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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차세대 ‘전기 비행기(B787)’ 불시착

보잉 차세대 ‘전기 비행기(B787)’ 불시착

전기로 연비 효율 높였지만 고장 잇따라 … 부품 주산지에다 B787 많이 보유한 일본 당혹



2011년 화려하게 데뷔한 미국 보잉사의 신형여객기 ‘787’이 이례적인 전편 운항정지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항공(JAL) 소속 보잉787기는 1월 8일 미국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다 연료가 새는 사고가 발생해 운항을 중단하고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이 항공사의 다른 787기에서도 1월 13일 점검 도중 연료가 새는 결함이 발견됐다.

전일본공수(ANA)는 1월 16일 자사가 보유한 보잉 787 17대의 운항을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해 137명이 탑승한 ANA의 787기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 공항을 출발해 도쿄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던 중 기체에서 연기가 발생해 다카마쓰 공항에 긴급 착륙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다.

두 항공사는 바퀴 브레이크 고장이나 창 유리 균열 등에 이어 심각한 결함까지 발생하자 운항정지라는 카드를 꺼냈다. 여객기 추락으로 사망자를 낸 1979년 ‘DC-10’의 사고 이후 34년 만의 일이다. 불안이 가중되자 일본 국토교통성도 보잉 787기의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운항을 무기한 정지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운항 정지를 공식 발표했다.



ANA·JAL 운항전략 수정 불가피787기는 보잉이 자랑하는 최신예 중형 여객기다. 기체에 가벼운 탄소섬유를 적용해 높은 연비 성능을 실현했다. 200석 규모의 중형기지만 효율이 좋기 때문에 대형기에 맞먹을 정도로 항속 가능거리가 길다. 연료비에 골머리를 앓던 전 세계 항공사로부터 약 850기 가량의 주문이 몰렸다.

ANA는 2011년 787기의 도입을 시작해 현재 세계 최다인 17기를 보유하고 있다. JAL도 ANA의 뒤를 이어 7기를 도입했다. 보잉사가 납품을 완료한 50기 중 절반이 일본 대형 항공사 2곳에 몰려있다. 787기의 안전 문제에 일본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787기는 니켈-카드뮴 전지가 아닌 리튬이온 전지를 배터리에 장착한 최초의 여객기다. 연비 향상과 여객기의 전자화를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여객기는 냉난방 장치나 날개 방수기능을 위해 엔진 내의 터빈을 돌리는 방식을 쓴다. 하지만 787기는 전기를 이용해 엔진의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브레이크도 유압식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터식으로 바꿨다. 때문에 기내 전기사용량은 대폭 늘었다.

787기가 관계자 사이에서 ‘전기비행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니켈-카드뮴는 배터리 크기와 무게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리튬이온 전지는 소형화·경량화가 쉽다. 하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은 만큼 과열되기 쉬운 구조다. 대형화할수록 제어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787용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한 것은 일본의 GS유아사라는 회사다. 미쓰비시의 ‘i-MiEV’나 닛산자동차의 ‘LEAF’ 등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로 신뢰가 높은 회사다. 하지만 GS유아사가 자사의 배터리를 항공기에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타카마츠 공항 사고는 리튬이온 전지에서 연기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조사 당국이 GS유아사의 현장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GS유아사 측은 “정밀하게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전지만으로 이와 같은 사고가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전지는 GS유아사의 교토 공장에서 제조한 후 프랑스 탈레스사의 충전기와 조합하는 방식으로 완성돼 보잉에 납품된다. 전지 자체, 충전 과정, 전지 시스템 전체 설계나 제어 중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운송안전위원회는 1월 16일부터 다카마츠 공항 사고의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FAA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국(BEA)도 조사에 합류했다. 조사에서 원인이 밝혀지면 간단한 대응 처치로 끝날 테고 그러면 운항재개도 빨라진다. 원인 규명에 시간이 걸리거나 시스템을 재개발하는 대책이 필요하면 사태의 장기화를 피하기 어렵다. 한 항공평론가는 “설계를 변경할 경우 ‘형식증명’도 다시 취득해야 하므로 운항 재개까지 반년에서 1년 정도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787기는 개발 단계부터 잡음이 많았다. 출시 시기가 7번이나 연기 됐을 정도다. 보잉은 애초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전에 787기를 출시하려 했지만 실제 ANA에 첫 비행기를 납품한 것은 3년 후인 2011년 10월이었다. 배터리 관련 고장도 올해 발생한 2건이 처음이 아니다.

승객에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으나 정비 단계에서 발견돼 조치를 취한 사례가 ANA만 해도 약 10건이다. 다카마츠 공항에 긴급 착륙한 기체는 지난해 10월에도 배터리에서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다른 배터리로 교환한 기종이었다.

일단 제조사인 보잉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FAA의 운항 정지명령에 따라 787기 납품을 일시 정지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인도가 늦어지면 보상금과 위약금을 고객에 지불해야 한다. 850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주량이 이때는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연간 영업이익이 5000억엔을 웃돌고 순자산이 5조엔이 넘는 보잉의 재무 건전성을 생각하면 당장의 위기는 넘기겠지만 1기 당 200억엔이나 하는 787기의 수출이 끊기면 별도의 재무적 조치가 불가피하다.

가장 먼저 787기를 도입한 ANA와 JAL도 곤경에 빠졌다. 문제가 발생한 1월 16일부터 28일까지 결항 편수는 2사 합계 400편에 달한다. 승객 수로 따지면 5만명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 양사 모두 이 기종을 사용하던 각 노선에서 ‘보잉 767’ 등 다른 여객기를 투입하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1월 중순 취항을 시작한 ANA의 ‘나리타-미국 산호세 노선’은 아예 결항됐다. 대체기 운항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종사는 조작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각자 한 개 기종만 조작할 수 있도록 면허를 딴다. 새로운 기종에 대응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부품 공급한 일본 회사도 타격787기의 보유 대수가 적기 때문에 아직 영향이 크지 않지만 ANA와 JAL에게 787기는 향후 10년 전략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JAL은 전체 보유 여객기의 20%에 해당하는 45기를 787기로 채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ANA 역시 2021년까지 전체의 30%인 66기를 수령할 계획이다.

JAL은 지난해부터 미국 보스턴이나 샌디에이고 등 대형기로는 채산이 맞지 않는 해외 중소 도시에 잇따라 신노선을 열었다. 작지만 항속거리가 긴 787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업 전략이다.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 ANA는 비용 절감을 최대 중기 과제 중 하나로 내걸었다. ANA 측에 따르면 원래 사용했던 767기를 787기로 전환하면 연료비·정비비 절감 효과가 연간 약 100억엔(55기를 도입했을 경우)에 달한다.

이런 의도가 틀어지면 실적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ANA는 1월에 발표하려던 중기 경영계획 발표를 미뤘다. ANA의 이토신이치로 사장은 1월 16일 기자회견에서 787기의 계획변경 여부를 묻는 질문에 ‘변경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제조에 관여하는 일본 부품사도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보잉은 787기를 만들면서 부품사의 제조범위를 기존 기종보다도 대폭 확대했다. 특히 미쓰비시중공업이 주날개, 가와사키중공업이 동체 앞부분, 후지중공업이 중앙 날개를 생산하는 등 일본 기업의 생산 분담 비율이 35%에 이른다. 또한 탄소섬유재는 도레이, 화장실이나 조리실은 쟈무코가 담당했다. 엔진 역시 IHI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는 ‘준국산기’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만큼, 787기가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부품사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쓰비시중공업은 생산 설비에만 600억엔을 투자했다. 개발비도 상당하다. 가와사키중공업 역시 동체 앞부분을 만드는 두 개의 전용공장 건설에 400억엔을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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