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2013 san diego - 별 헤는 도시 샌디에이고
TRAVEL 2013 san diego - 별 헤는 도시 샌디에이고
샌디에이고의 시골 도시 줄리언의 밤을 밝히는 건 가로등이 아니라 별빛이다 |
12월인데도 춥지 않다. 바람은 시원하고 맑다.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같은 이곳 샌디에이고의 첫인상은 여유다. 느리게 움직이고 품이 넓은 이 도시를 닮아 시민 표정도 평온하고 행복하다. 미국인이 은퇴 뒤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샌디에이고를 꼽는 이유다. 베트남 수도승 틱낫한은 화를 참기 위한 최고의 수행으로 ‘무조건 천천히 걷는 작은 실천’을 주문했다. 샌디에이고에서는 이런 ‘느린 걷기’를 생활 속에서 계획하지 않고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남서부 해변에 인접한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주)는 로스엔젤레스 남쪽에 있으며 멕시코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샌디에이고 중심부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차로 20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멕시코에 거주하면서 샌디에이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센서스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샌디에이고 인구 130만여 명 중 30% 가량이 히스패닉이다. 이처럼 미국과 멕시코의 문화와 음식을 공유할 수 있는 국경도시의 매력을 품고 있다.
샌디에이고의 또 다른 특징은 1년 내내 쾌적한 날씨다. 여름에는 20~25℃, 한겨울에도 15~20℃ 정도로 계절 간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손꼽힌다. 퓨 리서치센터가 2009년 미국인 22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발보아 공원’이다. 19세기 후반 조성된 이 공원은 예술의 혼을 품은 샌디에이고의 심장이다. 조성 초창기에는 특별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나무와 풀만이 무성했다. 1915년 이곳에서 ‘파나마-캘리포니아 엑스포’가 열리면서 대대적인 개발이 이뤄지고 문화 중심지로 거듭났다. 박람회 당시 건립된 수많은 전시관은 박물관으로 개조됐다. 현재 공원 안에는 박물관이 무려 17개나 있고, 각양각색의 정원도 19개나 된다.
그중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대표적이다. 엑스포 당시 본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1926년 개관했다. 스페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건물 외관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리스 출신 화가 엘 그레코의 ‘참회하는 성 베드로’, 클로드 모네의 ‘해뜨는 샤이이의 노적가리’ 등 고전과 근대 걸작부터 현존하는 미국 화가 프랑크 스텔라의 추상미술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장한다. 루벤스, 반 다이크, 마티스, 샤갈 등 저명한 화가 작품뿐만 아니라 불상을 비롯한 각종 조각상과 도예품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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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관람객 거리가 무척 가까워 경계가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린 아이가 기린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게 아니라 직접 넣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무섭다는 사자 얼굴도 줌을 당겨 사진 찍을 필요가 없다.
샌디에이고항에서 차로 20여 분쯤 달리면 코로나도섬이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년)의 배경이 된 호텔 ‘델 코로나도’는 이제 유적에 가까운 명소다. 주인공 매릴린 먼로와 그녀의 악단이 공연을 위해 투숙한 호텔이다. 이곳에서 먼로가 맡은 여주인공 ‘슈가’는 조(토니 커티스)와 사랑에 빠진다.
호텔 곳곳에 그녀가 보여줬던 ‘불멸의 매력’이 스며 있는 듯하다. 1888년 준공된 이 호텔은 그밖에도 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토머스 에디슨이 전기 공급에 나서면서 최초로 전등을 설치한 건물이 바로 델 코로나도 호텔이다. 건물 앞에는 1904년 12월 24일 세계 최초로 전구를 설치했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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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세월을 간직한 이 호텔 앞엔 ‘코로나도 비치’가 펼쳐져 있다. 형용할 수 없이 눈부신 바닷빛, 슬리퍼를 신기 미안할 정도로 고운 모래사장이 약 2.4㎞에 걸쳐있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코로나도 비치를 2012년 미국 최고 해변으로 선정했다. 여름 바캉스 시즌처럼 해변에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태양의 여름과 호텔 뒷편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에서 겨울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일석이조 여행 코스다.
샌디에이고 시내에서 내륙을 향해 동쪽으로 1시간여 달리면 시골마을 줄리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정선 같은 곳이다. 시간이 멈춘,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고운 품성을 지닌 마을이다. 풍요로운 사과산지로 유명한 이 마을엔 애플파이 향이 가득하다. 거리 상점은 고색창연하지만 결코 칙칙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줄리언의 밤을 밝히는 건 가로등이 아니다. 별빛이다.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운 별과 밤을 지새는 건 샌디에이고만의 특혜일지 모른다.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이 황금 비율로 섞여 살아가는 아름다운 샌디에이고. 그곳에 가면 휴가의 진정한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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