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자리 박차고 와인향에 빠져 살아요
임원 자리 박차고 와인향에 빠져 살아요
그는 1986년 웅진에 입사했다. 당시 웅진은 웅진식품ㆍ웅진출판 두 계열사로 이뤄진 중견기업이었다. “새로운 계열사가 생길 때마다 신규회사로 발령이 났어요. 옮겨다니면서 신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내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조 대표는 38세에 임원이 된 ‘젊은 별’이었다. 바쁜 업무 때문에 창업 준비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잦은 회식으로 위궤양이 생겨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는 “그러던 중 회사가 또 신규회사를 세운다고 해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퇴직할 때 나이 42세. 재산은 아내에게 퇴직 동의를 구하기 위해 마련한 집 두 채와 스톡옵션으로 받은 3억원이 전부였다. “아직 어린 아이의 등록금, 결혼자금이 걱정되긴 했지만 더 기다리면 돈을 모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감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일단 마음을 먹자 아이템 선정이 고민이었다. 회사에 다니며 머리로만 생각해 둔 아이템이 두세 개 있었지만 울타리를 벗어나자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조 대표는 “돌이켜 생각하니 쑥스럽다”며 처음에 떠올린 아이템이 뭐였는지 끝내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완전히 출발점에 선 기분이었다고 했다.
‘와인’이라는 키워드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였다. “요즘은 흔하지만 90년대 외국에 출장을 갔을 때 커피·와인·식사를 모두 취급하는 ‘카페’를 보고 놀랐어요. 한국의 삼겹살집, 호프처럼 먹고 마시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와인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와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서나 즐겨 마시는 국제 공용 음료로 보였다. 한국에 와인 문화가 퍼진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조 대표는 경제가 발달할수록 와인시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고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레드오션인 교육사업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와인사업에 뛰어드는 게 낫다고 판단한 사업가 기질도 빛을 발했다.
3억으로 시작해 200억 매출창업을 위해 국내 와인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조금씩 와인을 배웠다. 프랑스·이탈리아에서 와인 유통과정을 익혀 사업을 시작한 것이 2005년. 하지만 첫해부터 위기를 맞았다. “재고 관리를 잘못해 8000만원어치 와인을 버려야 했어요. 그걸 팔면 2억원인데….”
전 재산을 사업에 쏟아부은 터라 좌절감은 더했다. 지인들은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힘들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40대는 지금 30대와 비슷하게 인식됩니다. 포기가 아니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나이잖아요. 총력을 기울여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재취업의 여지를 둬서는 안 됐지요.”
그는 오히려 사업을 확장했다. 아끼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한번의 큰 실패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유통사업 규모를 줄이고 외식 프랜차이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수입한 와인의 납품처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2006년 와인 레스토랑 쁘띠꼬레벵을 거쳐 2008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베띠을 론칭했다. 조 대표는 매장을 열기 전 이탈리아 요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제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현재 보나베띠의 매장 수는 35개. 이 가운데 3곳이 직영점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2009년부터 수익을 내고 있다. 2012년 예상 매출액은 200억원이다.
보나베띠는 이탈리아 요리와 400여 종류의 와인을 접목한 와인 비스트로다. 이 곳은 소믈리에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와인자동인식기가 와인 라벨을 인식해 와인에 대한 정보와 어울리는 메뉴를 알려준다. 와인자동인식기는 과거 웅진미디어가 내놓은 CD 학습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지금은 매장 직원용으로 쓰고 있지만 고객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할 계획입니다.” 6개 국어로 메뉴를 자동 번역해주는 다국어 전자 메뉴판 역시 보나베띠가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보나베띠는 각기 다른 셰프의 손맛보다 본사의 메뉴 매뉴얼을 강조한다. 맛이 정형화돼 개성이 없지 않으냐고 묻자 “에버랜드식음료 전문가들이 70여 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맛을 평가한 결과 최고 평점을 받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전문인력을 줄여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본사의 관리 아래 재료비를 다른 곳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마진율을 높이는 게 조 대표가 생각하는 보나베띠의 경쟁력이다.
그는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바탕이 되는 식문화는 매우 중요하다”며 “쿠킹 아카데미, 와인 교실을 열어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외식사업을 계획하는 은퇴 예정자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대리·과장·부장·이사같은 체계화된 조직이 아니라 사람 관리가 중요합니다. 직원들과 마음을 터놓아야 해요.” 사업 초기 5명이던 직원은 40명으로 늘었다. 조 대표는 “직원들의 주인정신이 대기업 스펙 부럽지 않다”고 자랑했다.
그는 “회사에서는 일한 만큼 성과가 나지만 사업은 ‘100’ 만큼 일해도 ‘0’이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다”며 “열심히 하는 것뿐 아니라 타이밍과 분위기를 잘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집 두 채 가운데 한 채를 팔고 한 채는 규모를 줄였다. 지금도 버는 수익은 대부분 재투자에 들어간다. 월수입은 오히려 회사에 다닐 때보다 줄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사업이 안정궤도에 들어섰다”며 “2014년 100호점 돌파가 목표”라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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