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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에세이 - 꽃과 더불어 사는 독일인

CEO 에세이 - 꽃과 더불어 사는 독일인



봄이면 꽃 구경만큼 눈을 즐겁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3~4월에는 지방에서 열리는 꽃 축제를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꽃 축제가 바로 화개장터 벚꽃 축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는 3월 말이면 ‘십리벚꽃길’이 장관을 이룬다. 야생 녹차밭과 어우러진 이곳을 가족과 함께 찾았다.

꽃샘 추위와 잦은 비로 개화가 늦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쌍계사 벚꽃은 1주일 가량 빨리 폈다. 특히 벚꽃보다 먼저 찾아온 매화·동백·개나리도 고운 자태를 뽐냈다. 남녘은 그야말로 봄꽃 천지였다. 눈을 즐겁게 만든 건 벚꽃뿐만 아니었다. 3월이 오면 잎이 나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트린다는 매화는 온통 눈을 뿌려 놓은 듯 섬진강변을 뒤덮었다.

매화는 사군자 중에서도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꽃이다. 특히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만난 홍매화는 우리나라 고매 중 가장 색이 붉다. 붉다 못해 검붉어서 흑매(黑梅)라고도 불린다. 수령이 300~400년으로 추정된다. 화개장터에서 남도대교를 건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팝콘처럼 피어난 매화꽃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지난해 길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아 힘겹게 핀꽃이어서 그런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녘을 찾은 상춘객 모두 봄꽃 속에서 행복한 모습이었다. 짧은 꽃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맞은 한강 바람은 아직 꽃샘추위로 쌀쌀했다.

봄에는 꽃피는 순서가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뛰놀던 때를 회상해 보면, 지금의 서울 하고는 많이 다르다. 집 앞 언덕에 산수유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는가 싶으면 매화가 핀다. 매화가 지는가 싶으면 살구꽃이 피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개나리가 피어난다. 그러다 보면 산 아래 언덕에는 자두꽃과 복숭아꽃이 피고, 배꽃·사과꽃이 피어난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 현상 탓인지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됐다.

이런 변화 탓에 나무를 심는 시기도 4월 5일 식목일보다 2주일 가량 이른 3월 중순이 적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불안정한 생태계를 바로 잡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봄꽃이 한꺼번에 피는 때아닌 진풍경을 그저 즐겼지만, 이른 개화 시기나 생태계의 변화를 잊고 산다. 물론 우리나라도 산림 육성에 많은 예산을 투자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산림 부국인 미국·영국·독일에선 산림 구축을 돕는 임도(林道)가 우리나라보다 최대 20배 많다.

꽃을 대하는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몇 년 전 독일 출장때 물 한 병 사려고 한 수퍼마켓에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여러 종류의 꽃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진열해 놨다. 동네 수퍼에서도 꽃을 파는 걸 보고 독일인의 풍성한 꽃소비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가드닝(gardening)이 발달한 독일은 테라스 주변을 비워두기보다는 꽃화분으로 장식한다. 실내보다는 실외에 가드닝을 하기 때문에 집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이 쉽게 꽃을 접할 수 있다. 꽃 구경은 좋지만 꽃 구입과 관리는 사치라고 여기곤 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인식과 대조적이다.

꽃을 아끼고 기꺼이 사는 독일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특히 플로리스트도 마이스터가 많은 나라, 꽃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관리 시스템에도 꾸준히 투자하는 이들의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다시 생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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