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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쌀쌀한 가을 맞나

글로벌 금융시장 쌀쌀한 가을 맞나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양적완화 축소·종료 반대하지 않아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7월 17~18일(현지시간) 진행된 미 의회 보고에서 양적완화를 줄이는 게 긴축을 뜻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미국 금융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7월 17~18일(현지시간) 이틀간 진행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미 의회 보고가 계기로 작용했다. 버냉키 의장은 양적완화를 줄여 나가는 게 긴축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경제상황에 맞춰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2.75%로 치솟은 10년 만기 미 국채수익률이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뉴욕증시는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재개했다.

미국과 달리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여전히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이 눈에 띄게 소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돌격대처럼 경제 회복세를 앞장서 이끌었지만 이제는 침체를 방어하는 수비수의 자리로 물러섰다.



“가속 페달 발 떼는 것, 브레이크 밟는 건 아니다”올 하반기 이후 예상되는 경기 회복세가 기대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높이가 낮아졌다. 글로벌 실물경제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선도적 지원 없이 불확실성을 뚫고 홀로 일어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버냉키 의장은 이번 의회 보고에서 “양적완화 정책은 경제의 전개 양상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결코 사전에 미리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진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가 예상보다 나빠진다면 양적완화를 줄이지 않거나 심지어 늘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양적완화 축소·종료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통화정책을 자동차 운행에 비유한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좀 떼는 것이지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아니다.” 제로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부양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지금 전망하는 식으로 경제가 전개된다면 예정대로 양적완화를 줄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란 점은 다행스럽지만 가속페달에서 발을 뗀다는 것 자체는 경제에 부담이다. 적어도 중앙은행이 제공하던 성장 모멘텀은 줄어든다.

양적완화는 금리인하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보완책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명목 정책금리를 ‘제로(0)’ 밑으로는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의 실질금리를 추가로, 심지어는 마이너스로 인하하는 가속장치를 고안한 것이다. 일부 미연방준비제도 간부들은 이를 두고 ‘추가 연료(added fuel)’라고도 표현한다. 만약 이 가속장치를 떼낸다면 시장의 실질금리는 상승하게 된다. 이는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긴축효과를 낸다.

최근 공개된 영국 중앙은행의 7월 회의 의사록에서 이런 기류가 주요국 중앙은행 사이에 형성된 기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중앙은행 역시 4년 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한 양적완화에서 벗어나려 한다. ‘초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새로운 부양 수단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다.

양적완화라는 가속페달이 금융시장의 과도한 위험 추구를 부추겨 새로운 거품을 양산한다는 비판과 반성이 통화정책 기조 변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도 양적완화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흐름은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나타났다. 회의 뒤 발표된 공동성명서에서 G20 재무장관들은 “지난 수년 간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됐다”면서도 “완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과 위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통화정책 기조는 신중하게 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양적완화의 축소·종료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중국 새 정부의 경제정책도 똑같은 스탠스로 물러서 있다. 리커창 총리는 최근 경제 전문가와 기업계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성장률이 최저선인 7% 밑으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를 위로 끌어 올리는 성장촉진 정책보다는, 아래를 받치는 연착륙 지원 역할에 방점을 둔 발언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이번 의회 보고에서 고용시장이 상대적으로 덜 우호적으로 바뀌는 경우, 인플레이션 전망이 2%의 목표를 향해 되오르지 않는 경우, 금융환경이 충분히 부양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양적완화를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만약 미국 경제의 속도가 예상만큼 나지 않는 경우에 미국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할 것인가? 지금 봐서는 확언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은 6월 19일 회의에 앞서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제출했다. 19명의 위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인사가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끝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경제가 계속 좋아지면 내년 상반기 말쯤에 종료하겠다고 했던 버냉키 의장의 말에 비해 내부 분위기가 훨씬 강경한 것이다. 특히 서너명의 위원은 당장 6월 회의에서부터 양적완화를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위원의 수는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연방준비제도가 공개한 의사록에 따르면 FOMC 본회의에서도 양적완화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다양하게 터져나왔다. 서너 명의 참석자는 “장기 저금리로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위험에 몰입할 수 있으며, 자산가격이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명의 참석자는 “일부 금융회사가 금리 급등세에 대비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버냉키 의장이 회의를 마친 뒤 ‘연내 양적완화 축소, 내년 상반기 종료’ 일정을 공표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것도 FOMC 위원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미국의 경제가 이제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러나 실제 액션을 촉발한 계기는 금융 거품에 대한 심각한 우려였다.



양적완화 후속타 없으면 정책 공백기 우려양적완화는 스테로이드와도 같았다. 효과는 강력했지만 오래 쓸 만한 약은 아니었다. 버냉키 의장이 의회 보고에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긴 했어도 ‘오는 9월에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은 변하지 않았다. 양적완화를 대체할 만한 명약(名藥)이 개발되기 전까지 세계 경제는 기존의 처방(초저금리)만으로 버텨야 하는 정책 공백상태에 빠지게 된다.

만약 이런 진단이 사실에 가깝다면, 올 가을은 지금보다는 쌀쌀하고 소란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예정된 일정을 보자. 9월 17~18일 FOMC에서 양적완화 축소 여부가 결정되고, 9월 말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회계연도가 종료된다. 10월 초부터는 미국의 3분기 실적발표 시즌이 시작된다. 10월 말에는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상한선에 도달한다. 이 시기는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 지명과 의회검증 작업이 맞물린다.

만약 이 무렵 연방준비제도 또는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종료에 관한 방향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경제지표가 다시 둔화되는데도 양적완화 축소 작업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경우든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상대로 한 의회 청문회 분위기는 미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을 둘러싼 여야 대치와 맞물려 험악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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