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URES HISTORY - 마녀의 마술은 계속된다

그리스 신화의 무대는 어디였을까?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마술에 걸려 현혹당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그 마녀가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고 오디세우스는 성 노예로 삼았던 곳 말이다. 이 질문은 그저 학자들의 술안주거리가 아니다. 아주 진지하고 수익성 좋은 사업 소재다. 손님이 궁한 이탈리아 호텔 지배인과 식당 주인은 홍보를 위해 자신들의 업소를 역사 속 장소와 연결지으려 든다.
옛 문헌은 사실 규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오디세우스의 실제 여정을 찾고싶다면 먼저 아이올로스의 바람 주머니를 짰던 세공사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할 때 아이올로스는 여로를 덜어주려고 바람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오디세우스에게 건네줬다.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연상케 하는 일이다. 이 경우엔 바늘이 존재하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중심부의 두 인접 지역은 각자 자기네 땅이 호메로스의 저서 오디세이아에서 영웅 오디세우스가 마녀 키르케의 꾀임에 빠진 곳이라고 주장한다.
한 곳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화산섬 폰자, 다른 한곳은 알몸으로 잠든 여성처럼 생긴 티레니아해를 향해 쭉 뻗은 곶에 위치한 치르체오산이다. 이 두 휴양지는 로마와 나폴리 연안을 사이에 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 중이다. 이 지역 일대는 온통 오디세우스와 키르케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이탈리아 경제가 오늘날처럼 어려웠던 시기는 역사상 없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는 오디세우스조차 돈줄이 된다. 오디세우스와 키르케의 연애담을 이용하면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양 지역에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다. 폰자섬 주민은 3500명에 불과하지만, 여름에는 10만 명에 달하는 휴양객이 이 마을의 유명한 화강암 절벽에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치르체오도 마찬가지다. 9000명 가량의 주민들이 매년 관광객 약 9만 명을 맞이한다. 거리, 상점, 호텔, 식당은 모두 저 두 신화 속 연인의 이름을 따왔다. 가장 유명한 바는 마가 키르케(여마법사 키르케), 영화관은 울리스(오디세우스)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에서는 두 연인과 그들의 아들 텔레고노스를 소재로 한 연극이 상영된다.
얼굴이 검게 탄 일본인 수백 명은 폰자섬을 오가는 배를 타고 좌초당한 영웅이 상륙했다고 일컬어지는 오디세우스의 동굴로 향한다. 폰자섬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32km 너머에 위치한 치르체오 반도에는 고대 신전의 잔해가 남아 있는 키르케 봉우리와 키르케의 산책로, 고급 호텔 마가 키르케가 있다. 지역 주민들은 그 고대 신전이 마녀 키르케의 옛 거처라고 주장한다.
두 지역 모두 물가는 비싼 편이다. 4인 가족이라면 하루 관광에 700달러는 든다. 두 지역이 싸움을 벌이기에 충분한 액수다. “오디세우스는 시칠리아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항해했다. 그러므로 오디세우스가 상륙한 첫 땅은 치르체오가 아니라 폰자섬인 것이 분명하다.”
폰자 시청에서 9년 동안 근무하고 현재는 호텔 벨라비스타에서 일하는 항해전문가 실베리오 카포네는 말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상 최초로 폰자섬을 식민지화하면서 이 섬을 이이아라 이름지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가 이이아섬에 상륙했다고 썼다. 오늘날 있는 것과 똑같은 항구에 말이다.”
그렇다면 호메로스가 묘사한 섬은 초목이 무성한 데 왜 폰자섬은 척박할까? “간단하다. 로마인들이 섬을 군사기지로 삼으면서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모두 잘라냈기 때문이다.” 카포네는 말했다.
2001년 카포네는 폰자섬과 인근 네 개 섬간의 문화적, 경제적 연대를 강화해 자치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폰치아네제도협의회를 발족했다. “이건 민족 문제”라고 카포네는 말했다. “우리는 로마인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혈통을 이어 받은 고대 그리스인의 직계 후손이다.”
치르체오산 역시 자기네 지역이야말로 오디세우스의 상륙지라는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호메로스의 저작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의 상륙지가 섬이라는 건 맞다. 하지만 당시 치르체오는 한쪽은 바다, 다른 한쪽은 습지와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은 환경이었다.”
산 펠리체 치르체오시의 수석 고고학자 프랑코 도메니첼리는 말했다. “게다가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가 상륙해서 숲을 가로질러 키르케의 궁전까지 올라갔다고 묘사했다. 이곳은 이탈리아의 자연보호구역 중 하나다.” 도메니첼리는 말했다. “정상에는 비너스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 잔해가 남아 있다. 비너스는 태양의 딸이자 종종 여마술사와 동일시됐던 존재다. 1800년대에는 키르케상의 머리가 언덕 기슭에서 발견됐다. 아마 신전에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도메니첼리는 한 술 더 떠서 사람이 돼지로 변했다는 전설을 입증하는 증거까지 제시했다. “이 지역엔 멧돼지가 우글거린다.” 그리고 섬 이름 이이아에 대해서는 “고대 페니키아어 아이아이아에서 유래한 단어로 매의 봉우리를 의미한다”며 “바다에서 보면이 언덕은 실제로 비상하려는 매의 형상을 닮았다”고 설명했다. 키르케의 마술이 아직 남아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지역을 처음 찾는 많은 이들은 아름다운 경관에 사로잡혀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한다. 내 부모님도 그랬다.”
도메니첼리 역시 오디세우스와 연관된 도시들끼리 문화 연대를 꾸리려고 한다. 트로이에서 시칠리아까지 오디세우스의 환상적인 여정을 따라가는 해상 여행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멋진 경험일 것”이라고 도메니첼리는 말했다. “오디세우스는 지중해 문화의 상징이다.
치르체오는 지중해 중심이라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호메로스 세계의 중심축이 되기에 가장 적합하다.” 만약 치르체오섬이 실제로 호메로스가 묘사한 이이아섬이라면 트로이 전쟁을 종식시킨 그리스 서사시 텔레고네이아에 따라 오디세우스의 묘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폰자와 치르체오 중 어느 쪽이 옳을까? 어쩌면 둘 다 틀린 것은 아닐까? 수 세기에 걸쳐 학자들은 호메로스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 그가 서사시를 혼자 저술했는지 공동으로 작업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탄생지를 10번도 더 바꿨으며 심지어 2년 전에는 오디세우스의 고향을 다른 곳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키르케가 살았던 섬은 현재 그루지야가 위치한 흑해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고전 학자도 있다.
몇 가지 비교적 확실한 사실도 있다. 첫째로 키르케나 칼립소 같은 여신들은 예외 없이 섬에 살았다. 볼로냐대에서 그리스 문학을 가르치는 시모네타 나니니 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폰자측 주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에는 치르체오 역시 사방이 물이었다.
둘째로 치르체오산이 키르케의 본거지임을 입증하는 근거는 그밖에도 있다.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와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다. 폰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학자는 1764년 나폴리의 미켈레 바르가스 마치우카 공작뿐이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전적으로 상징적이며 호메로스는 자신이 언급한 장소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나니니는 말했다. “실제 세계가 아니라 신화와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서사시 특정 부분에서 오디세우스는 별을 알아보지 못하겠다고 시인한다. 다른 우주로 들어간 것이다. 거기가 어디인지 호메로스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장소다.”
오디세이아가 처음 등장한 이래 세계 각지에서 자기네 지역이 오디세우스가 떠돌았던 실제 장소라는 주장이 나왔다. 신화 속 조상과 자신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라고 나니니는 설명했다. 전적으로 정치적, 민족적 이유에서다. 폰자와 치르체오의 진흙탕 싸움은 새로울 것이 없다.
“서사시에서 중요한 건 지리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이라고 라스피엔자대 문자학과 로베르토 니콜라이 학과장은 말했다. “호메로스는 뛰어난 영웅이 어떻게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괴물과 마술사, 야수, 신들이 사는 환상 세계를 그려냈다.” 폰자나 치르체오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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