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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TRAVEL - 스테이케이션의 진수 맛보다

FEATURES TRAVEL - 스테이케이션의 진수 맛보다

내가 사는 뉴욕에서 민박 휴가를 보내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Airbnb의 내 이메일함에 제안서 하나가 날아 들었다. 은퇴한 독일 부부가 뉴욕을 방문하는 데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있는 내 스튜디오를 5월 한 달 동안 빌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4000달러를 제시했다. 내가 내는 월세의 거의 두 배였다. Airbnb는 일반 숙박업소가 아닌 묵을 곳을 찾는 여행자들과 자기 집을 단기로 임대하고 싶어하는 주민을 연결시켜주는 웹사이트다.

약 1년 전 그 이점을 처음 발견했다. 그 이래 뉴욕에서 잠시 떠나 있고 싶을 때면 내가 사는 집을 민박가능 목록에 올리고 그 수입으로 블록 아일랜드, 킬링턴, 또는 버몬트로 잠시 휴가를 떠나곤 했다. 그러나 한 달이나 집을 떠나 있을 수 있을까? 휴가는 아직 멀었고 최근 샌디에이고의 부모님 댁에도 다녀온 상태였다.

뉴요커들이 대개 그렇듯이 세계에서 가장 액션이 가득하고 다양한 도시 중 하나에서 살지만 내 일정은 거의 매일 똑같다. 체육관, 공원, 식료품점, 네일 살롱, 중동 전통음식점, 쿠바 브런치 식당, 초밥집, 그리고 새로 생긴 과일 요구르트 전문점 핑크베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관광객 행세를 하는 식이다. 외지 사람들을 만날 때는 다르지만 보통은 그렇다.

게다가 업무 때문에 멀리 떠날 수 없다. 또 자주 출장다니는 여러 친구들은 우리 집에 민박 손님이 있을 때는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의 출장과 휴가 일정을 알아본 뒤 그 독일 부부에게 내 스튜디오를 빌려주려고 한 달간의 뉴욕시 여행 일정을 짰다. 맨해튼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 머레이 힐, 미드타운이 포함됐다.

‘스테이케이션(staycations, 집 부근에서 보내는 휴가)’은 최근 불황기에 크게 유행했다.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가상한 개념을 담은 표현이다. 가족이 동네 수영장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동네 공원을 재발견하거나, 늘 가보려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던 동네 박물관을 찾는다. 스테이케이션의 이점은 숙박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행어의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보면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집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탓할 순 없지 않은가?

플립키(FlipKey), VRBO, Airbnb 같은 민박 알선 사이트가 생겨나면서 스테이케이션이 더 쉬워졌다. 자기 집 부근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집을 세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Airbnb의 대변인에 따르면 같은 도시 내의 임대가 전체 매출의 5%를 차지하며, 지난해 매일 수천 건으로 배나 늘었다.

주로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같은 도시 내의 주택 단기 임대는 친척을 방문한다든지, 주택 증축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한다든지, 이사를 오려는 사람들이 새 집을 찾기 전에 동네를 알아보려는 데 이용된다. 무슨 목적이든 그런 현상이 현지의 관광명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먼저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요크빌을 찾았다. 한 친구가 몇 달 전 약혼자의 집에 살러 들어간 뒤 비어 있는 아파트가 그곳에 있었다. 이전까지는 작은 개와 거대한 병원 건물이 잔뜩 들어선 그 동네가 늘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트강을 따라 조깅하면서 숲이 우거진 칼 슈르츠 공원을 발견하고는 ‘이런 곳도 있었네!’ 하며 놀랐다.

며칠 동안 저녁이 되면 저녁 거리를 사들고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바지선이 강 상류로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나홀로 식사’를 했다. 곧 도시의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녔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허드슨 강변에서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

2주 뒤 아랫쪽 머레이 힐로 옮겼다. 대학을 갓졸업한 듯한 앳된 얼굴의 전문직 종사자들로 가득하지만 좀 더 활기찬 동네로 옮기는 게 기뻤다. 처음엔 피자와 버팔로윙 같은 음식만 기대했지만 이곳이 커리 힐로 불리는 유명한 인도 음식점 구역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나는 여행가방을 내려놓자마자 10달러 95센트에 인도식 점심 뷔페를 제공하는 다바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채소 사모사, 치킨 티카 마살라, 처트니를 마음껏 먹었다. 내친김에 인도 식료품점에 들러 향신료와 렌즈콩을 듬뿍 사서 한주 내내 그것으로 요리를 했다. 우리 동네의 슈퍼마켓에서도 그런 식품을 살 수 있지만 진한 향과 볼리우드 영화 음악이 흐르는 가게에서 인도 식품을 사는 기분이 더 좋았다.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도 수없이 가봤지만 그때까지 외지인을 커리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보통은 가능하면 맨해튼 미드타운엔 가지 않으려 한다. 바삐 걷는 샐러리맨들에 치이고 느릿느릿 거니는 관광객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시 거주자로서 나도 그곳의 리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인파를 피하려고 멈출 때면 할랄 케밥과 설탕에 조린 캐슈의 냄새를 즐기게 됐다. 매일 렉싱턴에서 3번가까지 걸으며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통과했다. 그곳의 향기 나는 카운터 앞을 서성이며 잠시 쉬는 게 낙이었다.

할인행사를 하는 2번가 와인바를 지날 때는 주저 없이 그냥 들어섰다. 바에 앉아 로제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옆자리의 낯선 사람과 2번가 전철이 왜 아직 완공되지 않는지 함께 불평하며 새로 들어서는 호화 아파트 때문에 집세가 올라가리라고 추측하고 유서 깊은 아이리시 바 PJ 클라크가 유명한 바텐더 더그 퀸이 떠난 이래로 예전 같지 않으리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서는 늘 내 생각에만 몰두하며 종종 걸음을 했기 때문에 집 부근에 있는 과일 노점상 주인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제는 그의 이름이 ‘살림’이라는 것을 안다.

물론 가까운 곳의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는 것이 반드시 재미 있고 새로운 발견만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케이블 TV를 켜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또 샐러드 거리를 잔뜩 사들고 들어갔지만 찬장에는 발사믹 비니거가 없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외식비도 많이 든다. 뒤안 리드에서 요구르트 하나에 3달러, 동네 식료품점에서 반으로 쪼갠 수박 덩이 하나를 4달러나 주고 사기도 했다. 내가 늘 다니는 체육관이 너무 멀어 요가 교습도 빼먹어야 했다. 주말 아침이면 생소한 아파트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도 많았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책과 생각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내가 늘 자던 침대와 즐기는 양념이 그리웠지만 뉴욕에서 스테이케이션을 하면서 내 도시를 다시 사랑하게 됐다. 머레이 힐에 머무는 동안에야 핫요가에 25달러를 쓰는 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갠스부어트 파크 애브뉴 호텔 옥상의 칵테일에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우쭐한 기분도 느꼈다. 센트럴 파크에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조깅 코스를 탐험할 때는 그곳의 나무들이 더 위풍당당해 보였다. 예정된 스테이케이션 한 달이 끝날 무렵엔 너무도 익숙해진 건물 외관과 경관을 새삼 느껴보려고 목을 길게 빼고 위를 쳐다보게 됐다.

TS 엘리엇의 시 ‘리틀 기딩(Little Gidding)’이 떠올랐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라(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 모든 탐험의 끝은(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 출발점으로 돌아가리라(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곳을 확실히 알리라(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그렇다. 어느 장소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떠났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요즘은 그리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필자 새러 엘리자베스 리처즈는 건광과 과학 전문 저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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