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다들 중국 갈 때 미얀마 개척
공장 다들 중국 갈 때 미얀마 개척
“메리 크리스마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의 한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에 이른 크리스마스 인사가 울려 퍼진다. 지중해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풍스런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인자한 미소의 산타클로스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자신을 핀란드에서 온 ‘진짜 산타’라 소개한다.
어깨에 짊어진 선물보따리에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까지 꺼내서 건네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 메뉴를 만들었다. 핀란드에서 건너온 셰프가 산타클로스의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연어 요리를 만들어준다. 이벤트는 12월 내내 이어진다.
이벤트 장소는 정통 스페인 레스토랑엘 올리보(El Olivo)다.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인근에 있다. 한적한 농원과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풍의 예쁘고 아담한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건물 일층에 높이 솟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핀란드에서 직접 건너왔다는 산타클로스까지. 무언가 사연이 많을 것만 같다. 엘 올리보는 와이셔츠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전문업체 SMK인터내셔날의 자회사다. 패션 회사가 스페인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하니 궁금증이 더 커졌다.
12월 10일 엘 올리보에서 SMK인터내셔날 김성민(50)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다. “수출업을 하면서 유럽에 출장을 자주 갔어요. 스페인에 갔다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 나라 문화에 관심이 생겼어요. 음식도 입에 잘 맞았죠. 막상 한국에 오니 스페인 음식을 제대로 하는 집이 거의 없더라고요. 제가 보고 좋았던 것을 많은 사람과 함께 느끼려고 2011년 아예 레스토랑을 하나 차렸습니다.”
SMK인터내셔날은 연 매출 300억원이 넘는 견실한 중소기업이다. 전체 매출을 해외 수출로 올리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회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전문 브랜드 자라나 스프링필드가 비즈니스 파트너다. 유럽에 연 700만 장의 와이셔츠를 수출한다. “유럽 성인 남자 10명 중 1명이 우리가 만든 셔츠를 입는 셈입니다.” 김 대표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1985년 대우그룹 섬유개발부에 입사했다. 김 대표는 “지금은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기업 중에서는 대우가 섬유 쪽에서 가장 사업 규모가 크고 잘나가는 회사였다”고 말했다. 좋은 환경에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옷을 파는 일을 했고 적성에 잘 맞았다. 일이 손에 익자 자신감이 생겼다. 업계의 중요한 사람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고, 섬유 무역의 흐름도 한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바이어도 있었어요. 1993년 사표를 냈죠. 입사동기가 30여명 있었는데 제일 먼저 그만뒀어요. 지금에서 생각하면 당시 내 나이가 서른 살이었는데 참 무모하고 겁없던 시절이 었어요.”
1994년 SMK인터내셔날을 설립했다. 처음 한두 해는 계획대로 사업이 잘 됐다. 원화 가치가 너무 높아 수출에 애를 먹기는 했지만 외국 제품을 수입해 파는 것으로 회사를 유지했다. 하지만 결국엔 올 것이 왔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새로운 바이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원화 가치가 급락해 해외 물건을 수입해 파는 것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나는 어렸고, 집에는 내가 먹어 살려야 할 아내와 아이 둘이 있었어요. 얼마 후 대우가 부도가 났어요. ‘회사에 계속 남아 있었어도 어차피 한 번의 고비를 맞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힘을 냈죠.”
설립 초부터 SMK인터내셔날은 단순한 OEM(주문자상표부착표시생산) 업체가 아니라 제품 개발과 디자인 능력을 갖춘 ODM 회사를 지향했다. 회사가 어려운 시절에도 연구개발에 꾸준히 투자해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외부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보따리에 자신이 만든 옷을 싸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독일 쾰른에서 열린 의류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휴고보스·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가 부스를 열고 자사의 기술을 뽐내는 자리였다. 한국의 조그만 중소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다행이 대우 근무 시절 친하게 지냈던 바이어의 도움을 받아 행사장 구석에 조그만 부스를 열 수 있었다. 제품을 전시하고 부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스페인 패션 브랜드자라의 바이어였다.
서른 살에 대우 나와 섬유업 창업“1990년대 말 가장 잘나가는 패션 아이템이 프라다의 신사복이었어요. 지금은 보편화된 약간 번들거리는 느낌의 소재를 사용해 큰 인기를 누렸죠. 우리 회사도 비슷한 느낌을 내는 제품을 개발한 상태였어요. 그 제품이 자라 바이어의 눈에 든거죠.” 김 대표는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스페인 자라 본사를 찾았다.
“이런 식으로 이뤄진 대부분의 만남이 5분간 스탠드 미팅으로 소득없이 끝난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겁도 났다. 다행히 미팅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일선 디자이너를 만난 후 디자인 실장과 미팅을 했다. 나중엔 상품담당 매니저가 와 계약서를 내밀었다. 최고의 사업 파트너와 인연이 시작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또 하나의 도전을 준비했다. 생산 시설을 늘리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베트남에 있는 공장에서 대부분의 물량을 소화했다. 큰 계약을 따낸 만큼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가 주목한 나라는 미얀마였다. “국내의 많은 제조업체가 중국에 공장을 지었어요. 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미얀마를 선택했죠. 대우 시절에 출장을 몇 번 가서 잘 알고 있던 지역이었어요. 동남아시아 국가의 정세나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미얀마가 중국보다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판단은 주효했다. 최근 중국에 진출한 국내 제조업체들 중 상당수가 급등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철수했다. SMK인터내셔날의 미얀마 공장은 지금도 잘 돌아간다. 중간에 증설투자도 했고, 지금은 2500명의 직원이 제품을 생산한다.
고비도 있었다. 2003년 정치적 이유로 미국과 유럽이 미얀마에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금지했지만 김 대표가 유럽 바이어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해 수출을 계속할 수 있었다. 2008년에는 미얀마에 10만명의 사상자를 낸 태풍 니르기스가 덮쳐 공장과 많은 직원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김 대표와 직원들은 충분한 신뢰가 있었다.
직원들은 슬픔을 딛고 일주일 만에 공장을 정상 가동했다. “결국엔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매일 매일 위기입니다. 평소 바이어와 직원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반대로 내가 위기일 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엘 올리보의 산타클로스가 다가왔다. “내 핀란드 친구 키모(Kimo)예요. 원래 바이어였는데 은퇴를 했어요. 제가 스페인 레스토랑을 열고 이런 이벤트를 한다고 하니 단숨에 달려왔죠. 그의 아내 툴라(Tula)도 함께 와서 핀란드 연어 요리를 만들고 있어요.” 그제야 핀란드 산타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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