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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EPORT - 숭례문은 ‘한국의 보물’?

SEOUL REPORT - 숭례문은 ‘한국의 보물’?

유적지는 국가나 국민의 소유가 아니라 책임지고 관리하라고 맡겨진 인류의 유산
숭례문은 5년 여에 걸친 복원작업을 마치고 시민에게 공개됐다.



5년 전 한 친구와 함께 서울에 놀러 왔던 적이 있다. 숭례문을 답사하고 남대문 시장에서 이런저런 기념품도 샀다. 종로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다시 숭례문쪽으로 향했다. 저녁 9시쯤이었을까? 여러대의 소방차들이 급히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 취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날 있었던 소란이 숭례문 화재 탓이었다는 사실은 다음날 TV를 통해서 알게 됐다. 전날 그 근처에서 밥도 먹고 구경도 하던 그 장소가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숭례문 화재 원인에 대해 나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정부 정책에 분노를 가진 일개 시민이 자국의 유적지를 불태우다니 말이다. 마치 아버지가 싫다고 어머니를 때리는 격 아닌가. 터키에는 이슬람 문명과 아무 관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슬람교 교리에 반하는 유적지가 수없이 많지만, 터키인은 아무 구분 없이 모든 유적지를 보호한다. 한국인도 마땅히 자국의 유적지라면 우선 지켜야 마땅하다. 숭례문은 한국인만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프 궁전이 터키인만의 유적지가 아니고, 경복궁이나 숭례문도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 찬란한 유산은 전 세계인의 보물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 유적지는 한국인에게 맡겨진 인류의 유산이다. 한국인이 그 보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브라질 사람이나 심지어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조차 화를 낼 수 있다.

숭례문이 5년 3개월에 걸친 복원작업을 뒤로 하고 마침내 5월 4일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숭례문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동안 외국인 친구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줄 때마다 서울 중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가 공사중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많은 친구들이 그 공사를 보고 “이렇게 높은 건물이 많은데 또 무슨 건물을 짓는 거냐”고 묻곤 했다.

최근에는 한류로 인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그런 한류팬이 서울에서 보고싶어하는 것은 높은 건물이 아니라 한국 문화가 담긴 유적지다. 높은 건물은 쿠알라룸푸르에도 있고, 북경에도, 도쿄에도 있지만 한옥집이나 창덕궁은 어디에도 없다. 오랜 기간 한국의 수도였던 서울이라면 한국의 특색을 보여주는 공간을 더 늘려야 한다.

나는 베이징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 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톈안먼(天安門) 동남쪽에 있는 ‘후통’이라는 옛 골목길이다. 그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면 도시 중심부의 높은 건물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진시황이 나타날 것만 같은 옛스러운 길이 몇 시간을 걸어도 계속해서 펼쳐진다. 중국 역사의 향취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은 어떤가? 그런 지역이 드물 뿐 아니라, 들어가더라도 10분이면 관광이 끝난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출발해 캐나다 대사관을 거쳐 서대문으로 나와도 고작 15분 안팎이다. 게다가 이 길에도 현대식 건물들이 가득해 몰입을 방해한다.

숭례문 화재에서 시작해 베이징 관광산업까지 글을 이어왔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마디로 이렇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 세계에 높은 입지를 쌓은 한국은 이제 서울의 역사적 유산들을 지키고 복원할 책임이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서울에 역사적인 색채를 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숭례문 화재 같은 사건이 재발한다면, 이누이트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라비아 사막에서 대장금을 보며 ‘오나라’를 부르던 소녀들은 분명 많이 슬퍼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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