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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내 존재감 없어?

이래도 내 존재감 없어?

무색무취 폄하에 작심한 듯 분주한 외부 활동 … 한국은행과도 소통 나서



‘어제는 퇴근 후 세종 청사에서 직원들과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배드민턴 셔틀콕 속도는 야구공·골프공보다도 빠릅니다. 정책도 셔틀콕처럼 속도감 있게~’. 현오석(63)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말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현 부총리의 발걸음이 셔틀콕처럼 빨라졌다. 경제 현안에 대해 입장 표명이 잦아졌고 자신에 대한 비판과 지적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현 부총리에 대한 세간의 평은 인색했다. ‘무색무취의 리더십’‘경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못 한다’‘추진력이 없다’‘경제 현안에 입을 다문다’‘조원동 경제수석에 가려 안 보인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는 “야당과 국민에게는 경제부 총리에 대한 믿음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정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할 경제부총리의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5월 28~3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 참석과 한국경제설명회(IR)를 전후로 현 부총리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따라다녀도 받아 적을 말이 별로 없다”는 소리를 듣던 그의 입에서 연일 뉴스가 쏟아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창조경제 로드맵이 속속 발표되면서 직접 정책을 설명하거나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현 부총리는 5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OECD 좌담회에서 “우리나라 근로시간을 연간 1900시간대로 줄이는 등 일하는 방식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300시간 정도 길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지만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직후 정부는 근로시간을 줄이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일자리 로드맵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까지 개인당 연 평균 근로시간을 1900시간 이하로 낮춰 시간제 일자리를 지난해 149만 개에서 2017년 242만 개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 부총리가 원장을 지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뜨거운 논란이 예상되는 정책인 만큼 OECD가 이를 지지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6월 4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시간제 일자리 확대 등 고용률을 높이는 정책을 설명해 참석한 OECD 국가들로 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업의 반대가 예상되는 조세감면·비과세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는 5월 29일 OECD 각료이사회에 참석해 “고소득층에 집중된 조세 지출을 축소하고 저소득층을 겨냥한 조세지출을 통해 재정건전화와 성장·분배라는 가치를 모두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 제안하는 방식이었지만, 국내 반발 여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6월 3일 열린 제6차 재정관리협의회에서는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로 그간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아온 계층이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하도록 해 조세형평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일본 엔저 공습에 경제 수장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도 쏟아냈다. 그는 OECD 각료이사회에서 “일본의 양적완화가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한국 등 이웃 나라의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구조개혁 없는 양적완화는 지속가능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 모래성 같다”고 비판했다.

6월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6월 말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아베노믹스와 ‘의도하지 않은’ 엔저 현상의 부작용을 반드시 의제로 다뤄야 한다”며 “엔저로 인한 타격이 한국 등 수출국가뿐 아니라 점차 세계 경제로 파급되고 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세계에 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셔틀콕처럼 빨라진 발걸음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모처럼 입장을 밝혔다. 6월 4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현 부총리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며 “하지만 일부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는 계기가 돼야지 막연한 반기업 정서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민주화는 창의력 있고 성실한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와 경쟁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3원칙도 밝혔다. 경제적 약자를 지원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대기업 장점을 살리되 잘못된 관행은 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다. 현 부총리는 그동안 경제 상황 인식차와 기준금리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김중수(66) 한국은행 총재를 6월 4일 만났다. 3월 22일 취임 후 첫 회동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 부총리가 제안해 이뤄진 자리”라고 했다. 현 부총리는 김 총재의 경기고·서울대 후배다. 박사학위도 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받았고 KDI원장 출신이라는 점도 같다.

30분 정도 비공개 간담회를 한 현 부총리는 “일자리 정책과 현 경제상황, 대외경제와 국내 정책평가, 해외 일자리 정책, 그리고 개인사에 대해 얘기했다”며 “한국은행과 정부가 경제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긴장되게 우리경제 상황을 지켜보자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회동 직후 두 기관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하반기 물가안정과 추가경정예산 등 정부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데 상호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이 강조됐다.

기재부 직원들도 각별히 챙긴다는 후문이다. 현 부총리는 취임 후 기재부 직원들과 농구나 배드민턴을 함께 하고 부서 내 취미 활동 프로그램인 바리스타 취미 교실에 참석하는 등 내부 소통에 신경을 많이 썼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는 ‘마음이 짠하다’며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기재부의 한 서기관은 “세종시 청사로 올 때마다 거의 직원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등 스킨십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과거 기관장 시절 받은 혹독한 내부 평가를 의식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 부총리는 KDI 원장 시절 기관장 평가 중 내부 구성원 평가 항목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0년 평가 보고서에는 ‘구성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하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소통에 대한 노력도 미흡해 보인다’는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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