 수출입기업들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기본료라는 수수료를 부과·징수했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KTNET은 자사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은 기업들에게까지도 부당하게 수수료를 부과해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KTNET이 불법적으로 기업들에게 부과한 비용은 약 275억원, 관세청 신고기준 49만여 건이며 부당 징수한 금액은 230여억원”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지경부도 지난 7월 24일 전자민원 답변에서 수수료 부과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폐지를 검토키로 했다.
실제 이와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화학제품을 수입하는 버드켐은 최근 법원에 KTNET을 상대로 부당요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1999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152차례 납부한 143만8000원의 기본료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버드켐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민의 이용운 변호사는 “KTNET이 법적 근거도 없이 임의로 요금을 부과했고 기업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관례로 기본료를 납부해왔다”며 “우리 기업들의 무역활동에 도움은 못 줄망정 가만히 앉아서 기본료를 뜯어가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KTNET 측은 펄쩍 뛰고 있다. 반환소송을 낸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KTNET 법무담당 김종현 차장은 “지경부 승인을 받은 KTNET 전자무역인프라서비스 이용약관이 정한 기준에 따라 정당하게 요금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KTNET을 활용하지 않은 기업에도 기본료를 부과한 것에 대해 김 차장은 “법률과 약관에 근거해 전체 무역에 부과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답했다.
윤수영 KTNET 사장은 국감 증언에서 “KTNET은 통관뿐 아니라 적합목록신고, 구매확인서, 원산지증명서 등 총 585종의 전자문서 보관·증명 등의 업무를 하기 때문에 KTNET망 이용기업에 수수료를 받는 것”이라며 “전자무역촉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전자무역기반시설 이용요금을 기본료, 전송료로 구분해 징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용운 변호사는 “이용약관에 요금을 어떻게 부과한다는 내용이 없고 약관에서 정하지 않더라도 요금과 관련해 어떠한 합의도 없었기 때문에 약관의 효력이 없다”면서 “실제 기업들이 약관에 동의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답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가 지정한 사업자는 법률에 근거한 요금만 징수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하고 임의로 부과한 것은 불법”이라며 “향후 요금반환을 요구하는 다른 무역 기업들의 소송도 대리하겠다”고 말했다.
소송의 승패는 ‘기본료 부과가 법률적으로 정당한가’, ‘이용약관이 요금부과에 효력이 있나’, ‘약관 자체는 유효한가’ 등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되는 이용약관 제29조 3항은 ‘기본료는 상역/외환/통관/물류/결제 등 무역절차 전 과정에 있어서 VAN EDI방식이나 인터넷 기반의 XML 방식으로 전자무역기반시설을 직간접적으로 이용한 수출입활동에 대하여 건당 부과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약관이 너무 포괄적이고 요금에 대한 부분은 누락돼 있어 약관 해석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 ‘전자무역촉진에관한법률’과도 일부 배치되는 면이 있다. KTNET이 승소하면 기본료 부과는 계속 될 수 있고 기본료율도 KTNET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 패소한다면 소송시효 내인 2002년부터 10년까지의 기본료를 모두 반환해야 할 입장에 놓인다.
KTNET 경영상황개선 위해 기본료 받아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무역업계에서는 KTNET이 어려워진 경영상황을 손쉽게 타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무역문서이용료는 KTNET이 수출통관 전자문서교환시스템(EDI)으로 전자문서 중계업무를 해주면서 받는 수수료다. 1994년 12월 정부가 무역절차를 간소화하고 무역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해 KTNET을 정부지정사업자로 정해 서비스하고 있다. 화주의 의뢰를 받은 관세사가 전자문서를 통해 관세청에 통관신고서를 보내고 관세청 승인 여부를 확인하는 비교적 단순한 서비스다.
KTNET이 기본료를 받게 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말 KTNET의 지분 100%를 가진 한국무역협회에 정부의 무역진흥기금 지원이 중단됐다. KTNET은 원가보전과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무청인 관세청에 수수료 인상을 요청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무역업체에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며 이를 거절했다. 경영위기에 몰린 KTNET은 통관시스템이용료를 기존 킬로바이트(KB) 당 200원으로 유지하는 대신 ‘수출입자동화기본료’(현 전자무역인프라기본료)라는 명목으로 통관 건당 2400~3400원의 추가요금을 징수해왔다.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은 KTNET에게 더 불리해졌다. 주무청인 관세청이 2005년 웹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를 ‘유니패스’라는 이름으로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관세사들은 무료인 유니패스에 일제히 몰렸고 KTNET의 이용료 수입은 크게 줄었다. 현재 유니패스 이용비율은 전체의 90%에 달한다. KTNET은 이용약관을 근거로 모든 수출입업체의 수출입 건수에 따라 기본료를 청구했다. 실제 KTNET의 시스템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업체들에게까지도 요금을 청구한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무료라는 유니패스를 이용했는데도 왜 요금을 내야하느냐는 무역업체 민원을 관세청이 듣고 있다”면서 “KTNET이 기업들의 유니패스 활용 내용을 열람해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료는 KTNET의 최대 수익원이다. 통관문서 서비스 외 공인인증서비스, 전자문서보관소, 전자무역기반서비스 등도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익의 대부분은 기본료에서 나온다. KTNET은 기본료 첫 시행연도인 1997년 59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이후 매년 60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기본료 수익이 흑자액보다 많다. 기본료를 거두지 않으면 당장 적자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다. 김종현 차장은 “초기 시설투자비가 큰 사업이다 보니 이를 보전해줄 수 있는 기본료가 KTNET에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무역업체들은 이번 소송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한 무역업체 대표는 “무역협회가 운영하는 KTNET이 무역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요금을 멋대로 부과해 자사 이익으로 챙겼다는 게 밝혀지면 우리 회사도 반환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 청구액은 1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극히 소액이다. 하지만 KTNET은 11월 21일 이번 소송 대리인으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내세웠다. 패소하면 연이어 같은 소송에 휘말려 크게 난처해 질 수 있다는 걸 KTNET 역시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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