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일자리 늘린 아들 대견” 아들 “아버지 도전정신·근성 배워”
아버지 “일자리 늘린 아들 대견” 아들 “아버지 도전정신·근성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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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1인 기업인이다. 14년 간 여직원도 없이 일하며 베트남에서 산업용 모래를 수입했다. 그의 아들은 벤처기업가다. 화장품 배달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매출 100억원이 목표인 주목 받는 벤처기업가다.
아버지는 광물 1세대이자 마지막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산업화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들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신세대 사업가다. 산업용 모래와 화장품만큼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도전을 두려워 않는 기업가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다. 하재한(58) 네세스무역 대표와 그의 외아들 하형석(31) 미미박스 대표 얘기다(하 대표는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하재한 네세스무역 대표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믿는다. “아들이 사업 시작할 때, 단 한 푼도 안 줬습니다. 사회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면 도움을 줘도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그는 아들 하형석(31) 미미박스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자 “솔직히 몇 번 망하길 바랐다”고 한다. 젊어서 경험한 실패만큼 값진 인생 교과서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의 바람과 달리 아들의 벤처사업은 승승장구 중이다. 하형석 대표가 세운 미미박스는 한국 최초의 ‘뷰티 서브스크립션’ 회사다. 매월 잡지나 신문을 구독하듯 소비자들이 일정액을 내면 다양한 화장품을 박스에 넣어 배달한다.
미미박스 고객은 매달 1만6500원을 내고 10만원어치의 화장품을 받는다. 미미박스는 화장품 회사에서 무료로 제품을 받는다. 협찬 받는 대신 화장품 회사에 보고서를 만들어준다. 보고서에는 제품에 대한 피드백과 시장 반응, 홍보 활동 분석과 업계 동향이 담겨 있다.
하형석 대표는 지인 3명과 함께 자본금 3500만원을 들고 지난해 2월 사업을 시작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처음 200개로 시작한 배송은 1년 8개월 만에 2만 5000개로 늘었다. 매출이 매월 45% 늘어날 정도로 급성장했다. 사업이 잘 돼 사무실만 8번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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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반가웠습니다. 젊어서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해도 잃을 게 없습니다. 결혼해서 아이 가지면 그때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는 게 인생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잘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사업 시작할 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에 왜 제 돈을 투자하겠습니까. 지금은 좀 아쉽기는 해요. 그때 투자해서 지분 좀 챙겨 놨으면 좋았을 텐데 아깝습니다.”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아 섭섭하진 않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사업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힘들 거라 생각하며 도전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군고구마 장사와 운동화 판매로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물건 파는 일에 자신이 있었고, 아버지 말처럼 망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본금 3500만원을 다 날리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저 화장품을 상자에 담아서 보내준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박스 100개만 보내보자. 딱 100개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시장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집안 교육법이 궁금합니다.
“아들을 강하게 키웠습니다. 근성 있는 모습을 칭찬했고 힘든 일을 찾아 도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들이 군대를 아프카니스탄에 지원했습니다. 그때 아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어른이 됐구나.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미국 파슨스라는 학교로 유학을 떠날 때에도 학비 대주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형석이는 자기 힘으로 학비 벌고 공부해서 조기 졸업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해도 잘할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항상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아버지는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준비했습니다. 아주 작은 일도 정성껏 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혼자서 수 많은 업무를 처리했어요. 힘들어 하는 모습은 봤지만 좌절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기억에 없습니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사업하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화장품 배달 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사장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리는 잡았지만 아직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 뭔지 실감이 나지않아요. 우리 회사는 직원의 역할이 명확합니다. 사장이라도 직원의 업무에 함부로 관여하지 못합니다. 나는 사장 역할을 열심히 할 뿐입니다. 사장으로서 직원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은 자신들이 알아서 합니다.”
미미박스 직원은 3명에서 50명으로 빠르게 불어났다. 하형석 대표는 공채로 직원을 뽑지 않는다. 모두 지인의 추천을 받거나 아는 사람을 채용했다. 특정 업무 능력보다 성격과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다.
하형석 대표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일단 성격을 봅니다. 작은 조직이라 잘 어울릴 수 있는 분을 선호해요. 성장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의 여자친구가 무용단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영업 쪽 재능이 보여 영입했습니다. 지금 우리 MD팀 팀장입니다. 일을 아주 잘합니다. 일단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은 다음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스타일입니다. 어떤 직원은 부서를 5번 바꿨습니다. 마침내 적성에 맞는 보직을 찾자 일을 너무 잘합니다.
직원들이 일을 좋아해야 회사가 잘 돌아 가지 않겠습니까. 작은 회사라 아직 이런 인사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하재한 대표는 “1인 기업이 옆에서 보면 힘들어 보이지만 정말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선택과 행동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거래처와의 모든 대화를 다 알고 있기에 실수가 적습니다. 제가 은행에 직접 다녀오니 금융 사고가 날 일이 없습니다. 1인 기업은 뒷일이 없습니다. 제가 경영·영업·회계·물류까지 다 담당하는데 문제 생길 일이 없지요. 하지만 아들이 하는 사업을 보면서 1인 기업의 부족한 면을 깨달았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못하고 있었어요. 아들은 2년이 지나기도 전에 젊은이 50명을 채용했는데, 저는 14년간 혼자 일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라도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재한 대표가 왜 사업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무역회사에서 광물 분야를 담당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라고 자부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사업에 나섰습니다. 지금 주 종목은 산업용 모래입니다. 눈 감고 모래 만지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 모래인지 맞출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한국 시장 산업용 모래 절반 가까이 제가 공급합니다.”
산업용 모래는 유리와 정밀기계 제조를 위한 주물 소재다. 한국에 들어오는 산업용 모래는 하 대표의 네세스무역과 일본 대기업이 공급한다. 호주와 베트남이 주요 수입처다. 2000년대 중반, 일본 대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치고 들어온 적이 있다. 베트남의 산업용 모래를 일본 대기업이 거의 다 휩쓸었다.
하 대표는 오랜 신뢰가 있어 평소보다 적지만 어느 정도 물량을 받아 가까스로 시장을 지켰다. 2년이 지나자 일본 대기업들이 철수했다. 한국에서 판매가 생각한 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규모가 작은 한국 모래 시장을 위해 계속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하재한 대표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속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그때 내가 무너졌더라면 한국이 수입하는 산업용 모래 가격이 t당 3~5달러 정도 올라갔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하형석 대표는 “사업 자체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서 나만의 방식으로 잘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다”고 덧붙였다. 결국은 꿈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너무 좋다”며 “처음엔 박스 100개 파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미국에 우리 제품 팔고 싶은 목표가 생겼고 그 나라의 훌륭한 인재들과도 일해보고 싶다”고 말을 이었다. 하 대표는 이미 미국에 회사도 세웠다. 온라인으로 화장품 판매할 계획인데 한국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업 아이디어나 운영 방향을 서로 의논합니까?
“한 달에 두 번 정도 아들과 저녁을 같이 합니다. 밥 먹고 소파에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로 사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떻게 돈을 벌 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더 좋은 회사를 만들 지 고민합니다.”
은퇴하면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실 생각인가요?
“1인 기업 특성상 후계경영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물려줄 것도 없고. 무엇보다 아들과 사업 분야가 너무 다르기도 하고. 제 선에서 정리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업 계획은.
“한국에서 산업용 모래 수요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산업구조가 바뀌면 산업용 모래 수요가 줄어들 수 있지요. 예컨대 한국에서 유리를 생산하는 것보다 아예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단가가 맞으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베트남이 모래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1인 기업은 시장 변화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형석 대표는 “미국 시장에 뿌리 내리기 위해 좀더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며 “아직 아이디어가 설익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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