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원 굴리는 동북아 기업 M&A ‘큰 손
4조원 굴리는 동북아 기업 M&A ‘큰 손
ING그룹은 2월 15일 KB금융 지분 5.02%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14년 간 이어온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가 사실상 끝났다. ING는 1999년 약 3000억원을 투자해 옛 주택은행 지분 9.99%를 인수했다. 이후 주택은행이 국민은행으로 편입되면서 KB금융 체제로 바뀌었지만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서 제휴 관계를 이어왔다.
지난해 말 KB금융의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가 불발에 그치면서 둘 사이가 나빠졌다는 분석이다. ING그룹은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공적 자금 상환 시기를 올해 말에서 2015년으로 연장 받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자금 수혈이 필요하지 않은 시점에서 지분 매각을 결정한 건 공적자금 상환보다 KB금융과의 관계를 청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ING그룹이 KB금융과의 관계를 끝내면서 ING생명 한국법인 매각을 더 서두를 전망이다. 이미 한화생명·교보생명이 ING생명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이하 MBK)도 적극 나섰다. MBK는 1월에 ING그룹의 인수·합병(M&A) 관계자를 만나 ING생명 인수 의향을 전달했다. 올 상반기 보험 시장 최대 이슈로 떠오른 ‘ING 인수 쟁탈전’에서 MBK가 승리하면 올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 거래를 성사시키게 된다.
MBK는 올 들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올 초 코웨이 지분 30.9%를 1조2000억원에 샀다. 이어 일본 3위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고메다의 지분 100%를 600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아웃도어 5위 업체인 네파의 지분 53.8%도 6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런 가운데 ING생명까지 인수할 여력이 있을까?
MBK는 지난해 말까지 15억 달러(약 1조6400억원) 규모의 새로운 펀드 조성을 마쳤다. 올 상반기 중 7억5000만 달러(8200억원)의 투자금을 더 유치할 계획이다. 돈만 따진다면 ING생명 인수에 무리가 없을 것이란 평가다. MBK가 이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하다 보니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MBK를 ‘국내 사모펀드 업계의 국민연금’이라고 부른다.
주로 업계 1,2위 안정된 회사 인수MBK는 고(故)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의 넷째 사위인 김병주 전 칼라일그룹 부회장이 2005년 세운 토종 사모펀드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출신인 김 회장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를 시작으로 씨티그룹의 투자은행 부문인 살로먼스미스바니 아시아지역 최고운영자 겸 한국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그는 2005년 칼라일그룹을 나와 MBK파트너스를 세웠다. MBK란 이름은 자신의 영문 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에서 따왔다.
MBK는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다. 운영 자금만 38억 달러(약 4조원)에 이른다. 세계 최대 PEF인 칼라일의 운영 자금 1600억 달러(약 184조원)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꾸준히 규모를 키웠다.
MBK는 2005년에 조성한 1호 펀드(1조원)와 2008년에 만든 2호 펀드(1조5000억원)로 16개의 한·중·일 기업을 고루 인수하며 동북아 최대의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MBK는 탄탄한 자금력을 앞세워 2006년 HK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2007년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 2008년 종합 유선방송 C&M, 2009년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등 국내외 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켰다.
이런 영향력 덕에 투자시장이 위축된 가운데서도 지난해 하반기에 모집한 3호 펀드는 모집 두 달 만에 12억5000만 달러(약 1조3500억원)의 돈이 몰렸다. 현재 이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의 매출은 총 202억 달러에 달한다.
MBK가 인수하는 기업은 주로 업계 1, 2위를 다투는 안정된 회사다. MBK는 이런 회사를 인수한 후 덩치를 키워 되파는 전략을 구사한다. MBK가 지난해 공개한 출범 후 투자회수 현황에 따르면 총 5개 투자회수 현황 중 한미캐피탈이 자본회수율이 453.5%로 가장 높았다. KT렌탈과 루예제약이 183%의 회수율을 기록했다.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스는 290%, 갈라TV는 310%를 기록하는 등 미디어·금융 비즈니스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한 MBK지만 지난해 위기설도 돌았다. 지난해 HK저축은행 매각을 포기한 데 이어 하이마트 인수에 실패하면서 금융시장에서 “이제 활동이 주춤해진 것 아니냐”는 평을 들었다. 이후 코웨이 인수를 확정했다가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거래 성사가 불투명해지자 3호 펀드의 자금 조달이 지체돼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케이블TV사업자 씨앤엠(C&M) 등의 기업가치 하락이 우려되면서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런 위기에도 MBK는 지난해 말 코웨이 인수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어 일본 지사를 통해 일본 업계 3위권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고메다까지 인수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가장 최근에는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를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이를 다소 뜻밖의 결정으로 받아들였다. C&M·HK저축은행·코웨이·KT렌탈을 비롯해 MBK가 그동안 투자한 국내 회사를 살펴보면 금융·미디어 분야에 집중돼 있고 대부분 업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네파는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에서 5~6위권이다. MBK의 주력 분야도 아니다.
그러나 MBK에서 3대 프로젝트 매니저로 꼽히는 김광일 부사장이 직접 나서 네파 인수를 마무리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MBK는 바이아웃(Buy-out, 부실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키운 후 재매각하는 형식) 전문 운용사이고, 펀드 규모도 커지고 있다”며 “더 이상 업계 1~2위 업체 투자만 고집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형섭 네파 대표는 MBK와 투자 계약을 한 배경에 대해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 영입 차원”이라며 “MBK가 보유한 자금력과 글로벌 네트워크 경험이 글로벌 사업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MBK가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을 비롯해 많은 해외 기업을 운영하고 있어 네파의 아시아권 진출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MBK의 달라진 모습은 펀드 모집에서도 나타났다. 김병주 MBK 파트너스 회장이 직접 나서 국내 펀드 출자자(LP)를 접촉했다고 알려졌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MBK가 기존에도 국내 연기금에서 자금을 일부 받긴 했지만 대개 해외 LP 돈으로 펀드를 꾸렸다”며 “올해는 해외에서 펀드 모집이 목표액의 절반을 밑돌아 국내 LP를 집중공략하는 게 예년과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했다. MBK는 지난해 하반기 시작한 올해 펀드 조성 목표액을 4조원 규모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MBK가 국내외 M&A 업계의 ‘큰 손’으로 떠올랐지만 투자회수 능력은 좀 더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B 업계에 따르면 MBK가 2005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인수한 기업은 총 16개다. 이 중 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기업은 우리파이낸셜(옛 한미캐피탈)·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KT렌탈·루예제약·갈라TV 등 5곳이다.
부실 기업을 사들여 가치를 끌어올린 후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바이아웃 펀드인 점을 고려하면 투자회수 실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우리파이낸셜과 KT렌탈을 매각한 것 외에는 자금 회수 성공 사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HK저축은행과 C&M은 기업 가치보다 높은 값에 사들였지만 경기 침체로 업황이 나빠져 매각이 지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회수 실적이 저조하면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인수(투자)와 매각(투자회수)이 함께 이뤄져야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데 MBK는 공격적인 인수에 비해 회수 실적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소‘ 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3호 펀드 자금 조달 중, 1호 펀드 회수가 과제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한 증권사 IB부문 관계자는 “지난해 코웨이 인수에 성공했고, 올 초부터 고메다·네파 인수에 성공하며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꾸준히 인수 실적을 쌓으면서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소 엇갈린 평가 속에 MBK는 2007년 멕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MKOF)와 함께 인수한 수도권 최대 케이블TV 사업자 C&M 매각에 최근 착수했다. 지분을 인수한 지 6년 만에 투자금 회수에 나선 것이다. 올 하반기에 거래가 시작될 전망이다. 규모가 2조~3조원 대에 달하는 대형 거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MBK와 맥쿼리는 이번 매각으로 최소 2조5000억원 이상을 회수할 계획을 세웠다.
이 관계자는 “MBK가 올해 말까지 2억5000억원 규모의 3호 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목표 금액을 맞추려면 기존 투자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1호 펀드 회수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1호 펀드의 투자 기업 중 C&M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병주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바이아웃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2년간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이슈를 만들지 못한 점도 (C&M 매각에 나선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6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7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8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9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