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챔피언(강소기업) 키워 경제민주화 이루자
히든 챔피언(강소기업) 키워 경제민주화 이루자
“중소기업은 지원의 대상, 대기업은 규제의 대상이자 경제민주화의 대상이란 이분법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 드는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적인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돼요. 이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차선 안 됩니다.”
강호갑(59) 신임 중견기업연합회장(신영그룹 회장)은 “우리 사회의 화두인 경제민주화도 중견기업의 비중이 커지면 앞당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4월23일 강 회장 취임 후 서울 도화동 도원빌딩 10층으로 이전한 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회장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중견기업의 수적 증가가 경제민주화의 해법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뭔가요?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전신) 통계에 따르면 2011년 말 우리나라 중견기업수는 1422개로 전체의 0.04%입니다. 대만은 3%, 중국도 4%, 독일 경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미텔쉬탄트(Mittelstand-중소·중견기업)는 12%에 이릅니다. 독일 미텔쉬탄트 가운데 세계적인 기술력을 지닌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 1500 개나 됩니다.
우리나라 중견기업 숫자만큼의 강소기업을 보유한 셈이죠. 우리나라 기업 수를 330만 개로 잡을 때 중견기업이 1%만 돼도 3만3000개예요. 이만큼만 늘어나면 청년실업 해소,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중산층 확충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두터워져야 하듯이 기업 생태계에서 중견기업의 비중이 커져야 하는 까닭이죠.”
0.04%에 불과한 중견기업의 고용 인구(약 82만4000명)는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수출액(약 603억3000만 달러)의 비중은 10.9%에 이른다.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이 취약한 첨탑형의 업계 구조를, 가운데가 불룩한 ‘항아리형’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중견련 관계자는 설명했다.
중견기업의 고유한 가치가 뭡니까? 중견기업이 한국 경제에 어떤 차별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나요?
“대기업은 고용을 늘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안타깝지만 중소기업은 젊은이들에게 기피 대상이죠.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줄 데는 중견기업밖에 없습니다. 또 전 생애 동안 받는 ‘생애임금(生涯賃金)’을 기준으로 하면 대부분 단명하는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견기업 직원이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보다 수명이 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중견기업이 어떤 비전을 품어야 하나요?
“중소기업 시절에야 좌고우면할 겨를 없이 내수시장에 치중할 수밖에 없죠. 그러나 중견기업이 되면 히든 챔피언 같은 글로벌 전문기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기업의 요체는 기업가 정신과 지속성장 가능성입니다. 중견기업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강 회장이 경영하는 신영그룹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현대·기아자동차에 펜더·후드 등 차체 부품을 공급하는 신영은 내수 비중이 89%다. 하지만 차체를 찍어내는 금형은 BMW·폴크스바겐·포드·GM 같은 글로벌 완성차 회사에 수출한다. 글로벌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연간 수출액은 1000억원가량이다.
1999년 부도난 이 회사를 경락 받은 그는 천신만고 끝에 회생시켰다. 그 후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법률상 대기업으로 분류된 신영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핫프레스포밍(철을 뜨겁게 달군 후 급냉시켜 부품을 단단하게 만드는 공법)’ 장비를 들여오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을 때였다. 담보능력이 충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후 정부 지침으로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이 80%로 정해진 겁니다. 대기업으로 규정된 우리 회사가 200억원을 빌리려면 해당 은행은 900억원 돈을 중소기업에 빌려줘야 했습니다. 1억원씩만 잡아도 돈 빌려줄 중소기업 900개를 은행 측이 발굴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몇 배를 찾아야 했을 겁니다. 그러니 사실 은행으로서는 우리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편이 나았어요. 이런 탁상행정이 없죠.”
지난해 중견련은 회원사 CEO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38%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걸 후회한 적 있다’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160여 개에 이르는 지원이 일거에 끊긴다.
중견기업 규제 중 개혁할 것은?
“일감 몰아주기를 하지 말라는 건 재벌 기업에 해당하는 겁니다. 중견기업이 부품을 만드는 관계사로부터 납품 받는 건 일감 몰아주기와는 차원이 달라요. 신영그룹을 예로 들면 신원·신호·신정 등 작은 부품을 만드는 2, 3차 협력사가 있습니다. 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납품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가 인수했죠.
신호와 신정은 연간 10억~25억원의 적자를 내지만 우리로서는 안고 갈 수밖에 없어요. 손을 떼면 다른 데서 더 많은 돈을 주고 해당 부품을 사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 기업의 규모에 대한 규정이 없다 보니 중견기업의 이런 적자계열사도 올해부터 증여세를 물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부적합 업종으로 규정하는 게 제도의 취지에 맞습니다. 이들 기업의 시장 진입만 막는 거죠. 특정 중견기업, 예를 들어 어떤 프랜차이즈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너무 강하다면 그런 회사만 조사해서 따로 규제하면 되고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나요?
“2011년 7월 산업발전법에 중견기업이 명시됐고 대통령령으로 중견기업을 지원할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10여개 관련 법령엔 중소기업과 대기업만 규정돼 있어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독일이 2003년 사민당 정부 시절 좌파인 슈뢰더 총리 주도로 독일 재건운동을 벌여 경제를 회생시켰습니다.
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했죠. 우리도 시급히 국가 경제 재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국회가 입법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국회는 물론 노조·정부·언론도 독일에서 배워야 합니다. 성장동력을 잃어가는 마당에 일부 거대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적 행태로 국가 경제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까?”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이 뤄져야 한다고 봅니까? 중견기업 전용펀드가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운용해야 하나요?
“이스라엘의 벤처캐피털 ‘요즈마 펀드(Yozma Fund)’는 세계 3대 펀드입니다. 자본이나 담보 능력은 없지만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유한 벤처의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 주도로 설립됐습니다. 이 펀드의 이갈 에를리히 회장에 따르면 요즈마 펀드의 성공 요인은 해당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하는 겁니다. 투자 심사위원회를 구성할 땐 정치권과 정부 쪽 인사를 배제하죠.
다음으로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유태인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와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식이죠. 결국 핵심은 전문적인 투자 심사와 철저한 사후관리에요. 이에 비해 우리는 정부나 정부가 관여하는 정책기금 쪽 사람이 심사에 참여해 대개 안전한 기업, 지원을 해도 안 다칠 회사만 도와줍니다. 또 만일 5억원의 정책자금이 있다면 엄격히 심사해 한 회사에 투입해야 하는데 이 돈을 쪼개서 100개 기업을 지원해요.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을 졸업하지 않으려 기업 쪼개기를 하고 정부 사이드에서는 정책자금을 쪼개고 있는 거죠. 책임 문제 때문에 리스크를 떠 안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런데 기업이란 리스크를 감수한 대가로 성장합니다. 어쨌거나 중견련이 요즈마 펀드를 벤치마킹해서 이런 기능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요즈마 펀드처럼 정부가 중견기업 전용펀드운용을 민간에 맡긴다면 네트워크를 활용해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중견련 가입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강 회장은 도미해 1988년 공인회계사가 됐다. 조선 부품을 제조하던 큰형이 일본 기업과 기술제휴를 앞두고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부인에게 2년만 형을 돕겠다고 약속하고 귀국했다. 2년은 어언 25년이 됐고, 인수한 기업은 14년 만에 연 매출 89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인수했나요? 부도난 회사를 회생시킨 비결이 뭐죠?
“1997년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걸 보고 자동차 부품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수 직후 금속노조 소속인 우리 회사 노조위원장이 삭발한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찾아왔습니다. 자기는 회사를 떠나도 좋으니 한 명도 정리해고를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배당을 받아갈 때까지는 절대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했죠. 그 위원장은 떠났지만 약속은 지켜졌고, 노사 간에 신뢰가 구축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도 저는 배당을 받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밤이면 직원들과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줏잔을 기울였다. 미국 앨라배마엔 신영의 현지법인 SMART가 있다. 2004년 현대자동차와 동반진출 했다. 강 회장은 “따라 나설‘군번’이 아니었지만 무조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에 유학한 1980년대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세탁소나 식료품점을 해 돈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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