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기업 중·일 충돌할까 전전긍긍
일본계 기업 중·일 충돌할까 전전긍긍
2012년 9월 일본은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이후에 분노한 중국인의 반일감정은 격렬한 시위와 함께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중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은 지난 4개월간 뼈아픈 매출 손실을 경험했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반일감정은 갈수록 거세졌고, 중국정부도 직간접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토요타·혼다 등 자동차업체들은 핵심 고객인 중산층 이상에게 외면당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은 성숙시장이 아니라 아직 초기 성장시장이다. 이 때문에 일본 자동차의 특징인 정숙성과 승차감, 뛰어난 연비 등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차세대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는 하이브리드카 역시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불매운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전자업계도 상황은 대동소이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인 소니 역시 영토 분쟁이 격화하면서 전례없는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
아예 중국을 떠나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중국을 대신해 베트남·미얀마 등이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일본 무역진흥기구(JETRO) 하노이 사무소에 따르면, 2012년 1~9월간 일본의 베트남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4개월의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기업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지난 12월 25일 소니차이나 구리타 노부키 사장은 “중국 사업이 영토 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토요타는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중국에서 6만3800대의 차를 판매했다. 전년 같은 달에 비해 22%나 줄었지만 9~10월에 비하면 감소세가 많이 둔화됐다. 10월 판매량이 44% 줄었으며,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던 9월 판매실적이 전년에 비해 49%나 떨어지며 반토막 났던 것을 감안하면 선전한 셈이다.
재난에 가까운 매출 하락10월 한 달 동안 기록적인 판매 감소를 경험했던 닛산과 혼다 역시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11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30% 줄어든 7만9500대를 기록한 닛산은 월 판매량 감소폭이 10월 -41%에서 11월 -30%, 12월 -24%로 줄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혼다는 11월 4만1205대를 판매하며 전년 동월과 비교해 29% 하락했다. 10월에 전년 동월 대비 53.5% 줄어든 2만 4115대 판매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다.
평화당(平和堂)백화점 역시 눈물겨운 노력으로 ‘재앙’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일본 슈퍼마켓 체인 헤이와도(HEIWADO)는 1994년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해 창사시 중심가에 후난평화당실업유한공사를 설립하고, 1998년 평화당백화점 1호점을 개장했다. 한국계 백화점이 미처 들어가지 못한 중부내륙 거점도시에 한 발 앞서 진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평화당백화점은 기존 중국 백화점들과 비교해 쾌적하고 깨끗한 실내 환경과 고객위주의 수준 높은 서비스를 도입해 중국인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10년 이상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2007년 창사시 동탕에 2호점, 2009년 주저우시 3호점, 그리고 2012년 4월 창사시 위에루에 4호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매장당 연매출이 4억 위안에 이를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중·일 관계 악화는 기업 존속을 염려해야할 정도로 평화당백화점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동안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정치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약간씩 타격은 있었지만 이번은 피해 정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했다. 지난해 9월 시위 때 평화당 백화점은 물리적인 건물 파손은 물론 상품 도난사고까지 당했다. 결국 두 달간 영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후 평화당은 시장 철수라는 극약 처방 대신 적극적인 중국인 끌어안기에 나섰다. “중국 철수? NO!”를 외치며 일본기업 이미지 극복을 위해 지역봉사, 각종 할인행사와 상품전을 연달아 개최했다.
훼손된 시설 복원과 입점 상인들의 복귀가 끝나고 영업 중단 두달 만인 10월 27일 매장을 재개장했다. 이후에는 사회 공익활동에 더욱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직원들 전체가 현지 청소봉사와 경로당·보육원 봉사에 적극 나섰다. 또한 다양한 상품전을 개최하고 전 매장 모든 품목을 대대적으로 할인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해 돌아선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점차 평화당을 일본기업이 아닌 후난인들의 휴식처로 보자는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가격 면에서는 토종 백화점보다 다소 비싸지만 회원 혜택이 많고 매장 내 분위기와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나다는 평을 받게 됐다. 유아 놀이방이나 층 곳곳에 마련된 쉼터, 다양하고 쾌적한 음식점과 카페 덕분에 특히 가족단위의 고객과 주부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일본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평화당이 피해를 보는 것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점점 설득력을 얻어 갔다. 오히려 중국인의 행동이 지나친 면이 있으므로 중국인 스스로 더 세계적이고 수준 높은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함께 생겨났다.
영유권 분쟁 재현 가능성 커현재 후난성에 위치한 주요 백화점 중 서비스나 상품의 질적인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이 평화당 백화점이다. 그러나 평화당은 여전히 중·일 관계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이후에도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반일시위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제 겨우 ‘산소호흡기’는 떼어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중·일 관계가 변화할지 평화당을 비롯한 모든 일본계 기업이 노심초사하며 주시하는 모습이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취임 일성 중 주목되는 것은 ‘중화민족의 부흥’이다. 이는 향후 10년간의 중국호의 향배를 가늠하는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극우파인 아베 신조 총리가 최고 지도자로 부상했다. 아베의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을 다시 찾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경제대국 일본을 다시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표적인 극우주의자인 아베 총리와 중화부흥을 기치로 내건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대립과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양쪽 모두 영토와 주권 문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 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비춰볼 때 지난해 불거진 중·일 영유권 분쟁이 올해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소니차이나 구리타 사장은 “위험이 없는 시장은 없다”며 “정치적인 분쟁도 사업의 일부분”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또 한 번 틀어지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일본기업이 다시 한번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미·일 동맹 강화를 첫 번째 외교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아베 총리이지만 중국과의 영토분쟁에서 어떻게 일본이 입는 손실을 최소화할 것인가 역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 판매량이 회복되고 있으나 독일과 한국 브랜드에 한번 뺏긴 고객을 다시 찾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가 도시유키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말은 아베 총리에게 그대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 한해 중국과 일본 양국 정상이 어떻게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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