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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승강기 시장 장악하려는 야심?

한국 승강기 시장 장악하려는 야심?

현대 “적대적 M&A 의도” vs 쉰들러 “주주 권익 수호” 주장 팽팽



“우리는 적대적(Hostile) 회사가 아닙니다.” 알프레드 쉰들러 쉰들러홀딩아게(Schindler Holding AG, 이하 쉰들러) 회장이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얼핏 들으면 현대엘리베이터를 적대적 인수·합병(M&A)하지 않겠다는 이야기 같지만 속내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쉰들러가 최근 많은 소송을 걸어놓고 언론 노출 빈도를 늘린 이유는 한국에서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하는데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두 회사는 최근 소송전이 한창이다. 2심까지 간 이사회의사록 열람 등사 허가신청은 서울고등법원에서 4월 16일 기각됐다. 쉰들러 항고로 진행된 이 소송에서 법원은 현대엘리베이터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기각 결정문에서 ‘쉰들러는 주주로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을 감독하기 위해 이사회의사록 열람 등사를 청구하는 게 아니라 현대엘리베이터를 압박해 회사 인수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봤다. 앞서 쉰들러는 2011년 11월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이사회의사록과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신청을 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한 현대상선 주식에 대한 파생상품 계약에 배임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시기 쉰들러가 청구한 회계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 사건은 아직 2심이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로 1심에서 기각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3월 들어 신청한 신주발행(보통주 160만주) 금지 가처분신청 역시 기각됐다고 4월 22일 공시했다.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법원은 “일반 공모 증자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현저히 불공정한 발행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쉰들러는 5월에 다시 항고해 2심을 앞뒀다. 이밖에 두 회사는 파생상품 계약 연장에 관한 2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모두 쉰들러가 제기한 소송이다.

쉰들러는 세계 2위 승강기 업체이지만 아시아에선 유독 힘을 못 썼다. 경쟁사인 세계 1위 오티스는 미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유럽에서 고루 점유율을 높였지만 스위스가 본거지인 쉰들러는 주로 유럽에 집중했다. 쉰들러는 2003년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신규 설치 기준 쉰들러의 국내 승강기 시장 점유율은 2%대로 오티스나티센크루프에 비해 미미했다. 쉰들러는 2006년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인수했다. 2010년부터 계속 지분을 늘려 올 5월 말 기준 지분율이 35%에 달한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다.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 계열 특수 관계인의 지분율은 45%다. 쉰들러는 소송전을 벌이기 전에도 현대엘리베이터 인수 여부를 타진했다.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M&A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여론 몰아 M&A 하려는 의도”아시아 시장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주 공략 대상으로 노리는 이유는 한국이 세계 3위로 규모가 큰 승강기 시장이기 때문이다. 설치·유지·보수 도합 2조5000억여원 규모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신규 설치 3만대(점유율 42.1%)로 국내에서 독보적인 1위다.

유일한 토종 기업이지만 2위 기업과 격차가 크다. 쉰들러가 국내에서 어렵게 점유율을 높이려 애쓰지 않아도 현대엘리베이터만 인수하면 세계 3위 시장을 손쉽게 공략할 수 있다. 세계 1·2위인 중국·인도 시장 공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잇단 소송으로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 문제를 제기한 것 또한 향후 적대적 M&A를 위한 포석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회사를 매각하지 않을 방침이다. 그런데도 쉰들러가 주주로서 순수한 의도가 아닌 적대적 M&A를 하려는 의도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주발행 등에 잇따라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이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표면적으로는 적대적 인수를 안 하겠다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인수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쉰들러 회장은 지난해 말 블룸버그 인터뷰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국제 기준에서 볼 때 있을 수 없는 행위를 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가 최대주주인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상선과 체결한 파생상품 계약으로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6월 4~5일 97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현 회장은 유상증자를 통해 보유 주식을 4만주 더 늘렸지만 쉰들러는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펀드 등으로 우회 투자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아직 주주명부폐쇄 공고가 나지 않았지만 쉰들러가 알려진 대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쉰들러의 지분율은 30%로 낮아질 전망이다. 현대그룹이 ‘겉으론 고요한’ 쉰들러의 후속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경영권 방어 고민 커져현대그룹은 한때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 매각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후 매각하지 않기로 방향을 틀었다. 이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과 쉰들러 회장의 사이도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여유가 별로 없는 현대그룹은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파생상품 계약을 해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지분을 보유 중이다. 현대상선 또한 세계 해운 업황의 극심한 침체로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일각에선 STX그룹의 뒤를 이어 현대상선도 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상선은 1분기에 13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300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추진하면서 유동성 위기 극복과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2011년 한때 19만원대를 기록했지만 법정 공방이 가열된 이후 2년여가 지난 6월 27일 현재 5만6700원으로 하락세가 뚜렷하다.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문제와 현대상선 실적 부진에 현대그룹의 시름이 깊다.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발행한 기업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회사채. 신주인수권과 회사채가 결합한 개념으로 회사채 형식으로 발행되지만 일정 기간(보통 3개월) 경과하면 미리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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