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 끌어들이는 파격 노하우
해외 자본 끌어들이는 파격 노하우
국내 산업계의 최근 화두는 다시금 벤처비즈니스다. 국내외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대두되면서다. 특히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벤처기업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는 8월 12일 벤처업계의 자금줄이 될 6조원 규모의 ‘성장 사다리펀드’를 출범시켰다.
크라우드(crowd)펀드와 지식재산권(IP)펀드가 창업 초기 기업을 위한 금융지원 제도인 것과 달리 성장 사다리펀드는 좀더 성숙한 단계에서 투자금 회수를 지원하는 성격이다. 앞으로 중소·벤처기업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인수 금융과 회수 펀드, IP펀드 초기 투자 등에 쓰일 예정이다.
성장 사다리펀드는 벤처 강국 이스라엘의 요즈마 펀드를 벤치마킹 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벤처기업 성공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제2의 실리콘 밸리’로도 불린다. 이스라엘의 창업 전략은 크게 인큐베이팅 시스템과 창업 벤처의 글로벌화, 벤처캐피털(VC) 육성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벤처캐피털 육성책 중 하나인 요즈마 펀드다. 요즈마(yozma)는 히브리어로 창의·혁신을 뜻한다.
박근혜정부 ‘성장 사다리펀드’의 모델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의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에 투자한다. 이들은 투자한 벤처기업이 기대대로 성장하면 기업 공개(IPO)나 인수·합병을 통해 지분을 비싼 값에 매각(exit)하고, 다시 이 돈으로 새로운 기업에 투자한다. 벤처캐피털이 성장하면 벤처시장 규모도 덩달아 커진다. 벤처기업들은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고 그 자금으로 고급 인력, 우수한 기술, 외국 자본 등을 다시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생태계 조성에서 벤처캐피털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민간 벤처캐피털만으로는 벤처 생태계 육성에 충분하지 않다. 민간 벤처캐피털은 초기 창업 투자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게 마련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0년대 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과 공동 출자하는 방식으로 요즈마펀드를 설립했다.
시장에 개입해 민간 벤처캐피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투자 경험이 많은 민간투자회사를 참여시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 리스크는 공유하고 투자 이익은 외부 투자자에게 좀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스라엘에서는 1993~2000년 사이 100억 달러의 벤처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이 2.7%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됐다. 1990년대 초 1개에 불과했던 벤처캐피털 숫자도 요즈마 펀드 도입 이후 88개로 증가했다. 1998년 요즈마 펀드 민영화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민간 벤처캐피털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요즈마 펀드는 처음부터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출범했다. 다른 나라에서 정부의 입김이 너무 세서 시장 활성화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 벤처 거품이 꺼진 후 벤처캐피털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일반 법인의 벤처캐피털 출자 비중은 전체의 42.5%였다. 그러나 2009년엔 22%로 줄었다. 급기야 지난해엔 16.1%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비율도 이스라엘(0.66%)이나 미국(0.22%)보다 크게 낮은 0.12%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벤처캐피털업계는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털 신규 조합의 결성액은 7477억원으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벤처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2011년(2조2841억원)과 비교해도 절반을 밑돈다.
요즈마 펀드를 본뜬 성장 사다리펀드 조성은 민간 투자를 유인할 마중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과 한국의 경제상황·문화·환경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벤치마킹도 좋지만 우리 실정에 맞는 벤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시장 조건이 달라 전부 모방하기보다는 환경에 맡게 취할 것만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털 전문가들은 한국적 환경에서 배울 만한 요즈마 펀드의 성공 비결로 파격적인 해외 자본 유치 전략을 꼽았다. 요즈마 펀드는 1996년 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는 길을 마련해 벤처 중흥기를 열었다. 특히 투자 수익 비과세 조치와 오즈마 지분 매입 옵션의 효과가 컸다.
해외 자본이 이스라엘에 투자하면 여기서 얻는 수익은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또 펀드 설립 5년 후 투자자는 요즈마가 가진 지분을 되살 수 있다.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벤처의 지분을 싸게 살 수 있어 벤처캐피털에게 매력적인 제안이다. 요즈마 펀드로 투자한 해외 자본 중 약 90%가 이 옵션을 행사했다.
요즈마 창조경제 서울포럼 개최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요즈마 펀드는 설립 단계부터 해외 자금을 포함시켜 이스라엘의 벤처가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해외 위탁운용사(GP)·출자자(LP)는 기업 운영 노하우와 자금만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네트워크도 가지고 온다.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 기업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는 등 해외 진출을 돕는다. 요즈마 펀드가 유치해 이스라엘 벤처기업에 투자한 해외 자금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투자 대상 기업이 성장하길 바란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캐나다 다음으로 나스닥에 많은 기업을 상장시킨 나라다.
요즈마 그룹(1998년 펀드 민영화 후 그룹으로 통칭)은 8월 27일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2013 요즈마 창조경제 포럼’을 연다.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 그룹 회장, 세계적 나스닥 상장 전문가인 로니 에이나브를 비롯해 이스라엘 창조경제를 성공시킨 인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국내 기술 사업화 전문가와 국내 대표 벤처투자 전문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형 창조경제 모델도 토론한다. 에를리히 회장은 “이스라엘의 창조경제를 이끈 요즈마 펀드 운영에 대한 노하우와 이스라엘 벤처기업의 글로벌화 사례가 한국의 창조경제 형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즈마 그룹은 국내 벤처시장 진입을 위해 6월에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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