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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너훈아’는 ‘나훈아’가 될 수 없다

Photo - ‘너훈아’는 ‘나훈아’가 될 수 없다

독창성 없는 모방 사진은 생명 없는 껍데기 … 서툴러도 나 만의 개성을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룹니다. 방송사마다 수 억원의 상금과 상품을 내걸고 가수 지망생을 유혹합니다. 오디션은 차별화된 심사방식과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해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기는 민족이라 그럴까요? 기성 가수를 뺨치는 노래 실력에다 넘치는 끼로 시청자를 사로잡습니다. 신인다운 풋풋함과 신선함을 보는 것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력입니다.

오디션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사람은 기성가수와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이제 노래에 관한 한 프로가수와 아마추어 가수의 차이가 거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디션에서 우승한 사람은 정식 가수로 데뷔합니다. 한때 소수의 전유물이던 대중음악의 ‘민주화’가 이뤄진 겁니다. 교육의 힘도 있지만 그 저변에는 노래방이 톡톡히 한 몫 했습니다.



1인 2카메라 시대 열려신세대들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들어선 노래방에서 제대로 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지간한 놀이모임에도 노래방 기계가 등장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니 ‘무대 울렁증’도 없어졌습니다. 사진도 그렇습니다. 사진은 한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카메라의 가격도 비싼데다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 맘 먹고 카메라를 장만해도 비용을 감당 못해 ‘장롱카메라’로 전락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디지털 카메라의 가구당 보급률이 80%에 이릅니다. 또 3000만대를 넘어선 스마트폰까지 합치면 ‘1인 1 카메라’를 넘어 ‘1인 2 카메라’ 시대가 됐습니다.

영상시대를 살아온 신세대들은 사진으로 일기를 쓰고, 편지를 보내고, 대화를 나눕니다. 서류 복사나 메모는 카메라로 합니다. 컴퓨터에 익숙하니 사진의 편집과 조작도 능수능란합니다. 블로그나 SNS를 통해 하루 수천, 수억 장의 사진이 봇물처럼 쏟아집니다. 사진의 수준도 높습니다. 감성이나 테크닉 모두 프로 수준입니다. 필자는 몇 해 전 한 SNS에서 사진 그룹을 개설했습니다. 이곳은 사진으로 소통하는 곳입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심지어 초보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이 모여 매일 사진에 관한 얘기를 나눕니다. 2년이 지나자 사진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습니다. 4월에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전시회를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누가 프로고, 아마추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다시 오디션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또 다른 맛은 톡톡 쏘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입니다. 가수와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의 평가 기준은 노래의 완성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느냐보다 얼마나 발전 가능성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춥니다. 독특한 음색과 창법, 감정이입이 늘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기성 가수의 창법을 흉내내거나 나쁜 습관이 있는 참가자는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떨어집니다.

JTBC의 ‘히든 싱어’라는 색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입니다. 원곡 가수와 모창 가수 5명이 블라인드 뒤에서 대결을 펼칩니다. 6명이 원곡 가수의 노래를 한 소절씩 나눠 부릅니다. 100인의 평가단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소리만 듣고 진짜 가수를 찾아냅니다.

참가자들의 모창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필자는 원곡가수를 제대로 맞춘 적이 없습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창법까지도 흡사합니다. 누가 원곡 가수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노래를 잘 부릅니다. 심지어 원곡 가수의 프로듀서나 친구·동료까지도 맞추지 못해 당혹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말에 어폐가 있지만 어떤 모창 가수는 원곡 가수보다 훨씬 더 원곡 가수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모창은 모창일뿐입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원곡 가수가 받는 개런티의 백분의 일, 천 분의 일도 받을 수 없습니다. ‘너훈아’가 ‘나훈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나무사진’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진가 마이클 케냐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전시작품에는 2007년 강원도 삼척 월천리에서 찍은 솔섬 사진도 있었습니다. 소나무 섬이 잔잔한 물 위에 반영돼 마치 데칼코마니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흑백사진입니다.

솔섬은 마이클 케냐 덕분에 일약 유명 사진촬영지로 각광을 받게 됐습니다. 아마추어들은 물론이고 프로사진가까지 월천리 솔섬으로 몰려갔습니다. 이들은 앞다투어 마이클 케냐의 솔섬 사진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은 사진을 찍기 위해 초점거리가 같은 렌즈를 사용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주말이면 자리다툼까지 일어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인터넷에는 월천리 솔섬 사진이 넘쳐났습니다. 그중에는 정말 마이클 케냐의 그것과 거의 흡사한 사진도 있습니다. 어떤 사진은 케냐의 사진보다 더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짝퉁은 짝퉁일뿐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진이 좋아도 마이클 케냐보다 비싼 값에 팔리지 않습니다. 히든 싱어의 모창 가수처럼. 독창성이 없는 사진은 생명이 없는 껍데기일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명심할 부분입니다.

얼마 전 회사 일로 경북 경주에 갔습니다. 경주의 봄을 상징하는 사진이 필요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유산인 경주는 사진가들이 몰리는 명소입니다. 차별화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곳이 아닙니다. 고심 끝에 신라 왕릉을 찍기 위해 대릉원으로 향했습니다.

경주는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수학여행을 갔던 곳입니다. 지금까지도 남은 강렬했던 기억은 불국사나 석굴암보다 도심 곳곳에 솟아있는 거대한 신라 왕족의 능이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경주의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대릉원을 둘러보던 중 능과 능 사이에 꽃을 피운 목련 한 그루에 시선이 멈췄습니다(사진). 사람의 눈은 비슷한가 봅니다. 이미 그곳에는 사진 동호인들이 삼각대를 펼치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이곳 역시 해마다 목련이 필 때면 사진가들이 몰려드는 명소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기존의 대릉원 사진과 차별화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능 뒤에 있는 가로등을 봤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의 대릉원은 낮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목련을 비추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의 곡선은 모태를 연상케 했습니다. 셔터타임을 30초로 설정한 다음 능 뒤로 돌아가 스트로보로 조명을 보탰습니다. 1500년이 넘은 신라의 무덤이 봄을 잉태하고 꽃을 피웠습니다. 생멸의 순환을 보여주는 ‘찬란한 슬픔의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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