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EPRENEUR - 전국이 ‘좋은데이’
ENTREPRENEUR - 전국이 ‘좋은데이’
profile 1960년 경남 출생, 경남대 경영학과, 일본 동해대 경제학 석사, 창원대 경영학 박사, 1994~ 2013년 무학 대표, 2008년~ 무학 회장, 2012년~ 경남메세나 협의회 부회장
최재호(53) 무학 회장은 올해 3월 대표이사직을 내려놨다. 요즘 뭘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웃으며 “놀고 있다”고 답했다. “6월에는 인도네시아, 7월 초에는 몽골에 다녀왔습니다. 가서 놀았어요. 놀다가 현지 회사 관계자가 ‘뭐 하러 왔냐’고 물으면 ‘놀러 왔다’고 말했죠.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술 공장 구경도 하고요. 그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거죠. 놀다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술은 소비제품이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과 같이 먹고 놀아야 그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요. 딱딱하게 사무실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최 회장은 놀면서 미래를 준비한다고 했다. 실무 경영은 대표 두 명에게 맡기고 자신은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찾으러 다닌다.
무학은 경남 창원(옛 마산)에 본사를 둔 지역 주류 회사다. 화이트소주와 좋은데이를 만든다. 한국주류산업협회주세 납부실적 기준으로 지난해 진로와 롯데주류에 이어 3위다. 올해 1월 기준 병소주 시장의 14.6%를 차지한다. 주류를 생산해 파는 무학 외에 와인과 브랜디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무학주류상사, 먹는샘물을 만드는 지리산산청샘물, 무학스틸사업부 등이 관계사다.
종종 인터넷 게시판에 ‘서울에 좋은데이 파는 곳?’ ‘일산에 좋은데이 파는 곳 있을까요?’ 처럼 경남 이외 지역에서 좋은데이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지역 소주인데도 인기를 얻는 비결에 대해 최 회장은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고객이 좋아할 만한 걸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스마트폰을 많이 쓰잖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만드는 사람들이 ‘아, 이걸 만들어 내놓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만든 것이 화이트소주와 좋은데이다. 화이트소주는 최 회장의 대표 취임 이듬해인 1995년 출시했다. 출시 전 시장 상황은 어려웠다. 주류도매상들이 지역 소주를 50% 이상 구매하도록 하는 ‘자도주 의무구입제’가 1992년 폐지돼 지역 소주업체의 보호막이 사라졌다. 거대 경쟁자가 속속 치고 들어 왔다. 1992년 진로가 카스를 출시하며 맥주시장에 뛰어들고 이듬해 OB맥주의 두산이 경월소주를 인수하며 소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맥주와 소주 모두를 가진 주류 대기업이 두 군데나 생긴 것이다. 최 회장은 “기존 제품으로는 방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화이트소주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아예 새로운 제품으로 경쟁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독한 소주의 이미지를 벗고 마시기 편한 소주를 만들기로 했다. 도수도 25도에서 23도로 낮췄다. 회사 내부에서는 ‘이게 무슨 소주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국내 최초로 16.9도 순한 소주 개발화이트소주 출시 전인 1994년까지만 하더라도 경남에서 무학의 소주시장 점유율은 40~50%에 달했다.
화이트를 출시하고 1년 후 점유율은 80~90%까지 올라갔다. 이후 지역 소주들도 린·참소주·C1 등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계열사였던 무학건설이 휘청거리자 보증채무 상환압박이 커지면서 무학은 1998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하지만 화이트소주 판매가 꾸준히 늘어 워크아웃 중인 1999년 매출액이 전년보다 197억이 늘어난 970억원을 기록했다. 무학은 2000년 채무와 보증채무 406억원을 상환하고 워크아웃에서 조기졸업했다. 이후 무학건설은 청산절차를 밟았다. “매각하면 면허값만 몇 십 억원은 벌 수 있었어요. 그런데 팔고 나서 ‘무학’이라는 이름을 차마 못 볼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깨끗하게 정리해버렸습니다.”
경남권을 벗어나 좀 더 공격적인 전략을 펴기 위해 2006년 좋은데이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 알코올 도수 16.9도의 순한 소주다. “방어만으로 우리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만들게 됐죠.” 좋은데이의 판매는 경남이 아닌 부산에서 시작했다. “마음은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부산을 넘지 못하고는 서울을 갈 수 없겠더라고요.” 좋은데이 출시 전 무학은 전국 10개 소주회사 중 5위였다. 전국 소주 시장에서 7.5%를 차지했다. 좋은데이 출시 후 무학은 소주시장에서 점차 성장을 거듭해 2009년 4위, 2010년 3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8월과 올해 2월, 2위로 올라설 만큼 2위와 엎치락뒤치락할 정도가 됐다.
남다른 판촉 전략을 편 것도 주요했다. 구두닦이 판촉은 화이트 출시부터 시작해 좋은데이 출시 이후 본격화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직원들이 직접 행인의 구두를 닦아줬다. 최 회장도 종종 직접 나가 구두를 닦았다. 고객의 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안들이고 고객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구두닦이 판촉이 나오더라고요. 우리는 (대기업에 비해) 돈이 없기 때문에 광고도 큰 회사가 두 번 할 때 우리는 한 번 밖에 못해요. 한 번에 인상이 뚜렷하게 남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스티커를 만들 때 과감하게 빨강색·검정색을 썼습니다.”
무학은 영업 여사원 제도도 업계 처음으로 도입했다. 차량 지원도 해준다. 영업 여사원들이 주점 밀착형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벌이고 있다. 최 회장은 원래 무학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창업자 최위승 명예회장)와 경영하는 스타일이 전혀 달랐어요. 아버지는 순리대로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저는 좀 공격적이고요.”
하지만 그는 1988년 무학으로 갔다. 1980년대 후반 무학을 비롯해 많은 회사가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사문제가 불거졌다. “경남 창원 지역이 노동운동의 메카였습니다. 1년에 임금협상을 세 번 할 정도였어요. 우리 회사도 예외가 아니었죠.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니 아버지 이름이 회사 바닥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크게 써 있더군요. 우선 아버지를 도와 노사관계를 좀 안정화시키겠다는 생각에 무학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기획실장으로 무학에 온 그는 직원들과 똑같이 생활했다. 같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면서 직원들을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봄이 되면 관광버스를 몇 대 빌려 전 직원이 야유회를 갔습니다. 생산직에 근무하는 50대 아주머니가 많았어요. 그들이 저를 젊은 사람이라고 많이 좋아했지요. 버스 안에서 술 한 잔씩 주는 걸 다 받아 마시고 노래 부르다 휴게소에 버스가 멈추면 다른 버스에 옮겨서 또 술 받아 마시고 노래 부르고요. 몇 시간을 자리에 앉을 틈 없이 술을 마셨어요. 당시에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지금도 직원들과 식사나 술자리를 하면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15명씩 불러 식사를 하지요. 더 많은 직원이 모이면 얘기를 잘 들을 수 없거든요. 직원들이 일하다가 불편한 점을 얘기해요. 들어줄 수 있으면 그 자리에서 ‘OK’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왜 들어줄 수 없는지 얘기해줍니다.”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킨다. 올해 3월 생산직 직원들의 근무복을 개선했다. 일할 때 불편하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4월 허리가 불편한 사무직 직원이 의자를 바꿔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본사 한 켠에는 수거된 공병을 분리하는 자회사가 있다. 회사명은 무학위드. 무학에서 100% 출자해 2010년 설립했다. 더운 날씨에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밝게 인사하는 직원들은 장애인이다. 30여 명의 장애인이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빈 병 선별, 이물질 검사 등을 한다. 이 밖에 최 회장은 기존의 장학재단을 2011년 좋은데이사회공헌재단으로 정비했다. 재단은 학생과 문화단체에 38억5000여만원의 장학금과 기금을 지원했다.
전 임직원이 좋은데이자원봉사단을 꾸려 창원여성의집·성심원·창원시립복지원 등에서 각자 연간 40시간씩 봉사한다. “아버지께서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도와줬어요. 저는 그걸 체계화시켰죠. 어렸을 적집 앞에 노숙자가 많았어요. 햇볕이 따뜻하게 드는 곳이었거든요. 노숙자들이 저희 집에서 끼니 때마다 주는 밥 먹고 대문 앞에 누워 자다가 내가 오면 “이 집 아드님 오셨네” 하면서 초인종을 눌러주기도 했어요. 우리 집 경비라고 할 정도였지요.”
수도권 진출에 대해서는 “간만 보고 있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잠원동에 무학 서울 지점이 있다. 아직은 지점 인근에만 공급한다. 최 회장은 “소비자의 감성을 울릴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새로 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학은 소주는 물론 매실주·국화주·스파클링 와인도 생산한다. 국산 찹쌀로 빚은 막걸리 ‘막끌리네’도 있다. “등산하고 막걸리를 마시다 ‘한번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거예요. 2000년 정도니까 막걸리 붐이 일기 전입니다. 그러다 업그레이드된 막걸리를 낸 것이 ‘막끌리네’예요. 막걸리 붐이 조금 사그라지면서 영세 막걸리 업자들이 힘들어졌어요. 필요하다면 수출 정도만 남기고 단계적으로 연말까지 막걸리 시장에서 철수할 계획이에요.”
최 회장은 더 열심히 놀 계획이다. “미래를 내다보려면 심신이 맑아야 돼요. 그래서 제 영혼도 더 맑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쉬면서 다양한 분야를 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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