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대리기사·은퇴자 다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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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의 한 사무실. 필리핀어·영어·한국어가 뒤섞인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이주한 여성 12명이 모여 만든 드림인터내셔널협동조합 사무실이다. 말이 사무실이지 아이들 놀이방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협동조합 전무 김종민씨의 지인 소유 건물로 원래는 마을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엄연히 일을 하는 중이었다. 조합원들은 낮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재를 제작하거나, 게임을 통해 영어나 수학을 익힐 수 있는 교구를 개발한다. 현재는 샘플 제작 단계다. 이후 상품으로 등록·판매할 계획이다. 오후부터 밤까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한국으로 시집 온 이들은 지난해 4월 광주북구여성인력개발센터가 주최한 ‘결혼 이주 여성 영어강사 양성 사업’ 과정을 들으며 모임을 결성했다. 과정을 이수한 후 현업에 뛰어 들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강사 경력이 없다 보니 대우는 형편없었다. 4대 보험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학원 수업이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것도 걸림돌이다. 대부분 자녀를 둔 가정 주부라 아이를 맡겨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부당해고도 빈번하게 이어졌다.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김종민씨가 사정을 알고 협동조합 결성을 제안해 올 1월 설립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협동조합으로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임신 했거나 아이가 어린 경우에는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개인 사정이 있을 때는 수업을 대신 해 주거나 아이를 돌봐준다. 김 전무는 “조합원은 한 달에 30만~4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며 “개인에 따라 수익이 줄어든 경우도 있지만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드림인터내셔널 협동조합 꿈은 스스로 당당하게 자립해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게 목표다. 필리핀 여성 12명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국적·나이·성별에 상관없이 사회적 약자를 돕기로 했다. 그래서 모임 이름도 KPT(Korea Philippine Teaching club)였다가 드림인터내셔널로 바꿨다.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5인 이상 모이면 협동조합 설립이 자유로워졌다. 이에 따라 다양하고 이색적인 협동조합 설립이 줄을 이었다. 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가 모여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협동조합 설립을 컨설팅해주는 협동조합도 생겼다.
협동조합끼리 뭉치는 협동조합연합회도 등장했다. 무속인 23명이 모인 무속인협동조합도 설립 신청서를 냈다. 드림인터내셔널협동조합처럼 다문화 가정이 주축이 된 협동조합도 6곳 등장했다.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운영과 관계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보험업 빼곤 조합 설립 자유로워이색적인 협동조합 중에는 시대상이나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곳이 많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 주목한 협동조합이 눈에 띈다. 3월 20일 창립식을 가진 나우누리협동조합은 경기도 수원의 고령자와 준고령자를 대상으로 평생교육 사업을 하는 게 주목적이다. 강신효 설립추진위원장은 “지역 주민의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위해 일자리 교육은 물론 소외계층 대상의 무료 간병교육이나 건강 강좌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1명의 조합원이 모여 설립한 한국고령자근로협동조합은 노인들의 청소 용역이 주사업이다.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이 주축이 돼 만든 서울은퇴자협동조합도 3월 말 출범한다. 이 조합은 1계좌 이상, 출자금 5만원을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조합원은 생애 설계는 물론 노후 생활을 위한 전반적인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의료용품과 건강관리용품·금융상품 등을 공동 구매할 계획이다. 장례·상조 관련 협동조합도 많다. 장례 서비스나 장례용품 제조·판매, 고인유품 정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은 지금까지 10곳에 이른다.
교육 관련 협동조합도 많이 생겼다. 흙놀이협동조합(흙놀이 프로그램)·오색빛협동조합(한지공예 교육)·대한미용협동조합(미용교육 실무, 공동구매)·셀프큐어아트협동조합(치료프로그램 운영·교육)·우문현답협동조합(강소농·전자상거래 교육)·빛고울오카리나협동조합(오카리나 교육) 등이다.
웰빙 트렌드를 겨냥한 협동조합도 속속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요가 관련이다. 지난 100일간 요가 대중화와 요가 강사 육성·파견을 목적으로 생긴 협동조합은 다르마요가협동조합·핫요가아카데미협동조합·리빙요가협동조합·싯디요가협동조합 등 7곳이다.
카페를 함께 운영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도 많다. 북카페마을협동조합·협동조합 굿빌리지·레인보우협동조합·커피마을협동조합·산타하우스협동조합 등이다. 문수두루누리협동조합은 전남 여수 문수동 주공아파트에 사는 취약 계층 주민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마을카페나 빵집을 운영할 계획이다.
잘나가던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곳도 있다.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이다. 원래 이곳은 ‘국수나무’ ‘화평동 왕냉면’ 등 음식 체인점을 운영하는 주식회사였다. 지난해 매출은 약 330억원. 하지만 이 회사는 2월에 3년 이상 근속한 직원 67명을 조합원으로 하는 직원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6명의 창업멤버도 모두 평조합원이 됐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강민수 사무국장은 “유망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첫 사례”라며 “창업멤버들이 사람 중심의 기업, 직원이 주인인 기업이라는 기업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 가능했다”고 평했다. 해피브릿지조합 송인창 이사장은 “조직 형태뿐 아니라 자본보다는 사람을, 경쟁보다는 협동을, 독점보다는 상생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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