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치고 나가야 하나라도 더 건진다
먼저 치고 나가야 하나라도 더 건진다
기업은 나름의 주기를 두고 호황과 불황을 오간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그 순간, 앞으로 닥칠 위기를 내다봐야 하는 이유다. 독감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리 맞는 예방주사다. 대내외적인 환경 변화가 예상되고, 수익 감소와 성장 축소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미리 유동성을 마련하고, 효율이 낮은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
이 때의 판단이 기업의 생멸(生滅)을 결정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아와 해태는 좌고우면 하다 시간만 보냈다. 현재 위기에 몰린 동양·STX 등도 살아날 타이밍을 놓쳤다. 뒤늦게 자산 매각 카드를 꺼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선제적 자산 매각으로 반전의 기회를 잡은 그룹도 있다. 1990년대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금도 대표적인 구조조정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다른 산업에 비해 외국 기업과의 경쟁이 일찍부터 시작된 화장품 업계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위기론이 불거졌다. 로레알을 비롯한 외국 기업의 고품질 제품이 들어오면서 소비자의 눈 높이가 높아졌고, 시장에선 출혈경쟁까지 벌어졌다.
1945년 설립해 국내 화장품 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던 태평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1년 24개에 달하던 계열사의 실적 부진과 재무 건전성 악화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빠르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순간, 태평양은 가장 자신 있는 화장품 분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유사 업종은 통폐합하고, 화장품과 무관한 계열사는 미련 없이 팔았다. 주변에선 알짜 기업을 왜 파느냐고 했지만 서성환 전 회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구조조정 당시 그가 했던 말은 아직도 재계에 회자된다. “기업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작은 풍파에도 쉽게 흔들린다. 태평양은 오직 화장품으로만 커나갈 것이며, 앞으로도 다른 업종은 생각하지 않겠다.”
서둘러 실탄 마련해 사업 재편1991년 태평양증권을 선경(현 SK)에 매각했고, 야구단과 여자 농구단은 현대와 신세계에 각각 매각했다. 패션 부문은 거평에, 동방상호신용금고는 개인 투자자에 넘겼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장기적인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확 바꾼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외환위기를 무난히 넘기고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계열사는 24개에서 9개로, 직원은 1만3000여명에서 4500명으로 줄었다.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은 부채를 줄이는 데 썼다. 1997년 약 3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은 2001년 50%대로 내려갔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부채비율은 지금도 20~30% 수준이다.
성장세도 꾸준하다. 지난해 매출은 2012년보다 약 10% 늘어 3조873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매출이 효자 노릇을 했다. 해외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6000억원을 돌파했다. 2016년 1조원을 넘긴다는 목표다.
외국 화장품 기업에 밀려 구조조정에 돌입한 토종 회사가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에 새로 편입됐다. 1980년대 말 순위(34위)보다 떨어진 62위지만 속은 더 건강해졌다.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2000년대 들어서는 두산의 변신이 돋보였다. 두산그룹은 설립 120년을 맞는 대표적인 장수기업이다. 창업자 박승직부터 박용곤 회장까지 3대를 거치면서 고속 성장했다. 주력 사업인 맥주와 식자재 등을 바탕으로 건설·전자·기계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이 기간 매출과 종업원 수는 100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창업 100주년을 맞은 1996년 두산은 위기를 직감했다.
당시 투자자본수익률(ROIC)은 4.9% 정도였는데 이는 실질이자률(약 10%)보다 훨씬 낮았다. 이런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면서 현금 유동성이 급격히 나빠졌다. 고민 끝에 두산은 1996년 2월 미국 맥킨지와 경영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사업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두산은 우선 3M·코닥·네슬레 지분을 매각하고, 을지로 본사 사옥을 팔아 유동성부터 확보했다. 이 덕분에 외환위기 삭풍을 무난히 비켜간 두산은 2단계로 유사 업종 통합에 나섰다. 17개 계열사를 4개로 정리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꿨다. 주력이던 동양맥주를 벨기에 기업에 넘기고, 음료사업은 코카콜라에 양도했다. 이 과정에서 688%(1996년)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151%(2000년)로 낮아졌고, 수익성은 개선돼 영업이익이 매년 30% 이상 늘었다.
유명한 ‘걸레론’이 등장한 것도 이맘때다. 당시 구조조정을 지휘하던 박용성 전 회장은 “왜 주류사업을 매각하려 하느냐”는 반발이 일자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말로 일축했다. 부실기업만 매각해서는 제대론 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박용곤 명예회장 역시 “두산이라는 이름이 사라질 위긴데 업(業)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힘을 실었다.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든든한 실탄을 바탕으로 두산이 선택한 것은 중공업이었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을 잇따라 인수해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현재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그룹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가 됐다.
2007년 소형 건설장비 부문 세계 1위 기업인 밥캣을 인수한 데 이어, 목시엔지니어링(현 두산 ADT), 인도 첸나이 웍스(발전소용 보일러 제조업체), 독일 렌체스(친환경 발전설비 제조업체) 등을 인수했다. 인수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팔고, 테크팩과 버거킹, 주류 사업 등도 과감히 매각했다.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약 15년에 걸친 구조조정을 통해 두산은 중공업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했고, 내수 전문 기업에서 매출의 60%를 해외에서 거두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외환위기 발생보다 2년 앞선 선제적 구조조정이 없었다면 두산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 최근 건설경기 불황에 따른 실적 악화로 재무 건전성이 다시 나빠져 위기 기업 리스트에 오르내리지만 급격히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12월 두산중공업의 자사주 매각(3023억원)과 두산인프라코어의 해외주식예탁증권(GDR) 발행(4207억원), 두산건설의 전환상환우선주(RCPS) 발행(4000억원) 등으로 1조1000억원 규모의 자본 확충에 성공했다. 특히 위기의 출발점이었던 두산건설은 RCPS 발행으로 부채비율이 150%로 낮아지고, 금융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 계열사 토지 재평가를 통해 부채비율을 추가로 낮추기로 한 것도 전망을 밝게 한다.
기업은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고 빚을 낸다. 갚으려면 현금이 필요한데 생각처럼 돈을 벌지 못했을 때가 문제다. 유동성의 중요성은 불황기에 더 커진다. 전문가들은 최근 동양·STX·동부 등 굵직한 대기업 집단이 우후죽순 무너지는 것을 두고 “적극적인 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지 않고, 금융권에만 기댔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옥까지 내놓아야 할 만큼 궁지에 몰린 뒤에는 매각 카드를 써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너도 나도 위기일 땐 매물이 쏟아지고, 매물이 많으면 값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파는 쪽의 형편이 어려우면 흥정의 여지도 줄어든다. 더 받고 싶어도 혹시 안 팔릴까 ‘이거라도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제값을 받기 힘든 이유다.
자산 매각은 가격보다 시기가 중요태평양과 두산의 성공에는 시기를 잘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에서 위기를 진단하고 남들보다 빨리 대처했다. 과감히 자산을 정리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주력 사업에 재투자해 사업체질을 바꿨다. 2011년 주력 사업 중 하나인 하드디스크(HDD)를 시케이트에 매각해 1조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거둔 삼성전자나 2008년 금융위기 직전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매각한 이랜드도 선제적 매각의 우수 사례로 꼽힌다.
법정관리 중인 웅진그룹의 뒤늦은 대처도 눈 여겨 볼 만하다. 법정관리 전 위기를 수습했다면 최선이었겠지만 그나마 ‘알짜’ 계열사를 빨리 팔아 그룹 전체가 공멸하는 화는 면했다. 윤석금 회장이 1980년 설립한 헤임인터내셔날(현 웅진씽크빅)에서 출발한 웅진그룹은 교육·출판 사업에서 크게 성공한 뒤 1988년 코리아나화장품, 1990년 한성물산(현 코웨이)을 설립해 영역을 넓혔다.
코웨이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했고, 외환위기 때는 당시 업계 2위던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살아남았다. 재계 30위권까지 올라서며 승승장구했지만 2006년 시작한 태양광 사업 부진과 2007년 인수한 극동건설 부실이 누적되면서 2011년 말부터 급격히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위기에 처한 윤 회장은 극동건설과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수습에 나섰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1월 주력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매각한 데 이어,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도 팔았다. 이 세 회사 매각 대금만 약 1조7500억원에 달하는데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은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
덕분에 웅진홀딩스는 지난해 말 채무 중 3770억원을 더 변제해 전체 채무의 82%를 갚았다. 앞으로 갚아야 채무 약 2700억원은 회생 계획에 따라 10년 동안 분할 상환이 가능하다. 이르면 1월 중 법정관리를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다.
물론 법정관리가 끝나도 윤 회장에게 남는 계열사는 웅진씽크빅, 북센, 렉스필드 골프장 정도다. 하지만 “학습지(웅진씽크빅)와 출판(북센)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포기한다”는 윤석금 회장의 선언과 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이 정도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빠른 채무 변제 덕에 올해 매각하려던 웅진에너지와 웅진플레이도시를 팔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윤 회장에겐 호재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기회는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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