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HAMPION - 조명업계의 스티브 잡스 꿈꾼다
HIDDEN CHAMPION - 조명업계의 스티브 잡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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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 있는 필룩스를 찾았다. 이 회사는 전자제품에 쓰이는 부품·소재와 조명을 만든다. 노시청(62) 필룩스 회장을 따라 집무실에 들어가자 은은하게 조명이 켜진다. 인터뷰 중간에 자료를 보여주겠다며 컴퓨터 모니터를 켜자 커튼이 젖혀지며 연동된 스크린이 나온다.
일부 조명은 스크린을 잘 볼 수 있게 꺼졌다. 색이 변하는 조명도 있다. 신기하다고 하자 “이건 10년 전 것”이라며 벽 쪽에 설치돼 있는 새 모델을 보여준다. 조명 밝기와 색을 조절해서 ‘메모리’해 둘 수도 있다. “필요할 때 버튼을 누르면 메모리해 둔 상태로 조명이 바뀝니다.” 각 조명과 제어장치는 무선으로 연결돼 있다. 스마트폰으로 조작할 수도 있다.
필룩스는 단순히 조명도구·부품을 파는데만 그치지않고 ‘필마스타’라는 통합제어시스템을 만들었다. 조명뿐만 아니라 가전기기·커튼·공조·보안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쉽게 제어할 수 있다. 옆에 있는 장치에는 전구와 연결된 전선이 없다.
행거처럼 생긴 막대 위에 전구를 걸어놓으면 불이 들어온다. ‘무접촉 LED 조명장치’다. 소켓에 꼽지 않아도 된다. 막대 위에서 자유롭게 조명을 이동할 수 있다. 물 속에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집무실은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노 회장은 필룩스를 ‘감성문화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1975년 회사를 만들어 전자제품 소재를 제작 판매하다 TV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었다. 소재는 부품을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다. 이어 조명으로 사업을 넓혔다. 필룩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조명 기술을 기반으로 다른 것을 접목해 감성문화를 만든다. 필룩스의 기술로 소리와 냄새까지 어우러진 시스템을 만든다.
필룩스의 조명은 프라다·루이비통·자라 등 패션 브랜드의 디스플레이에 쓰인다. 국내 유명 백화점 매장에서도 필룩스 조명을 쓴다. 필룩스는 32개국 97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이 중 미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 등 9곳에 현지법인이 있다. 지난해 매출은 947억원(연결 포괄손익계산서 기준)이다. 경기도 양주 본사 옆에 조명박물관도 운영한다.
노 회장은 1975년 25세에 필룩스의 전신인 보암전기전자재료연구소를 만들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려다 창업했다. “학군사관(ROTC)으로 군대를 마치고 학교에 가 보니 동기들이 대학원에 진학했더군요. 그들에게 연구하는 것 좀 보자고 했는데 잘 안 보여줬어요. 막상 보니 연구한 것도 대단한 거 같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대학원은 안 간다’결심했어요. 그런데 연구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학교 밖에 연구소를 만든 거에요. 자금이 부족하고 시설도 형편 없었지만요.”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이 소재사업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5년이 흘렀을 때 노 회장은 정부지원금을 기대하고 있었다. 1~2년 동안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공을 들였다. 모든 단계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확인만 남아 있었다. 회사를 찾은 전문가는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소재 산업은 중소기업이 할만한 사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외국에서는 소재산업이 규모가 크고 국가가 주도하는데 그걸 작은 회사가 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당시에는 너무 분했어요. 실망도 컸고요.”
노 회장은 ‘반드시 성공해서 보여주겠다’며 더 열심히 노력했다. 제일 큰 문제는 소재를 만들어도 써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재를 개발하고 양산하는 기계까지 만들었지만 팔리지 않았다. “제품을 만들어 놓고 보니 이 제품이 좋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 뿐이더군요.” 결국 고민하던 노 회장은 소재를 가지고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품의 품질을 알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TV를 사다가 자신이 만든 부품으로 바꿔 끼워도 잘 작동한다는 걸 보여줬다. 1980년대 초, TV와 오디오 부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던 동남전기에 텔레비전 부품을 납품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동남전기는 부도를 맞았다. 숨 돌릴만 하던 노 회장은 다시 숨이 턱 막혔다.
“그동안 납품한 부품 대금을 못 받으면 그대로 망하는 거였어요. 더 이상 일어설 수도 없었죠. 박영택 동남전기 회장 집무실로 뛰어 들어갔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박 회장이 그날 밤에 트럭 두 대를 창고 뒤에 대라고 하더라고요.” 물건으로 대금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창고도 다 압류가 들어간 상태였을 텐데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가전제품을 출고해 줬어요. 아마 가중처벌을 받으셨을 거에요. 본인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저를 살려준 거죠.”
이후 몇 달 동안 노 회장은 외판원처럼 그 제품을 팔았다. 판 돈으로 다시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 동남전기에 납품했다는 사실에 시장에서 신뢰가 두터워졌다. 동남전기가 비록 부도는 났지만 제품에서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다른 가전 업체에도 부품을 납품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다 노 회장은 다른 바람이 생겼다.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TV 부품을 만들던 기술을 바탕으로 조명 사업을 하기로 했다. 1990년의 일이다.
필룩스가 처음 주력한 것은 삼파장 램프. 당시 오스람과 필립스 등의 수입품만 팔리던 때다. 필룩스는 삼파장 램프를 국산화했다. 가격도 수입 삼파장 램프(1만5000~2만원)에 비해 싼 1만2000원이었다. 경기도 부천에 삼파장 램프 생산공장을 짓고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1994년까지 주문량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듬해 중국에서 만든 제품이 개당 3000원에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부천 공장 문을 닫았다.
필룩스가 조명사업을 시작하던 1990년대의 조명 시장은 서울 청계천 인근 네댓 개 유통업체가 좌우했다. 서류없는 거래가 관행이다 보니 거래 업체 부도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겼다. 단순히 많이 파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 회장은 특허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어 제 값 받고 팔자는 뜻에서였다. 시작은 형광등과 전기 회로가 담긴 안정기가 하나로 합쳐진 형광등이었다. 삼파장 램프를 만들어 팔던 조명사업 초기부터 생각하던 아이디어였다. 온전한 제품도 없이 아이디어와 모형만 가지고 미국 뉴욕의 조명 박람회에 참석했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수출을 계기로 국내보다 먼저 해외 시장에 알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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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제품 만들어 현금 거래 고집특허 제품을 팔기로 한 노 회장은 현금 거래를 고수했다. 입금 확인 전에는 제품을 출고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업 초기에는 대형 건설업체와 가구업체의 어음도 받지 않아서 원성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이 결국 필룩스의 재정을 투명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다.
2001년 인천공항이 문을 열면서 국내 시장에 필룩스가 알려졌다.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현지 매장에서 사용하던 필룩스 제품을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하면서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내 고급 백화점 등도 필룩스 조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필룩스의 아이디어를 지켜주는 것은 특허다. 상표권과 디자인권·특허권·실용신안권 등 등록된 지적재산권이 263건, 출원중인 것은 192건이다. “항상 사람들이 머리를 칠 만큼 놀라운 제품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이 필룩스가 애플보다 낫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디서 그렇게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냐고 물었다. 그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통장처럼 생긴 수첩이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항상 적는다. 제품 아이디어도 스케치한다. 집무실 한 켠에서 꺼낸 쇼핑백 안에는 그동안 그가 써온 수첩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인터뷰를 하다가 길다란 커튼 레일처럼 생긴 것을 가리킨다. 길다란 블록처럼 생긴 LED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레일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움직여도 불이 들어온다. 이 아이디어는 모노레일 뉴스를 보다가 떠오랐다. 이것도 수첩에 스케치 해 뒀다가 제품화 했다. 이 제품의 이름은 ‘FEELED D bar2’.
좋은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려면 ‘싱킹 스피드(Thinking Speed)’가 빨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노 회장은 잠을 자는 동안에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랐다고 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비몽사몽 수첩에 아이디어를 적거나 그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는 하루 7시간 이상은 꼭 잔다. “잘 자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일단 건강해야 합니다. 너무 늦게 음식을 먹는것도 피해요.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에 근심걱정은 기도하면서 없애 버립니다.” 술 담배도 안 한다. “경영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술 담배로 몸이 망가지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죠.”
사업 초기에는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노 회장 머리에서 나왔다. “그래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어요.” 이제 회사 내 많은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는데 동참한다. 필룩스의 직원들은 통장처럼 생긴 아이디어 수첩을 챙겨 다닌다. 아이디어 제안 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도 한다. 매년 두 번 사내 발명전시회를 연다. 사업성과 독창성을 평가해 300만원 이상 상금을 준다. 직원들과 한 달에 한 번 만나 창조적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하루에 특허거리가 몇 십 개 나올 때도 있죠.” 매주 한 번씩 특허팀과 회의를 하고 지식재산권을 제안한 직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직무발명 제도도 있다. 해당 지식 재산권과 관련된 제품의 매출에서 일부는 발명자에게 준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은 정년도 없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횟수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정년 없이 계속 일할 수 있다. “미래에는 변화를 주도하는 집단과 변화를 좇아 가는 집단으로 나뉠 거에요. 창조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가격 싸움 밖에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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