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강 둑길 따라 23㎞ … 노면 평탄해 초보자도 무리 없이 완주 광활한 호남평야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동진강 둑길. 오른쪽 아래의 비석은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만석보 터를 알리는 기념비다.
3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 수평선은 흔한 풍경이지만 광활한 들판 끝에 아스라한 가로줄을 긋는 지평선은 보기 어렵다. 산이 워낙 많은 이 땅에서 풍경 저 편은 언제나 산이 배경을 이룬다. 전통 풍경화인 ‘산수화(山水畵)’는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이 있는 풍경화다. 산과 물 중에서 특히 산이 빠지면 산수화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 ‘풍경’은 산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유전자로 각인돼 있는 것 같다. 실제 보는 풍경도 그렇다. 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어디있는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호남평야다. 이 너른 들판 한가운데를 흐르는 동진강을 따라 뻗어있는 장대한 둑길은 호남평야의 절정을 볼 수 있는 들길이다. 비행기로 몇 시간을 가도 평원뿐인 미국 중서부의 대평원(프레리)을 처음 보는 한국인은 충격을 받는다.
산에 둘러싸인 작은 들판만 보고 자란 눈에 ‘세상에 이렇게 넓고 큰 땅이 있단 말인가’ 하고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프레리는 남북 2000㎞, 동서 100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평원이다. 가까운 중국만 가도 만주와 중원지방에 한반도 만한 평원이 펼쳐져 있다.
1. 동진강 둑길에서 1.5㎞ 떨어진 전북 정읍시 이평면의 말목장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농민을 모아놓고 연설한 곳이다. 2. 백제 때인 330년 축조된 벽골제. 지금은 거의 모두 농토로 바뀌었다. 3. 벽골제 일대는 산뜻한 공원으로 조성됐다.그렇다면 국내 최대의 호남평야는 얼마나 클까? 솔직히 아주 맑은 날이면 호남평야에서도 내륙쪽으로 바라보면 지평선 위에 산봉우리가 걸린다. 호남평야는 남북 60㎞, 동서 30㎞ 정도다. 미국 프레리 면적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호남평야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땅인지 모른다.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이고, 정서적으로는 국내 유일의 지평선을 볼 수 있어 ‘대평원 열등감’을 덜어준다.
호남평야의 광활함과 풍요를 느끼려면 벼가 진초록으로 물드는 늦여름이나 이삭이 황금빛으로 영그는 가을이 가장 좋다. 자전거는 평야의 남쪽 끝에 자리한 전북 정읍에서 출발해 호남평야의 젖줄을 이루는 동진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전북 김제로 접어들면 이 넓은 들판의 오랜 농경역사를 전해주는 벽골제(碧骨堤) 유적이 마지막으로 반겨준다.
정읍 녹두다리에서 김제 벽골제까지 23㎞의 둑길은 호남평야가 주는 장쾌함과 농부들이 애써 가꾼 결실의 흔적을 지근 거리에서 실감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넓고 풍족한 들판에서 한때는 억압과 굶주림이 횡행한 역사의 현장도 만날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했다.
코스 근처에는 당시의 유적이 집중돼있다. 코스가 지나는 신태인교 옆에는 동학농민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만석보 터가 남아 있다. 1892년 고부(지금은 면으로 축소)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은 이곳에 농민을 동원해 물길을 막는 만석보(萬石洑)를 쌓았다. 그러나 임금을 주지 않고 수세(水稅)를 가혹하게 매기는 등 착취와 부패가 극심했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전봉준을 지도자로 삼고 봉기했다. 정읍천대교에서 좌회전해 4㎞ 들어가면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관군을 물리치고 기세를 올린 황토현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4㎞ 떨어진 이평면 두지리에는 전봉준이 농민을 모아놓고 연설한 말목장터가 있다.
코스는 정읍과 김제 사이의 동진강 둑길이 핵심이다. 김제에서 정읍 방면으로 가도 되고, 정읍에서 김제 방면으로 가도 된다. 여기서는 상류인 정읍에서 출발해 하류이자 평야의 한가운데인 김제 벽골제 방면으로 가는 여정을 소개한다. 정읍은 산악지대가 시작되는 곳이고 동진강 상류여서 이곳에서 출발해 하류로 가는 것이 조금이라도 내리막이다. 또 점점 넓어지는 평야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며 호남평야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정읍시내에서 덕천면 방면으로 가는 705번 지방도(황토현길)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면 곧 동진강 지류인 정읍천을 건너는 녹두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오른쪽 강변길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동진강 둑길이 시작된다. 초반에는 정읍제1산업단지가 옆에 있어 공단이 보이지만 1㎞ 정도 가면 끝나고 호젓한 들판 사이로 기나긴 강변 둑길이 뻗어난다.
녹두다리에서 4.5㎞ 가면 정읍천대교를 만난다. 좌회전해서 4㎞ 가면 황토현전적지가 나온다. 황토현으로 가면 말목장터가 있는 이평면을 거쳐 만석대교로 나와 제방길로 다시 합류할 수 있다. 모두 일반도로이므로 여기서는 정읍천대교 앞길을 건너 제방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한다.
정읍천대교에서 5㎞ 더 가면 738번 지방도가 지나는 만석대교가 다시 둑길을 끊는다. 길을 건너 제방길로 들어서면 작은 쉼터와 함께 만석보 터를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만석보 터에서 6㎞ 가면 둑길이 끝나면서 부안군 백산면 군포교 아래에 이른다. 군포교를 건너 29번 국도를 따라 7㎞ 가면 벽골제에 도착한다.
코스 주변에는 마을이 거의 없고 제방길은 잘 관리 돼 있으며 노면도 좋다. 비포장이 많지만 시멘트 포장된 곳도 더러 있고 전체가 완전한 평지여서 초보자도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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