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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산골 목수의 고집

ART - 산골 목수의 고집

이정섭 목수는 10년 전 자리 잡은 강원도 홍천에서 장식 없는 간결한 형태의 가구와 ‘ 내촌목공소 한옥’을 짓는다.



7월 장맛비를 뚫고 강원도 홍천 내촌면을 찾았다. 내촌면사무소를 지나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가다 보니 집 짓는 공사장이 나왔다. 비가 퍼붓는데도 이정섭(41) 목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2시였다. “바쁘신거 같은데 질문 좀 할까요”하고 묻자 “일에 방해된다”고 짧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비가 오는데도 공사를 할 수 있냐고 하자 “상관없다”고 역시 짧게 얘기한다. 당초 인터뷰 요청을 할 때 “말수가 적다”며 인터뷰가 어려울 수 있다던 목공소 관계자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단열재를 잘라 건물 외벽에 붙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목수는 6명. 목재로 기둥을 세우거나 벽을 다듬는 등 저마다 작업중이었다. 이 목수는 작업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작업을 총괄한다. 1년에 362일을 일할 정도로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주변에선 “그는 1년에 사흘 정도 정말 몸이 고단할 때를 빼곤 매일 일한다”고 했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작업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 왔다고 하자 “(재미있는 기사가 될만한)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없다”고 답했다.

이 목수는 원래 가구의 명인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온 그는 한때 사진에 빠져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1998년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모습을 그려 서울 을지로 지하보도에서 미술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날 TV에 전통한옥 짓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 나왔다. 강원도 태백에 있는 한옥 학교였다.

곧바로 짐을 싸 태백으로 달려갔다. 연장 다루는 법 등을 배워 2000년 처음 충북 괴산에 한옥을 지었다. 그리고 2002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살 집을 짓고 내촌목공소를 열었다. 거기서 목수 일을 시작했다. 여기서 만든 가구는 ‘단순미의 표본’이라는 평을 들으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 인사동 쌈지길과 소격동 선 컨템포러리,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에서 가구 전시회를 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위스 취리히 등 해외에서도 가구를 전시했다. 스위스의 매트리스 회사 ‘휘슬러 네스트’는 침대 프레임을 제작했다. 일본 도쿄예술대 겸임교수이자 대장장이 가와이 준지와 테이블 등을 공동 작업했다. 다리는 가와이 준지가 철로 만들고 상판은 이 목수가 나무로 만들어서 완성했다.

단순해 보이는 나무 의자가 200만원, 네모난 탁자는 600만원이다. 탁자 길이가 2m50㎝를 넘어가면 15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한다. 내촌목공소 가구의 인기에 대해 이 목수는 “비싸다고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와 ‘사모님’들이 그의 가구를 샀다. 그의 가구는 웬만해선 틀어지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품질 좋은 참나무·물푸레나무·호두나무 등으로 오랜 기간 공을 쏟는다.

“내촌목공소 한옥이든 가구든 ‘내 손으로 잘 만들자’라는 욕심이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의자도 틈 없이 꼭 맞게 다듬고, 계속 앉아보면서 등받이 부분의 각도를 조절한다. 이 목수가 리모델링한 내촌창고에는 10년 동안 말리는 소나무 목재가 쌓여 있다.

나무의 틀어짐을 막기 위해 쪄서 건조한 목재로 집을 짓는다. 나무를 태우다시피 해서 수분을 제거한 탄화목으로 가구도 만든다.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턱대고 비싸다고만 할 수 없다. “가치와 가격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맥이 풀리더라고요.”

인터뷰를 하러 간 날, 현장에는 세 채의 집을 짓고 있었다. 내촌목공소 부근 부지에 모두 15채를 지어 마을처럼 만들 계획이다. 2채는 목수들이 살 계획이다. 8채는 팔렸다. 아직 5채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이 마을은 기획과 디자인·설계 등 준비 기간만 거의 2년이 걸렸다. 이것보다 작은 규모라도 준비 기간에 1년은 걸린다.

이 목수가 짓는 집은 ‘내촌목공소 한옥’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서울 평창동, 강원도 홍천 등지에 20채를 지었다. 공사중인 그의 집을 보니 일반 한옥과는 달랐다. 보통 한옥은 디딤돌을 딛고 올라갈 만큼 높이 짓는데 이 건물은 바깥의 바닥 높이와 별 차이가 없다. 지붕도 기와를 쓰지 않았다.

내촌목공소 한옥은 집 외벽이 벽돌이나 나무인 것도 있다. 2층 구조로 된 집도 짓는다. 그런데도 이 집을 한옥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한옥 특유의 나무 골조로 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통의 기본은 지키되 더 편리한 것은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다. 콘크리트로 바닥을 잘 다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높이 지을 이유가 없고, 잘 깨지고 무거운 기와보다는 가볍고 경제적인 ‘온두리니’라는 새로운 지붕재를 쓴다는 설명이다.

온두리니는 펄프로 만든 검정색 지붕재다. 최근 5년간 이 목수는 이 지붕재만 사용한다. “이 시대에 가장 합리적 작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내 DNA에는 전통이 들어 있겠지만, 이성과 상식을 배제하는 ‘전통 양식’은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아요.” 문화재를 복원할 때는 옛 것과 똑같이 지을 필요가 있지만 실제 사는 집까지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옛 것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본 유명 가구회사와 합작집도 짓고 가구도 만드는 것이 어딘가 낯설다. “예전에는 목수가 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는 벽장과 실내 가구를 짜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세계적으로 목수라는 직업이 사라져 버렸지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미국·유럽에도 옛 방식의 목수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올해로 13년 된 목수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말했다. “빨리 끝내야지. 막노동은 15년 이상 못해요.”

하지만 빨리 끝낼 것 같지 않다. 새로 벌이는 일이 많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일본의 마루헤이 가구에서 ‘내촌목공소’ 이름을 붙인의자나 탁자 등 가구를 만든다. 일종의 ‘위탁 생산’이다. 일본에서 전시회를 한 후 거기서도 판매할 계획이다. 그전까지 국내외 많은 곳에서 ‘내촌’ 브랜드로 그의 가구를 만들겠다고 했다. 가구 회사들이 샘플제품을 가지고 오면 이 목수는 얇은 종이를 들고 샘플로 만든 가구의 여기저기에 끼워봤다.

그러다 종이가 들어갈 정도로 틈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종이가 왜 들어가냐”며 번번이 퇴짜를 놨다. 올해 1월 초 마루헤이 가구를 경영하는 도노카 형제가 한국을 방문했다. 형제는 이 목수의 전시회를 보고 그의 디자인으로 가구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마루헤이 가구는 도노카 가족이 대를 물려 경영하며 일본 왕실에 가구를 만들어 납품한다. 이 목수는 마루헤이 가구에서 가져온 견본을 스무 군데 고치라고 한 뒤 자신의 이름을 단 가구를 만드는 것을 수락했다.

지금 짓는 한옥이 마무리 되면 올해 하반기부터 강원도 인제에도 내촌목공소 한옥을 20채 지을 계획이다. 이 집의 주인이 될 사람들은 몇 년째 땅을 사놓고 이 목수의 손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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