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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RCHITECTURE - 종이상자로 만든 집

culture ARCHITECTURE - 종이상자로 만든 집

신세대 건축가들이 판지 박스와 쓰레기로 저렴한 건물을 짓는다



건축가 소니 워드를 처음 만나는 고객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닌지 아니면 사람을 놀리는 건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그는 처음 ‘캠프 시스터 스피리트’(미시시피주 시골에 있는 여권주의자들의 은거처)의 관리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반응을 떠올렸다. 그가 버려진 종이상자로 오두막을 지어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워드는 미시시피주에 있는 여권주의자들의 캠프에 재활용 판지를 이용한 합숙소를 지어주었다.
“마치 ‘당신은 대체 누구고 여긴 왜 왔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워드는 말했다. 의심스럽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렇게 엉성한 재료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었다. 게다가 이 캠프는 그동안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다.

바이블 벨트(Bible Belt, 기독교 성향이 강한 미국 남부·중서부 지대)의 한가운데서 레즈비언과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다 보니 주변의 눈총이 따가웠다. 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시골 마을 이웃들이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에 신고까지 했다. 그러니 먼저 도움을 주겠다는 워드의 제안에 관리자들은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시시피주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지금은 웨스트 할리우드의 한 건축회사 대표로 있는 그는 사회적 책임을 신봉한다. 또 건축가로서 필요할 경우엔 하찮아 보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materials at hand)’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워드는 캠프의 여성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했다. 당시 그 여성들은 조립식 공구창고에 기거하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마침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워드가 지은 9㎡의 오두막은 이 캠프의 정신적 상징이됐다. 사람들이 버린 종이상자를 이용해 지은 그 오두막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 여성들의 지위를 상징했다. 오두막의 벽은 지역 상점에서 내다버린 골판지 상자를 포개서 압축한 다음 양쪽에 합판을 대고 강철 나사못으로 고정해서 만들었다.

외벽의 재료는 종이상자로 만든 판자를 라텍스 페인트에 담가 비바람에 견디도록 처리했다. 이 오두막은 튼튼하게 지어졌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위력에도 끄떡없었다. 비용도 저렴했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를 통해 아커스 재단으로부터 받은 3000달러의 보조금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워드는 시스터 스피리트 프로젝트 이후 ‘사회복지 사업으로서의 건축’ 운동을 확장시켜 나갔다. 자신이 학사학위를 받은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의 우드 베리 대학에 비상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그 학교의 건축+시민참여(ACE) 센터를 통해 이 운동을 펼친다. 워드와 지닌 센투오리 ACE 소장은 학생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손대지 않는 특별한 사회·환경 운동을 추구한다”고 센투오리는 말했다. “건축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장소와 기관을 찾아다닌다.” ACE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LA 스키드 로우지역의 노숙자들에게 숙소를 지어주었다. 또 차드에 사는 다르푸르 난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디자인했다.

이 디자인은 상을 여러 개 받았지만 전쟁으로 황폐화된 그 지역에서 자재 조달이 불가능해 학교가 건설되지는 못했다. 워드와 센투오리가 이 분야의 선구자는 아니다. 그들은 앨라배마주의 오번 대학에서 루럴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공동 창설했던 새뮤얼 ‘샘보’ 막비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ACE 참가자들은 값싼 재활용 재료를 이용해 한 비영리 기관에 기증된 창고를 안락한 다용도 건축물로 탈바꿈시켰다.
‘영혼의 쉼터’를 건설하는 것이 막비의 목표였다. 그는 앨라배마주와 다른 지역의 시골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기 좋고 값싼 집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워드는 ACE 프로그램이 막비의 모델보다 “더 빠르고, 거칠고, 예산이 적게 드는 도시 버전”이라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막비의 비전은 학계에서 사회적 동기를 지닌 건축의 기준이 됐다”고 워드는 말했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 중에 주목할 만한 예가 허리케인 카타리나 이후 뉴올리언스의 튜레인대 건축 대학원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메이크 잇 라이트(Make It Right)’라는 단체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뉴올리언스의 빈민 지역 나인스 워드 주민들에게 환경에 민감한 멋진 디자인의 집을 지어주기 위해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단체다.

워드와 센투오리는 건축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찾아주는 일을 계속한다. 올 봄에는 학생들이 캘리포니아주의 섀도우 힐스 라이딩 클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 짓는 기술을 연마했다. 이 클럽은 자폐아부터 양측 하지마비 환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재향군인들까지 다양한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말을 매개로 한 치료를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ACE 참가자들은 납작하게 압축한 플라스틱 병 등 값싼 재활용 재료를 이용해 10개의 기증받은 창고를 안락한 다용도 건축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 채광과 환기 시설, 단열 설비를 갖춘 각 건축물엔 두 명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최근 이들은 말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저소득층 가구의 여아들에게 승마와 도시 농업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자신감을 키워주는 비영리 단체 ‘테이킹 더 레인스(Taking the Reins)’에 필요한 시설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야외 주방과 식당, 닭장과 농산물 상점이 포함된다. 지도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로스앤젤레스강 유역의 더 광범위한 경제 활성화 프로그램과 연계되기를 희망한다.

센투오리와 워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적 척도로 건물을 디자인하고 건설하는 데서 특히 즐거움을 찾는다. 건축이라고하면 흔히 떠올리는 거창한 규모와는 거리가 멀다. “건축학교는 지나치게 학술적”이라고 센투오리는 말했다. “하이테크로 형태를 조작하고 미술관이나 공항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이 프로그램은 그것과는 정반대다.”

또 센투오리와 워드, 그리고 그들의 학생들은 판에 박힌 건축가들과 달리 그 건물을 이용할 사람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시골에서 헛간을 짓는 일과 비슷하다”고 센투오리는 말했다. “협동이 필요하다.” 워드도 겸손한 자세와 실용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그녀에게 공감한다. “훌륭한 디자인만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건물이 지닌 이야기다.” 그 디자인 안에서 생활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말한다.

- 필자 앨런 허프먼은 미시시피주 출신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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