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비극·아름다움 교차하는 성스러운 땅
Travel - 비극·아름다움 교차하는 성스러운 땅
지난해 8월 라마단 마지막 주말의 서늘한 저녁. 팔레스타인 사와레 마을 부근의 올리브 농장 안에 돌로 지은 3층짜리 집 옥상 테라스의 안락소파에 편안히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발 알-칼릴이라고 부르는 유대산이 농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산은 빛나는 별들 사이를 헤엄치는 거대한 검은 고래처럼 보였다. 서쪽 하늘은 예루살렘의 희미한 불빛으로 노랗게 빛났다.
내 곁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내가 머무는 집 주인 할라세 부부의 장성한 자녀 3명도 옥상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장녀와 차녀 라나와 레함은 둘 다 아름답고 박식하며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막내 아들 타메르는 36세이지만 그들에게는 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는 박사학위는 없지만 수난을 겪는 조국 팔레스타인의 모든 면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이라는 뜻으로 이슬람력에서 9번째 달을 가리킨다. 이슬람에서는 이 기간을 신성한 달로 여기고 한 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매일 단식한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술과 담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외부인이 팔레스타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온한 생활을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팔레스타인에선 평화가 영구하지 않다. 앞으로 3주 동안 나는 팔레스타인의 비극과 매혹적인 자연을 직접 목격할 계획이었다.
팔레스타인에도 관광산업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베들레헴의 종교 유적지를 중심으로 한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버스를 타고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를 찾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중심부, 전쟁으로 황폐화된 도시 헤브론과 나블루스, 또는 데이셰와 예닌의 난민촌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드물다. 그런 곳에 가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알 수 있다.
나는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하지 마라!’라는 친구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서안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전에 잠시 방문했을 때 만난 타메르 할라세는 스카이프를 통해 아무런 걱정 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와 보면 아시겠지만 아주 정상적인 곳이지요.”
난민촌 방문객은 드물어텔아비브 외곽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하자 타메르가 기사 딸린 차를 갖고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기사 할리드가 검은 세단의 트렁크에 내 가방을 던져 넣은 뒤 우리는 사와레를 향해 출발했다. 30분 뒤 장벽이 눈에 들어왔다. 머지 않아 690㎞ 길이로 확장될 콘크리트 벽이다. 이스라엘과 서안의 경계선으로 이스라엘이 2003년 건설을 시작했다. 그 장벽은 뱀처럼 산을 끼고 돌며 올리브 농장까지 분할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그 도시의 이슬람 성지를 방문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20분 뒤 우리는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가 마침내 마을로 들어섰다. 1주 동안 내가 머물 곳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사와레는 예루살렘에서 8㎞밖에 떨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분리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러 검문소를 거치며 우회해야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그곳까지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린다.
물론 팔레스타인을 찾는 모든 방문객이 공항에서 자가용으로 안내 받거나 개인 집에 머물진 못한다. 매일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출발하는 팔레스타인 버스가 있고 여기 저기 괜찮은 호텔도 있다. 그중에서도 뫼벤피크 라말라는 특급호텔에 속한다.
곧 나는 렌터카 직원이라는 야윈 젊은이에게 미국 뉴멕시코주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지폐를 건넸다. 그는 내가 모르는 아랍어로 작성된 렌터카 계약서를 내놓은 뒤 내가 건넨 지폐를 왼쪽 주머니에 넣으면서 오른손을 뻗어 자동차 키를 내게 건넸다.
처음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타메르는 라말라에 가서 재스민이라는 인기 카페에서 한잔 하고 싶어했다. 성스러운 축제일이라 악명 높은 칼란디아 검문소에 수만 명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이슬람의 3대 성소 중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에서 기도하려는 순례자들이었다.
그렇다. 타메르는 폭동의 현장처럼 보이는 곳으로 곧바로 나를 안내했다. 다행히도 성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에 지연되는 통과절차에 좌절한 폭도 대다수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다. 그들은 우리 차의 보닛을 두드리고 열린 차창으로 생수병을 던졌다. 라말라에 도착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너무 많이 해 손바닥이 쓰라렸다. 라말라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혼란스러운 시장, 아름다운 공원, 야세르 아라파트의 ‘거의 성스러운’ 묘지가 있다.
카페 재스민은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과 멋진 드레스와 화려한 히잡을 쓴 여성이 가득했다. 거기서 우리는 물담배를 피우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타이베 맥주를 마셨다. 타메르의 집에 도착하자 새벽 3시가 가까웠다.
오전 8시가 되자 타메르가 내 침실 문을 두드렸다. 그날 헤브론을 관광하려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그는 전했다. 서안 여행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폭력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골탕을 먹지 않으려면 뉴스를 잘 들어야 한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타메르가 말했다. “서안 곳곳에서 충돌이 있어요. 헤브론에 가기는 너무 위험해요.”
폭력사태 언제든 일어날 수 있어타메르는 아이폰으로 읽은 뉴스를 나에게 전달했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헤브론 외곽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이 가득 탄 택시에 화염병을 던져 5명이 심한 화상을 입고 입원했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지나면 헤브론도 안전할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예리코에 갑시다. 예리코는 언제나 안전한 곳이지요. 하지만 먼저 이발을 하세요. 난 면도를 해야 해요.”
알라를 위해 몸을 깨끗이 한 우리는 예리코로 향했다. 인구 1만9000명인 예리코는 요르단강 부근의 무성한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해발 260m 지점이다. 내가 삐걱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온통 붉은 시험산(신약 성서에서 사탄이 예수를 시험했다고 알려진 곳) 정상에 오르는 동안 타메르는 아래에 남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사람을 태우려고 대기하는 낙타와 노닥거렸다. 예리코의 기온은 49℃였다.
‘목자들의 들판’에서 저녁 식사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목동들이 베들레헴의 별을 봤다는 ‘목자들의 들판’ 부근에 있는 베이트 사호르의 ‘텐트’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요구르트 소스로 요리한 베두인 양고기 전통요리 만사프, 양고기와 닭고기를 서서히 익혀 육즙이 풍부하게 만든 요리, 케밥, 마나키시 자타르(참깨, 올리브유, 타임, 수막을 뿌려 구운 난)를 맛봤다.
사와레의 할레시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계단 세층을 올라 옥상으로 가 별빛 아래서 사과향 물담배를 피웠다. 기분이 그만이었다. 다음날은 나블루스로 갈 계획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는 도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타메르의 아이폰이 진동했다. 통화를 끝낸 뒤 타메르는 이렇게 말했다. “아쉽게도 나블루스 부근에서 유대인 정착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있대요. 오늘은 베들레헴으로 가야겠어요. 거기가 더 안전할 겁니다.”
사와레에서 차로 약 45분을 달려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기독교 순례자 1000명이 북새통을 이룬 예수탄생 교회에 겨우 들어가 예수가 태어난 곳을 표시한 별 모양이 새겨진 곳을 구경했다. 그 다음 타메르의 팔레스타인 친구 두 명과 중동식 샌드위치 팔라펠을 먹었다. 점심 후 타메르는 나에게 차를 몰라며 길을 안내했다. 몇 분 뒤 “여기 세우세요”라고 그가 말했다. “여기요?” 내가 물었다. “벽 바로 곁에 말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리장벽 바로 곁에 차를 세웠다. 높이 7.6m에 철조망까지 쳐 있다. 불길해 보이는 포탑에는 저격수들이 숨어 있었다. 그 장벽은 팔레스타인 자살폭탄테러범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나도 그 앞에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어떤 이념과 정치를 따르든 간에 장벽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폭력의 슬픈 상징이다.
마침내 폭력사태가 잦아들면서 헤브론과 나블루스를 방문할 수 있었다. 벌집 같은 헤브론 중심지에 도착해 구시가지 시장 곁에 주차했다. 헤브론에는 팔레스타인 아랍인 25만 명이 살고 있다. 유대인은 언제나 극소수였지만 최근 몇 십 년 동안 주로 미국 출신인 이스라엘 유대인 수백 명이 도심으로 이주해 약 700명의 정착촌을 형성했다.
그 정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군 3000명 이상이 그곳에 파견 나와 검문소를 설치하고 그 구역을 차단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양쪽에서 숭상되는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이 묻혔다는 동굴 위에 2000년 전 헤롯대왕이 지은 돌궁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조치는 당연히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구시가지 시장 곁에 주차한 뒤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시장은 과일주스부터 속옷, 면봉까지 모든 것을 팔려는 상인들로 붐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타메르가 위쪽을 가리켰다. 쓰레기가 가득한 철망이 길고 좁다란 시장을 뒤덮고 있었다. “저 위의 아파트에서 유대인들이 내버리는 쓰레기를 차단하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철망을 씌웠다”고 타메르가 설명했다.
분리장벽은 폭력의 슬픈 상징마침내 시장이 더욱 좁아지면서 검문소로 이어졌다. 용기를 내어 가까이 갔다.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젊은 군인은 19세 정도로 보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그곳에 서 있는 게 따분한 듯했다. 그가 나를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종교가 뭐죠?”
처음엔 역사적인 유적지에 들어가기 전에 묻는 질문 치고는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종교 분쟁이 만연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런 질문을 받는 게 당연하다. 사실 난 불가지론자다. 그러나 타메르는 그렇게 대답하지 마라고 했다. “기독교인으로 가톨릭을 믿는다고 말하세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출입이 허용됐다.
나중에 타메르는 그 군인이 내가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곳의 무슬림 전용 구역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라고 손짓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고 시계를 풀었다. 그들은 내 가방을 뒤진 뒤 입장을 허락했다. 내부는 전형적인 모스크였다. 정교한 카펫, 나무 설교단, 이삭, 리브가, 사라, 아브라함의 기념비가 있었다.
모스크를 벗어난 뒤 다시 신발을 신었다. 타메르가 다른 검문소로 안내했다. 그는 그곳을 넘어갈 수 없었다. 다시 군인이 내 가방을 검색한 뒤 그 건물의 유대인 전용 구역 출입구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경비원이 가방을 검색한 뒤 내 몸도 수색했다. 금속탐지기를 지나자 아름다운 유대교 회당이 나타났다. 촛불이 밝혀진 그곳에는 기도하는 유대인들이 가득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머문 마지막 날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아 나블루스에 갔다. 인구 12만6000명인 이 도시는 해발 약 910m인 에발과 게리짐이라는 두 개의 산 사이에 위치한다. 무슬림과 유대인 양쪽이 성지로 생각하는 산이다.
로마인, 십자군, 맘루크인, 하심요르단인 등 시대에 따라 여러 세력이 통치했던 나블루스는 과거엔 문화 중심지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쟁과 투쟁의 도시에서도 달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나블루스는 밀가루, 치즈, 시럽으로 만든 페이스트리 쿠나페로 유명하다.
서안 관광상품 많아2000년 시작된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봉기) 동안 나블루스는 폭력사태가 가장 심한 도시였다.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지금 나블루스의 구시가지의 모습은 음울하다. 폭탄을 맞아 폐허가 된 건물들, 건물 벽에는 팔레스타인 ‘순교자’들을 기리는 문구가 페인트로 적혀 있다.
관광을 마치고 떠나려고 했을 때 타메르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유대인 정착민들이 나블루스 외곽의 한 마을을 공격해 주민들을 구타하고 올리브 농장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이었다. 도시를 벗어날 때 구급차 여섯 대가 쏜살같이 우리를 지나쳐 도시로 들어갔다. 타메르는 예리코를 거쳐 집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예리코는 언제나 안전해요.” 그가 다시 나를 안심시켰다. 분리장벽에 도착했을 때 타메르도 나블루스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지친 듯 얼굴이 창백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관광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덧붙인다. 서안은 혼자서 둘러볼 수도 있지만 상황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그곳 사정에 밝은 사람의 안내를 받는 게 좋다. 나를 안내해준 타메르 할라세는 최근 관광 안내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일 코스에서 몇 주에 이르는 장기 코스까지 ‘개인 맞춤형 관광체험’을 제공한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info@tamertours.com이다. 서안 여러 도시의 당일 코스 관광상품을 제공하는 업체도 여럿 있다. 그중에서 예루살렘 아브라함 호스텔이 제공하는 헤브론 ‘2부제’ 관광상품을 권하고 싶다. 유대인 안내자가 오전을 책임지고 팔레스타인 안내자가 오후 일정을 맡는다. 그들의 이메일 주소는 tours@abrahamhostels.com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2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
3카드사들, 후불 기후동행카드 사전 신청받는다…사용은 30일부터
4카카오페이증권, 간편하고 편리한 연금 관리 솔루션 출시
5한화투자증권, ‘증권업 최초’ 공공 마이데이터 활용 서비스 출시
6메리츠證 Super365, 국내·미국 주식 거래수수료 완전 무료화
7케이뱅크, 경남 지역 소상공인 금융 지원 나서
8"'시세차익 실현되면 폭락 가능성도"...비트코인, 10만달러 앞두고 '멈칫'
9주총 시즌 97.2% 상장사, 열흘 동안 밀집…“참석·의견 내기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