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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가는 철학자이자 맹수

Photo - 사진가는 철학자이자 맹수

피사체를 보고 교감하고 영감 받아 … 촬영 과정은 사냥하듯 공격적
야생화 사진가 아네스 조의 사진입니다. 3월 말 강원도에 서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챙기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합니다. 산을 오르고 마침내 눈 속에 핀 꽃 한송이를 발견했습니다. 너도바람꽃입니다.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빛의 방향을 살피고 시린 눈밭에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셔터를 누릅니다. 꽃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이보다 더한 쾌감이 어디 있을까요.



TV 동물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인기를 끕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본능적으로 생존법을 터득하고 살아가는 동물에게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모습은 처절하고 인상적입니다. 놀랍게도 포식자의 먹이사냥 과정이 사진가의 그것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포식자 중 사냥 성공률이 가장 높다는 치타의 사냥 장면을 한번 봅시다. 먹잇감을 찾아나선 치타가 어슬렁거리며 길을 나섭니다. 아무리 굶주려도 처음부터 뛰지 않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지형과 지세를 살핍니다. 경험으로 초식동물이 모여드는 곳을 압니다. 사방이 탁 터인 초지나 마실 물이 있는 곳입니다.

사진 역시 느리게 걷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으러 나서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훌륭한 사진가는 사색가이자 철학자입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친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교감하며 영감을 받습니다.

치타가 바람에 실려오는 먹잇감의 냄새를 맡습니다. 바람은 사냥에 매우 중요합니다. 순풍은 불리합니다. 예민한 후각을 가진 톰슨 가젤이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를 맡고 포식자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때문입니다. 역풍이 사냥에 훨씬 더 좋습니다. 맹수에게 바람이 사냥의 승패 요인이 되듯 사진가에게는 빛이 매우 중요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빛의 방향을 살핍니다.

광선의 방향에 따라 달리 보이는 피사체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빛의 종류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같은 태양광이라도 직사광이 있고 산란광이 있습니다. 유리·물처럼 반짝거리는 물체에서 나오는 반사광도 사진에 영향을 미칩니다. 야간에는 전등이나 가로등, 자동차 불빛, 달빛 같이 빛을 내는 광원의 밝기와 방향도 읽어야 합니다.

치타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톰슨 가젤 무리를 발견합니다. 몸을 낮추고 조용히 무리를 살펴봅니다. 늙고 병들거나 다친 놈은 손쉬운 먹잇감이 됩니다. 표적을 결정한 치타가 본격적인 사냥을 설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와 속도입니다. 치타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입니다. 그러나 오래 달릴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속도와 거리 계산을 끝낸 뒤 풀숲에 몸을 감추고 먹잇감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갑니다. 가까울수록 사냥의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작품의 대상을 찾은 사진가의 눈이 번쩍 뜨입니다. 시각이 ‘사각의 틀’로 고정됩니다. 틀의 크기를 조절하며 프레임을 설계합니다. 피사체와 거리를 계산하고 렌즈를 선택합니다. 또 빛의 밝기와 방향을 살피며 촬영 장소를 잡습니다. 사진 역시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극적 효과가 높아집니다. 촬영에 대한 설계는 짧을수록 좋습니다. 한번 지나간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

입니다. 경험이 많고 잘 훈련된 사진가일수록 피사체에 감응 속도가 빨라집니다.

표적을 정한 치타가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사바나에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질주가 펼쳐 집니다. 치타는 사냥 도중에 표적을 바꾸지 않습니다. 치타의 눈에는 먹잇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더 간격을 좁혀나가던 치타가 앞 발로 톰슨 가젤의 뒷다리를 후려쳐 쓰러뜨립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덜미를 물어 숨통을 끊습니다.

사진은 양면성을 가졌습니다. 피사체를 보고 교감하고 영감을 받는 것은 정적인 과정입니다. 철학자의 사색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촬영하는 과정은 매우 동적입니다. 맹수가 사냥을 하듯이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입니다. 피사체를 결정하면 무모할 정도로 거칠게 다가갑니다.

사진가는 대개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고 행동합니다. 이런 공격적인 자세가 종종 도덕성 시비를 불러일으킵니다. 나무나 전봇대에 매달리거나 차량이 오가는 위험한 도로 가운데로 뛰어듭니다. 사진가의 모든 신경은 렌즈 속 세상에만 쏠려 있습니다.

한쪽 눈을 감기 때문에 렌즈 밖의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가의 공격성은 ‘한번 지나간 장면은 되돌릴 수 없다’는 매체적 특성 때문입니다. 사진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머리로 설계하고, 발로 찍습니다.

겨울 한탄강변 풍경입니다. 한 무리의 재두루미가 먹이를 먹고 있습니다. 강 건너에서 고라리 두 마리가 냄새를 맡았습니다. 꽁꽁 언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야생 재두루미와 고라니의 조우입니다. 둘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놀란 재두루미가 날아오르겠지요. 사각의 틀 윗 부분을 비워 놓고 구도를 잡습니다. 그리고 고라니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립니다. 예상대로 화들짝 놀란 두루미가 후다닥 날아오릅니다. 재두루미의 날개짓이 마치 연속사진처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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