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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현대미술의 경이로움 서울에서 느끼다

Culture - 현대미술의 경이로움 서울에서 느끼다

런던 올림픽 때 조각 작품 전시…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동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
아니쉬 카푸어의 ‘나의 붉은 모국’.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초대형 개인전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다. 아니쉬 카푸어는 1954년 인도 봄베이에서 인도인 아버지와 유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영국으로 이주, 미술학교를 다닌 후 지금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인도 작가보다는 영국를 대표하는 작가로 분류되곤 한다. 지난 여름 런던 올림픽 개막 당시, 메인스타디움 옆에 보이던 거대한 빨간 구조물은 바로 카푸어의 조각 작품 ‘궤도’다. 이 밖에 카푸어는 전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공공미술작품을 발표하며, 관객에게 ‘경이로움’를 선사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특히 작년 파리의 옛 궁전이었던 그랑팔레에서 선보였던 ‘레비아단’은 아니쉬 카푸어의 생애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개인전일뿐 아니라, 현대미술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궁전 내부의 거대한 홀 공간을 붉은색 PVC 소재의 거대한 구조물로 가득 채웠다. 겉에서 보면 심장같기도 하고,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고래의 뱃속을 거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보다 앞서 2002년에는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도 나팔 형태의 붉은색 구조물 ‘마르시아스’를 홀 전체에 관통하도록 설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구겐하임미술관, 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던 수퍼스타가 서울에 온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작품만 몇 개 가져와서 전시하는 갤러리 개인전을 제외하고, 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첫 번째다. 물론 작가도 왔다. 10월 25일 개막을 앞두고, 방한한 아니쉬 카푸어는 전시 설치를 꼼꼼히 체크하고, 개막식 당일에는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지며 관객과 직접 만났다.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리움의 기획전시실은 물론 야외정원까지 전관을 이용하여 건축 공간과 어우러지는 대작들이 전시되어 카푸어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아니쉬 카푸어’전에는 작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초기 작업부터 최근의 대형 스테인리스 조각까지 대표작 18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미술관의 건축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고난도의 설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 흰 벽면 위에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자상처럼 보이는 ‘도마의 치유’, 전시장 바닥을 원형으로 깊이 구멍을 뚫은 ‘땅’이 대표적이다. 또한 6m 너비로 벽면을 노랑색으로 가득 채우고, 정 가운데에 움푹 판 ‘노랑’은 거대한 모노크롬 회화이자 조각이며, 미술품이자 건축물의 일부로 보인다.

아니쉬 카푸어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붉은색’이다. 앞서 소개한 ‘레비아단’과 ‘마르시아스’도 그랬듯이, 그에게 있어 붉은색은 영감의 원천이다. 붉은색은 육체적인 의미로서 살, 구멍, 피, 상처 등과 깊게 관련을 맺고 있다. 또한 카푸어는 붉은색을 통해 신성하고 제의적인 가치를 탐색해 나간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나의 붉은 모국’은 작품 제목에서부터 붉은색의 중요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름 12m의 붉은색 왁스가 산처럼 쌓여있고, 그 위에 커다란 해머가 시계바늘처럼 회전하면서 왁스를 긁고 지나간다. 전시 기간 내내 돌아가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치 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듯, ‘자가-생성’의 개념을 구현하고 있다. 결국 붉은 대지와 같은 이 작품은 모국 인도의 풍경 뿐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풍경이며 근본적으로는 어머니, 즉 만물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붉은색’에서 영감 받은 작품 세계한편 카푸어의 작품은 물질성 강한 재료로 물질을 뛰어넘는 역설을 표현한다. 거울처럼 윤이 나는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은 이러한 역석을 가장 극명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현기증 V&VII’은 오목거울에 비친 왜곡된 이미지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찔한 현기증을 유발시킨다.

내부로 여겨지던 오목한 면은 바깥쪽이 되고, 볼록한 면이 안쪽이 되면서 내부이자 바깥이고, 동시에 바깥이자 내부인 것이다. 반사의 반사가 무한대로 일어나면서 오목 거울의 반사 이미지를 통해 재료의 굳건한 물질성은 증발되고, 움직이는 이미지만 남아 빗물질의 상태로 전이된다.

야외에 설치된 ‘하늘거울’은 카푸어의 대표적인 애외조각으로 2001년 첫 발표 이래 다양한 크기로 제작되어 여러 장소에 설치되었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오목원반은 이번에는 관객이 아닌 하늘을 향해 있다. 하늘을 담은 그릇으로서, 시간대별로 혹은 기후와 구름에따라 계속 다른 이미지들을 반사시킨다.

야외 정원에 있는 ‘큰 나무와 눈’ 역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져 있다.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죽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땅 밑 죽의 세계로 들어갔던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소재로 한 릴케의 시에는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현실관 신화 등 대립적인 영역을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과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푸어의 세계적 명성은 단지 작품의 규모가 아닌, 이처럼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가적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1979년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카푸어는 3주 간 모국인 인도를 여행하면서 삶과 철학과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인도인들의 삶을 통해 ‘시적이고 철학적인 기원’, 근원적인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오랫동안 서양 미술교육을 받으면서 얻을 수 없었던 예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게 되었고 비로소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인도와 영국, 즉 동양과 서양의 결합을 통해 삶의 진리를 돌아보려 하는 태도야말로 아니쉬 카푸어라는 스타작가를 배출하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년 1월 27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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