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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RT - 온몸의 고통으로 전하는 자해예술

culture ART - 온몸의 고통으로 전하는 자해예술

자신의 신체 훼손을 통해 관객에게 불안과 욕망,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극단적인 행위예술가들의 세계... 고통과 위험, 쾌락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신체와 정신의 한계를 실험한다



지난 11월 10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나체의 한 남자(피부는 창백하고 몸은 말랐지만 강단이 있어 보이고 머리는 빡빡 밀었다)가 자신의 음낭에 못을 박아 석판 깔린 도로 위에 고정시키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 양 무릎을 올려 세우고 두 팔은 뒤로 뻗어 땅을 짚은 채 다리 사이를 응시했다. 마치 고통을 출산하는 사람처럼.

러시아 개념예술가 표트르 파블렌스키(29)의 행위예술 작품 ‘고정(Fixation)’이다. 그가 레닌의 묘 앞에서 펼친 이 행위예술은 “경찰국가”로 치닫는 러시아의 상황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파블렌스키는 성명을 통해 “이 행위예술은 현대 러시아 사회의 냉담함과 정치적 무관심, 체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를 하나의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어간다. 국민의 돈을 훔쳐서 그 돈으로 정치 조직과 국민을 억압하는 다른 조직들을 키우는 데 쓴다. 사회가 이를 허용하고 있다. 다수인 국민의 힘을 잊은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경찰국가로의 전락을 돕고 있다.”

파블렌스키는 자해예술(self-harm art)에 일가견이 있다. 2012년 7월에는 자신의 양 입술을 바늘과 실로 꿰매 봉한 채 러시아 펑크 밴드 푸시 라이엇의 체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푸시 라이엇은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공연을 벌여 채포됐다). 그는 그 행위예술에 ‘스티치(Stitch)’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난 5월에는 ‘시체(Carcass)’라는 행위예술을 펼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회 앞에서 벌거벗은 몸 위에 가시철조망을 두르고 태아의 자세로 누워 있었다.

파블렌스키가 러시아 경찰의 날(11월 10일)에 맞춰 ‘고정’을 공연할 당시 옷을 벗고 그 자세를 취하기까지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찰관들이 순식간에 주변에 몰려들었다. 30분 뒤 한 응급구조대원이 장도리로 도로에 박힌 커다란 못을 뽑고 파블렌스키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파블렌스키는 병원에서 기본적인 처치를 받은 후 경찰에 체포됐다가 다음날 풀려났다. 현재 그는 난동죄로 징역 5년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파블렌스키가 망치로 자신의 음낭에 못을 박은 최초의 예술가는 아니다. 그의 행동은 자신의 몸을 캔버스와 재료로 삼았던 선구적인 예술가들에게서 전해 내려온 신체예술(corporeal performance art)의 전통에 뿌리를 뒀다.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매질하고, 바늘과 실로 꿰매고, 못을 박고,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키고, 총을 쐈다.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의 한계를 무너뜨렸다.

1989년 미국의 행위예술가 밥 플래너건은 자신의 음경을 음낭 속으로 밀어 넣은 다음 음낭을 바늘과 실로 꿰맸다. 그러고 나서 남아 있는 피부에 못을 박아 나무토막에 고정시켰다. 그는 ‘If I Had a Hammer’라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이 모든 과정을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농담을 던지며 행했다. ‘못 박히다(Nailed)’라는 제목의 이 행위예술은 정치적 시위가 아니었다.

플래너건의 예술은 모두 피학적 쾌감과 치유에 관한 것이었다. 1996년 4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스러운 불치병(낭포성 섬유증)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플래너건에게 관중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음낭을 바늘로 장식하고 음경을 작은 기구 속으로 쑤셔 넣는 등의 무시무시한 행동들로 고통의 쾌락을 탐험하고 전통적인 성의 개념에 도전했다. 그리고 사랑과 인생,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다. 다큐멘터리 ‘질병; 슈퍼 마조히스트 밥 플래너건의 삶과 죽음’은 그런 그의 삶을 조명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다큐멘터리를 자신이 본 영화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작품으로 꼽았다.

“고통은 사람을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많은 행위예술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고통은 영적인 것이며 사람을 변화시킨다. 의식에 변화를 일으킨다.” 아방가르드 예술과 행위예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쓴 문화평론가 신시아 카가 말했다. “관객 중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행위예술에 조예가 깊은 남캘리포니아대(USC) 극예술대학원의 연극·영어학 부교수 메일링 정은 이렇게 말했다. “파블렌스키가 보여준 것과 같은 신체훼손을 이용한 행위예술은 선례가 있지만 그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그는 공공장소인 붉은광장을 공연 장소로 택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나타냈다. 현재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국제 언론에 알리려는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드러냈다.

사실 파블렌스키의 공연은 21세기에 맞게 만들어졌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이런 소식과 영상은 온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라 모두가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그 소식을 공유한다.

행위예술의 개념은 1970년쯤 나타났다. 일부 예술가들이 창조의 결과물로 어떤 물체(그림·조각 등)를 내놓는 대신 행위를 통한 예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예술은 기성세력에 도전했다. 고상한 중산층에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주는

이 예술의 전통은 19세기 말 문학의 데카당트(퇴폐주의) 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작가와 철학자, 예술가들은 죽음과 섹스 등 금기시되는 주제를 탐험했다.

행위예술 운동이 싹을 틔우던 1971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의 조각가 겸 행위예술가 크리스 버든이 조수를 시켜 자신의 왼팔에 총을 쏘게 했다. 22구경 소총을 이용해 4.5m 거리에서 쐈다. 3년 후 버든은 포크스바겐 비틀 차량 위에 올라가 누운 다음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의 양손을 차 지붕에 못 박도록 했다.

그는 또 반쯤 벌거벗은 채 깨진 유리 위를 기어다니고, 전류가 흐르는 전선들을 가슴에 대고, 익사 실험을 하기도 했다. 신체에 가해지는 위험을 예술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그의 극단적인 행위예술은 사적인 장소에서 소수의 관객을 상대로 펼쳐쳤다. 그리고 그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또는 글이나 사진 기록을 통해 퍼젼나갔다. (현재 뉴욕 뉴 뮤지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다.)

자해예술과 극단적인 행위예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내내 계속됐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고 고의로 발작과 단기 기억상실을 일으켰다. 또 낯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배를 가시로 찌르게 하거나 머리에 총을 겨누게 하고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지나 페인은 자해부상을 예술로 만들었다.

1994년 미술가 론 에이시는 자신의 양 팔엔 피하주사 바늘을, 머리엔 침술용 침을 잔뜩 꽂았다. 그러고는 다른 행위예술가의 등을 메스로 베었다. 그리고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종이 타월로 닦아내 관객들의 머리 위에 걸린 빨랫줄에 널었다. [이 공연은 미국 국립예술기금(NEA)을 둘러싼 논란을 일으켰다.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에이시가 NEA로부터 간접적으로 150달러의 지원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NE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들 예술가는 고통과 위험, 쾌락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활동하며 관객들에게 불안과 혐오감, 욕망, 공감,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모두가 신체와 정신의 한계를 실험했지만 동기는 각기 달랐다. “많은 예술가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런 행위예술에 뛰어든다”고 카가 설명했다.

“에이시의 행위예술은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정치적인 시위는 아니었다.” 에이시의 작업은 종교적 극단주의의 실험이었다. (오순절파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소명”을 타고났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반면 플래너건의 행위예술은 질병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었다. 또 붉은광장에서 펼쳐진 파블렌스키의 행위예술은 신체훼손을 통한 정치적 시위였다.

카는 “자신의 음낭을 땅에 못 박는 게 정말 예술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파블렌스키가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이다. 그 행위는 내 마음에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게 예술가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 남자가 자신의 음낭을 땅에 못 박았다고 해서 러시아에 어떤 변화가 올까?

“사람들은 매우 충격적인 것을 보면 갑자기 의식이 깨어나게 된다. 러시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정치적 억압? 러시아 국민들은 어떤 불만을 느끼고 있나? 이런 것들이 파블렌스키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 자체로 이미 그는 의도한 바를 성취한 것이다.” 메일링 정이 말했다.

개로 변신하는 행위예술을 자주 공연하며 한번은 암소의 질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기도 했던 행위예술가 올레그 쿨릭은 캘버트 저널(러시아 문화를 다루는 온라인 잡지)에 이렇게 말했다. “파블렌스키를 뭐라고 불러도 좋지만 미친 사람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미쳤다. 오히려 그를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지 모른다. 그의 행동은 공포정치에서 ‘해방’된지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경찰국가로 돌아가려 하는 러시아의 상황에 제대로 반응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음낭을 땅에 못 박는 극단적인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카는 말했다. “거기서 또 어떻게 발전할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파블렌스키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행위예술의 달인이니 조만간 새로운 뭔가를 들고 나올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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