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덕에 잘 나갑니다
삼성 덕에 잘 나갑니다
수년째 가파른 실적 상승세를 이어가는 삼성. 삼성의 전자제품을 구성하는 소재나 부품은 대부분 일본제다. 캐논 토키(Tokki)는 유기 EL 제조장치로 높은 세계 점유율을 자랑한다. 차세대 TV로 주목받는 SED TV의 개발을 추진했던 캐논이 진공 증착기술 활용을 위해 2007년에 인수한 회사다.
하지만 대량생산의 전망이 희미해지고 2010년 캐논이 SED TV 개발을 중단하면서 한때 토키는 그룹 내에서 존재감이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캐논을 구제한 것은 유기EL 디스플레이 제조를 늘리고 있는 삼성이었다. 삼성 TV의 성장에 토키의 실적도 좋아졌다. 앞으로도 삼성, LG의 TV 개발을 앞두고 제조장치 공급을 확대해 갈 계획이다.
그 밖에 스미토모화학, 신에츠화학공업, 닛토전공, JSR 등도 반도체, 액정 관련 소재를 삼성에 납품하고 있다. 도레이(Toray)는 전자회로를 장착하기 위해 필수적인 폴리이미드 필름이나 탄소섬유 복합재료, 광화이버, 보호막, 절연막 등 다양한 소재를 발매했다. 도레이의 간판 제품인 탄소섬유도 전기제품의 케이스 등에 사용되고 있다.
르노삼성·닛산 국경 없는 물류로 윈윈일본기업이 한국기업을 위협한다는 소리는 이제 옛날 이야기다. 이웃나라로서의 입지나 오랜 교류를 살려 한국과의 공생관계를 확대하는 일본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제 자동차 부품을 가득 실은 일본의 트레일러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페리로 바다를 건넌 뒤 그대로 일본 자동차 공장에 부품을 배달한다. 자동차 산업을 무대로 한일간의 국경 없는 부품운송(심리스 수송: seamless)이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물류 구축에 힘쓰고 있는 곳은 닛산자동차 규슈공장이다. 한국에 있는 트레일러가 한국 내에서 자동차 부품회사로부터 부품을 수집한 뒤 부산항에서 트레일러 채로 부관페리에 몸을 싣는다. 페리는 시노모세키항까지 트레일러를 운송하고 시모노세키부터는 일본 견인차가 규슈공장까지 견인한다.
원래 일본의 트레일러는 한국에서 운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항구의 물류시설에서 적재 화물을 다른 컨테이너에 옮겨 실어야 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양국 정부간의 합의로 일본의 트레일러에 양국 번호판을 붙여 한국의 공공도로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이 때문에 수화물을 옮겨 싣는 작업이 불필요해졌고 물류비용은 대폭 절감됐다. 시간도 크게 줄었다. 기존에는 매월 발주해 약 25일분의 부품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매일 발주로 시스템을 바꾸면서 재고 일수가 불과 3일로 단축됐다.
한일 간의 ‘저스트 인 타임(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 주문하고 납품하는 방식)’이 실현된 셈이다. 당초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지만 2012년 10월부터 정식 운영하게 됐다. 지금은 일본의 트레일러만 한국을 달리지만 2013년부터는 한국의 트레일러도 일본 도로를 달리게 될 전망이다.
닛산이 한일 간의 국경 없는 물류에 힘쓰고 있는 것은 엔고와 일본 국내 자동차 시장의 구조적인 축소 속에서 국내 완결형 생산 체제로는 자동차 생산의 존속 자체가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닛산의 국내 생산거점은 관동지역 3곳과 규슈공장이다. 인건비가 싼 규슈를 주력 거점으로 바꾸고 양산 차종을 중심으로 생산 시스템을 바꿔가고 있다.
규슈공장에서는 ‘규슈 빅토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가격 절감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도 총 비용을 2009년 대비 25%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인건비와 함께 가격 절감의 핵심은 조달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오오타케 타츠지 규슈 빅토리 추진실장은 “조달비용이 비싼 관동으로부터 부자재를 조달해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규슈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한국·중국 등 아시아로부터의 조달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부산에는 닛산이 제휴를 맺은 르노삼성자동차의 공장이 있고, 주변에는 자동차 부품기업도 집적해 있다. 닛산은 르노삼성의 신차 개발을 지원하고 현지의 부품 메이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오오타케 실장은 “한국의 부품 메이커는 급속히 기술력을 높이고 있어 세계 기준에서 볼 때 품질에 손색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는 품질상의 문제로 부품을 조달할 수 없지만 한국은 일본 못지 않은 품질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조달비용만 해결하면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심레스 수송 구축을 담당하는 이시카와 사토시 담당부장은 “한국기업과 거래할 때 단기간에 납품하는 것이 힘들었으나 지금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지금은 일부에서만 심레스 수송이 도입돼 있으나 앞으로는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화 하락, 값싼 전기요금, 각국과의 FTA 등 제조업에 유리한 환경 때문에 새로운 생산 거점을 한국에 두는 일본기업도 늘고 있다. 도레이의 자회사 ‘도레이첨단소재(이하 TAK)’는 경북 구미에 탄소섬유공장을 세웠다. 2013년 1월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간다. 가스탱크 등 일반산업용 탄소섬유를 생산하는데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제품들이다.
비행기 등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탄소섬유는 일본, 미국, 프랑스에서 생산하고, 전선이나 풍차 등 일반산업용은 수출 이익이 큰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도레이가 그리는 세계 전략이다. 한국 정부나 자치체가 탄소섬유 메이커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토지도 싸게 조달할 수 있었다. TAK는 지난해 927억엔의 매출과 149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20년까지 매출 2800억엔, 영업이익률 10%라는 장기적인 목표도 세워뒀다.
금융업계도 앞다퉈 한국 진출한국기업의 성장에 영합하려는 것은 제조업만이 아니다. 스미토모은행은 2011년 4월 서울 지점에 ‘글로벌 코리아 영업부’를 설치했다. 주요 고객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다. 대상 기업을 명확히 한 해외조직을 두는 것은 스미토모은행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일본이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아시아 시장을 강화하는 것은 일본 은행들의 공통 과제다.
한국이 매력적인 이유는 아시아 기업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코리아 영업부의 직원은 현재 25명이다. 서울 외에 뉴욕, 런던, 싱가포르, 그리고 도쿄에 주재원을 두고 융자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의 은행은 일본 은행에 비해 해외거점이 적고 해외사업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유럽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유럽 은행들이 해외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것도 순풍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9월 말 기준으로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융자 잔고는 2011년 상반기 대비 약 40% 증가했다. 지금까지 일본 은행의 해외사업은 일본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현지 기업의 성장에도 힘을 쏟아야 상황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융자가 일본계기업의 거래확대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한국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제조사들이 일본기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양국 기업이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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