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멀리 떠나지 마세요
굳이 멀리 떠나지 마세요
3년 전 귀농을 결심했다. 10년 간 지낸 서울 마포를 떠나 경기도 파주의 교하신도시로 이사했다. 여전히 아파트에 살지만 단지만 벗어나면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다.
가을·겨울 하늘에는 철새가 끊임 없이 날아다닌다. 봄·여름 논에는 왜가리가 한가롭게 거닌다. 가끔 근처 심학산에서 내려온 배고픈 고라니와 눈이 마주치는 사‘ 건’이 일어날 때도 있다.
난생 처음 농사도 지었다. 파주도시농부학교에서 생태순환 농법을 배워 현재 99㎡(30평) 정도의 텃밭 농사를 짓는다. 흙을 밟으며 가족이 먹을 채소를 직접 길러먹는 만족감이 크다.
도시민에게 귀농·귀촌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다. 도시형 귀농·귀촌은 도시 혹은 도시 근교에 살면서 텃밭·숲하천 등 자연적인 요소와 공동체·가족 같은 인간적인 요소를 가까이두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문화이자 대안적 삶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아예 시골에 내려가는 시골형 귀농·귀촌보다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다.
무엇보다 자연 친화적인 삶과 도시생활의 이점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은퇴한 고령층이 각종 문화·편의시설을 갖춘 도심이나 도시 부근의 실버타운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도시형 귀농·귀촌을 선택한 사람의 수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도시에서 주말농장이나 동네 자투리 땅, 집 앞마당 등의 공간을 이용해 농사짓는 도시농부의 수와 비례해서 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국적으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약 70만명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1년 불과 100여 개이던 도시텃밭이 지난해 1673개로 급증했다. 도시농업을 전파하는 단체의 활동도 활발하다. 전국 주요 도시 30여 개의 도시농부학교·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해마다 2000여 명의 도시농부를 배출한다.
시골과는 다른 ‘도시형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동화작가 김남중이 쓴 『아파트 옆 작은 논』이라는 어린이 책에는 2010년 광주광역시 일곡동의 주민들이 모여 만든 한새봉두레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동안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한새봉과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논(개구리논)에서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 이야기다.
대부분 처음 농사를 짓는 도시 사람들이었고,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시작한 일이었다. 이들은 좌충우돌하면서도 무사히 1년 농사를 마쳤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한 ‘잘 가꾼 자연유산 문화유산’에 선정됐다.
물론 도시형 귀농·귀촌은 아직 초기 단계라 어려운 단점이 적지 않다. 우선 농사 지을 땅을 구하기 어렵다. 비싼 땅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텃밭을 임대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 땅이 아니기 때문에 토질 개선 등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다. 직업으로 접근하면 더 비관적이다. 텃밭지도사·텃밭강사·도시농업코디네이터 등 새로운 직업이 있다. 수요도 늘었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에게 그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수입도 충분한 편이 아니다. 허리띠를 졸라맬 각오가 필요하다.
도시형 귀농·귀촌은 농사나 전원적인 생활에 대한 기대보다는 ‘잘못된’ 현재의 삶을 바로잡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소비사회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잘 꾸민 집과 근사한 자동차, 막대한 사교육 등 평소와 똑같은 소비생활을 유지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예전처럼 생활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텃밭 경작이나 가족과 여유로운 생활, 마을 공동체 활동은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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