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피플 ⑱ - 첨단산업 이끄는 중동 최고 부자
글로벌 파워피플 ⑱ - 첨단산업 이끄는 중동 최고 부자
중동 산유국 아랍에미리트(UAE)는 한국에 소중한 나라다. 한국의 중동 교두보다. 한국은 이 중동 사막국가에서 단일 해외 수주 역사상 최고 액수인 400억 달러짜리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공동 운영권을 확보했다. 이 나라의 알아인 지역에는 한국의 ‘아크(아랍어로 형제라는 뜻)’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UAE 군인들의 훈련을 돕는 게 임무다.
UAE는 아부다비·두바이·샤리아·아지만·라스알카이마·푸자이라·움알쿠와인 7개의 토후국(에미리트: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나라)으로 이뤄진 페르시아만 지역의 이슬람 군주국 연합이다. 인구 600만명(2009년 추정)에 국토는 7만7699㎢ 정도로 남한 면적의 80%에 못 미친다. 이 나라의 핵심은 아부다비와 두바이다.
개발 붐이 일단 한풀 꺾인 두바이가 외부 세계에서 더 유명하지만 실제 이 나라의 핵심은 아부다비다. 아부다비는 6만7340㎢(UAE 전체의 87%)의 면적에 전체 인구의 40% 가까이 거주하고 있어 인구와 면적 모두 맏형 노릇을 한다. 두바이는 34%의 인구와 3885㎢(5%)의 면적으로 그 다음이다.
아부다비는 UAE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한다. 아부다비는 연간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석유 생산의 94%를 차지한다. 명실공히 UAE의 핵심이다. 연합국가인 UAE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민주적으로 뽑히는 자리가 아니고 7개 토후국 중 가장 큰 아부다비의 군주가 맡는 당연직이다. 차남 격인 두바이의 군주가 그 아래 자리인 총리를 맡는다.
세계 왕족 재산 2위UAE 대통령인 할리파(65)는 경제력과 영향력을 한 손에 쥔 중동의 파워 인물이다. 지난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3위에 올랐다. 그는 중동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 지도자로 통한다. 개인 재산 230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왕족 재산 순위 2위다.
가족 전체의 재산을 합치면 1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집안의 가장이니 실질적으로는 세계 최대의 부자다. 게다가 대부분 현금이다. 중동 유목민 세계에선 전통적으로 보유 낙타 규모로 부와 권력을 가늠하기도 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봐도 그는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보유 낙타가 1만4000마리나 된다. 상징적으로도 중동 유목민 세계에서 최대 부자인 셈이다.
아부다비는 두바이와 딴판인 보수·실용적 개발UAE의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추산 GDP가 3580억 달러이며 1인당 GDP는 6만4840달러로 세계 6위다. 특히 아부다비만 떼놓고 따지면 1인당 GDP가 9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룩셈부르크(10만7206달러)·카타르(9만9731달러)·노르웨이(9만9462달러)에 이어 세계 4위의 부자 나라인 셈이다. 아부다비는 보면 중동 석유 부국 가운데서도 그야말로 최고 부자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기도 하다. 할리파는 그런 아부다비의 이슬람 세습군주이며 그런 UAE의 대통령이다.
할리파는 나서지 않는 성격 때문에 외부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파격적인 발상과 강력한 추진력, 그리고 과감한 기부활동으로 중동 지역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우선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추정치 약 9000억 달러(8750억 달러~1조 달러로 추정액이 다양하다)인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회장을 1976년 창립 때부터 맡고 있다. 2004년 아부다비의 에미르와 UAE의 대통령에 오르기 전부터 석유로 번 돈의 운용을 맡은 것이다. 1976년 이후 아랍에미리트 최고석유위원회 위원장에 올라 석유로 번 돈을 토후국에 나눠주는 일을 도맡았다.
두바이의 에미르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UAE 총리)이 빌리거나 투자 받은 돈으로 부동산을 대대적으로 개발해 경제 개발을 이끌었다. 할리파는 실제로 돈줄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두바이가 지은 세계 최대의 건물인 부르주 두바이는 두바이의 경제난으로 이름을 바꿨다. 할리파의 도움으로 회생한 뒤 그의 이름을 붙여 부루주 할리파로 불린다. 할리파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할리파는 경제 개발 스타일도 두바이의 모하메드와 다르다. 할리파는 보수적이고 실용적이며 차분한 개발을 추구한다. UAE 대통령 취임 초인 2005년 4월, 전국의 공무원 급여를 한꺼번에 15~25% 올려주는 선심을 썼다. 하지만 최근부터는 막대한 자금력을 국가 개조에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UAE 전체를 위해서도 쓰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군주를 맡고 있는 아부다비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할리파는 석유 부국의 지도자이지만 친환경 미래도시를 건설해 미래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데 많은 관심을 보인다. 친환경 에코 시티라는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위압적인 초고층 빌딩을 선호하는 두바이와 다르다. 할리파는 싱가포르·뉴질랜드·노르웨이를 벤치마킹 했다. 한결같이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도시를 건설한 소국이다. 이를 바탕으로 화석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신도시인 ‘마스다르 시티’를 2015년까지 아부다비 시티 근처에 건설하고 있다.
마스다르는 아랍어로 ‘자원’을 의미한다. 인구 5만명 규모가 될 이 소도시는 석유를 비롯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태양열 전지 등 친환경 에너지만을 이용해 100% 전기를 생산한다. 석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운행도 허용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쓰레기 배출이 없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마스다르시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산화탄소 제로, 쓰레기 제로’의 도시로 건설된다.
이 도시의 별명은 ‘지속가능형 개발도시’다. 장기적으로는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전 세계의 경쟁력 있는 그린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해 아부다비를 글로벌 하이테크 도시국가로 개조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할리파는 마스다르 시티를 앞으로 전 세계 신에너지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아부다비를 국제적인 친환경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할리파는 석유로 번 돈으로 그린 테크놀로지와 그린 시티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제로, 쓰레기 제로’ 도시 구상이런 미래 환경도시를 중동 사막에 세우겠다는 생각을 서구의 환경 운동가가 아닌, 중동의 지도자 할리파가 해낸다는 사실은 그의 미래를 보는 안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협약을 맺고 도움을 받고 있다. 인재가 부족하면 전 세계에서 아웃소싱하는 것은 두바이와 닮았다.
실제로 국내나 지역에선 이를 위한 인재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부다비는 마스다르 시티에 국제기구인 국제 재생 가능 에너지 기구(IRENA)의 본부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인사들의 지원을 받았다.
할리파가 한국의 힘을 빌어 중동에서 처음으로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이런 그린 비즈니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할리파의 야망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설 과정에서 기술을 이전 받아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에 올라서는 꿈을 꾼다. 이번 발주 조건에 기술 이전이 필수적으로 포함된 이유다. 사실 할리파는 첨단기술 확보에 필사적이다.
FT 보도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이미 지난해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인 미국 GE와 공동으로 아부다비에 80억 달러 규모의 합자법인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GE의 10대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할리파의 원전 도입은 원전 기술 확보와 산업 진흥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로 진행되는 것이다. 원전 도입의 최종 목표는 결국 에너지 산업 다양화라는 이야기다. 할리파가 간단치 않은 인물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할리파는 그린과 에너지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 하이테크 확보에 주력했다. 독특한 점은 심지어 우주항공 분야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 펀드는 에어버스 여객기를 만드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과 계약을 하고 일부 항공기 부품을 아부다비에서 제조한다. 아부다비에서 현지 젊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겠다는 의지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항공업체들에 대한 지분 투자에도 나서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국민 보기 어려워반도체 분야에도 관심을 보였다. 5년 전에는 아부다비의 국영 투자회사인 어드밴스드 테크놀러지 인베스트먼트(ATIC)는 싱가포르의 반도체 업체인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18억 달러에 매입했다. ATIC은 그 전에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AMD와 공동으로 글로벌 파운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이 회사에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무바달라는 설립 목적부터 독특하다. 벤처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아부다비 경제의 성장동력을 다양화하는 걸 돕는다. 할리파가 UAE와 아부다비를 앞으로 어떤 나라로 만들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오일달러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단숨에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할리파의 고민도 적지 않다. 1971년에 독립한 UAE는 석유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국민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의 공통된 현상이다. UAE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현지인들은 에어컨이 잘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편안히 일하는 공공부문 일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건설 등 힘든 일은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중동 산유국 도시들이 거대한 인디언 타운이 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복지는 거의 완벽해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와 지식인이 필요한 제조업이나 첨단산업의 발전을 애초에 기대하기가 힘든 구조다. 경제에서 석유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도 있다. GDP의 60%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다른 걸프 산유국 평균인 45%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2000억 달러 정도를 수출하는 석유 말고는 수출품이라고 해봐야 대추야자와 중동과 인도 요리에서 양념으로 쓰이는 말린 생선 정도밖에는 없다.
아무리 부자 산유국이라고 해도 과도한 복지정책을 언제까지나 계속 펼 수는 없다. 인구는 갈수록 늘고 복지비용은 경제에 서서히 부담을 주고 있다. 석유는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 나라 안에는 석유회사와 국부펀드 운용사, 그리고 공공 부문 말고는 별다른 일자리도 없다. UAE의 대통령이자 아부다비의 군주인 그가 직접 나서서 대대적인 경제구조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다.
할리파는 중동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군주다. 팔레스타인에선 하마스 지도자에 이어 인기 2위다. 대대적인 경제 지원 때문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신도시 셰이크 할리파 시티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팔레스타인의 경제적인 부흥을 지원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기대에서다. 셰이크 할리파는 돈을 털었고, 그 방법도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거의 대부분 젊은이가 일자리가 없는 팔레스타인에 건설 분야 등에서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심장병동과 중환자동 건물 건설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건물에는 자신의 선친인 셰이크 자이드의 이름을 붙였다. 경제 개혁가이자 자선 기부자인 할리파의 야망은 사막의 열기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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