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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my turn - “말더듬증은 고통의 원천인 동시에 기쁨의 근원”

FEATURES my turn - “말더듬증은 고통의 원천인 동시에 기쁨의 근원”

말로 표현하는 능력의 부족에서 오는 좌절감을 글쓰기로 극복한 작가 찰스 듀보의 단상



2월 5일 첫 소설 ‘인디스크레션(Indiscretion)’을 발표했다. 그후 대다수 작가에게 친숙한 상황이 내게도 닥쳤다. 순회 홍보에 나서서 많고 적은 청중 앞에서 책을 낭독하고 질문을 받았다. 그런 자리에선 웬만큼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낯선 사람들 앞이라면 더 그렇다. 손바닥에 땀이 나고, 목이 막히고, 심장이 마구 뛴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기도 하고 술이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대개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심정이 된다. 보통 사람도 이런데 하물며 말을 더듬는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난 청중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말을 더듬는다는 사실을 ‘공표’한다. 내 말투가 이상한 건 술에 취했거나 뇌동맥류를 앓아서가 아니라 말을 더듬기 때문이라는 점을 모두에게 알린다. 그러면 대개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언젠가 이 아이디어를 한 언어치료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둘째, 내 마음이 편해진다. 셋째, 다른 모든 사람의 마음도 편해진다.

난 대여섯 살 때부터 말을 더듬었다. 우리 아버지도 말을 더듬었다. 말더듬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학적 요인이 일부 작용한다고 추정되지만 꼭 유전되는 건 아니다.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다행히 내 아이들 역시 말을 더듬지 않는다.

말더듬증은 일부 희귀한 경우를 제외하곤 정신적 외상으로 초래되지 않는다. 또 어떤 종류의 정신적 결함과도 연관이 없다. 그리고 내가 말더듬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말더듬이 중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이작 뉴턴, 윈스턴 처칠이 모두 말더듬이였다.

우리가 아는 건 ‘뇌에서 음성명령을 입으로 전달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제동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입과 주변 근육이 뇌에서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내가 딸에게 무슨 일을 시켰을 때 샐쭉하게 토라져서 “싫어요” “암만 그래도 소용 없어요”라며 말을 안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일부 환자의 경우 말더듬증은 ‘상황에 좌우된다(situational)’. 어떤 일을 하느냐,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증상이 호전되기도하고 나빠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난 아내와 이야기할 때는 말을 거의 더듬지 않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때는 말을 더 더듬게 된다.

말더듬증은 ‘치료’가 불가능하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호흡조절이 그 중 하나다. 말더듬증 환자 대다수는 특정 단어에서 말문이 막힐 뿐 아니라 말을 할 때 호흡과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노래할 때 음표 하나를 다 끝낼 때까지 호흡이 남아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어떤 단어에서 문제를 일으킬 만한 부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고 흉내만 내는 방법도 있다. 말더듬증 환자들에겐 발음에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 음절이나 모음이 있다.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고 살짝 바꿔서 발음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트리(tree)’ 대신 ‘쓰리(three)’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은 단어 대체다. 어떤 단어에서 말을 더듬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재빨리 다른 단어로 바꾸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난 ‘아파트먼트(apartment)’ 대신 ‘플랫(flat)’이라는 영국식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또 ‘엘리베이터(elevator)’대신 ‘리프트(lift)’라는 단어를 쓴다. 영국식 표현을 자주 쓰다 보니 영국 예찬론자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은 짧은 단어가 발음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어휘를 늘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이 모든 환자에게 통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미국 말더듬이협회(말더듬증 환자들이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는 기관이다)의 이사로 활동할 때 증상이 심한 환자들을 보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이전에 난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좌절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물론 특정 단어에서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괜찮다가 어떤 날은 더 심하게 말을 더듬기도 했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환자들은 단어 하나를 입밖에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협회의 한 회의에 참석했을 때 좌중에 근사한 옷차림의 신사 한 명이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지만 그가 말을 시작하고 난 후의 상황은 그 자신과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고문이었다.

‘고문’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말더듬증 환자 대다수가 말을 할 때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를 입밖에 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 신체적 불편함(목 근육이 조이거나 이를 갈게 되는 경우도 있다)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따른다.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이 분명히 있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오는 답답함에 더해 듣는 사람 역시 그 상황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까지 신경을 쓰다 보면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어린이 말더듬증 환자들의 경우엔 더욱 견디기 힘들다. 또래 아이들이 놀리고 흉내내기 일쑤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남자 아이들이 “아-아-아 안녕, 차-차-차 찰스” 하면서 놀리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난 덩치가 큰 편이어서 아이들이 놀리면 때려줬다. 하지만 그 때 느낀 수치심과 분노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대놓고 놀리거나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는 않을 만큼 성숙한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는 특히 힘들다. 사람들은 대개 처음엔 재미있어 하다가 차츰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처음엔 ‘이 사람이 장난을 하나?’ 혹은 ‘술에 취했나?’ 생각하다가 사실을 알고 나선 불편한 마음을 감추려고 웃는다. 어떨 때는 내가 시작한 문장을 대신 끝내주기도 한다(참고로 말해두지만 말더듬증 환자들은 상대의 이런 행동을 매우 싫어한다).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등 다른 대다수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달리 말더듬증 환자들은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말을 더듬는 이유는 단순히 집중력이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다수 사람이 ‘그냥 시원하게 말해 버리면 될 걸’ 하는 식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그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대다수 말더듬증 환자는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이런 불안감은 사회적·문화적 선입견 때문에 한층 더 심해진다. 난 오랫동안 Forbes.com, Businessweek.com 등 대표적인 비즈니스 웹사이트의 편집자로 일했다. 외모도 괜찮은 편이고 내 분야에서 전문지식도 꽤 쌓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말을 더듬기 때문에 TV나 라디오에 출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점이 내 진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안다.

현재 진행중인 책 순회 홍보도 마찬가지다. 비록 내가 말을 더듬긴 해도 지금까지는 내 책 낭독이나 토론에 대한 반응이 꽤 좋다. 하지만 TV나 라디오에 출연해 책을 홍보할 수는 없다. 작가들이 책을 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난 두 가지 강력한 마케팅 수단을 놓치는 셈이다.

하지만 말더듬증은 내가 작가가 된 직접적인 동기이기도 하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좌절감을 글로보상했다. 글을 쓸 때는 제약이 전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문제 없이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말더듬증은 내 인생에서 끊임없는 고통의 원천인 동시에 커다란 기쁨의 근원이다.

내가 말더듬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고? 한때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내 책이 출판된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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